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들어봤다./그래픽=김상석 기자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들어봤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통과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정성호·김병주 의원은 지난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취지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황이다. 이들 의원들은 인사청문회가 여야 정쟁 도구로 전락하고 공직후보자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기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해 제대로 된 자질·역량 검증을 하자는 목적에서 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같은 개정안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는 의견도 많지만 민심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고, 관련 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반대 의견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면서도 인사청문회가 정쟁 도구로 전락한다거나 과도한 인신공격·신상털기에 치우치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각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사청문회 개선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 후보자 신상털기 지양엔 동의

지난해 6월 공직후보자의 선서·진술·서면 답변에 거짓이 있을 경우 위증의 벌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은 “청문회가 후보자에 대한 신상털기로 가는 것은 지양해야겠다는 것은 동의한다”고 밝혔다.

엄 의원은 그러면서 무조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할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가족 신상과 관련된 문제는 비공개 청문회로 진행하고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공개로 진행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엄 의원은 “후보자 본인과 관련된 도덕성 검증은 공개로 진행하되 가족 신상과 관련된 문제까지 다 들춰내면 본질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법을 개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배종찬 인사이트K연구소장은 “너무 청문회가 막장식이 돼왔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된다고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동안 청문회와 관련된 여론 동향에 비춰본다면 아예 도덕성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 소장은 그러면서 ‘예비심사소위원회’를 별도로 신설해 사전에 비공개 도덕성 검증을 실시하도록 하자는 정성호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했다. 배 소장은 “예비심사소위를 거쳤는데도 여전히 설득되지 않은 남아있는 도덕성 문제에 대해 본 청문회에서 3~4시간 정도 한번 더 논의를 하면 될 것”이라며 “그렇게 재논의 이후 본 청문회 나머지 많은 시간을 정책 능력 검증에 할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국민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배 소장은 이와 함께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경찰·국정원·국세청 등의 정부 기관이 ‘원스톱 심층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사전에 도덕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회 사무처 산하에 인사청문회 검증위원회를 추가로 설치해 청문위원들에게 검증 자료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우 변호사는 “단순하게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면 제도의 취지와 달리 여권의 독주만 강화해주는 폐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지금은 대통령의 인사권이 제한되는 방식이 도덕성 문제 논란으로 여론이 안좋아져 후보자가 낙마하는 경우다. 여론이나 언론의 힘을 통해서 야당의 비토권이 인정되고 있는 셈”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을 추진하되 실질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동시에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그동안 청문회에서 쟁점이 됐던 문제에 대해 사회적 용인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교수는 “부동산, 논문 표절, 위장전입, 이중 국적 문제 등 그동안 사회적으로 쟁점이 됐던 낙마 사유에 대해 국회에서 어느 시점 이전 것은 사회적 분위기상 용인할 수 있고, 어느 시점 이후 문제는 용인할 수 없는지 등에 대해 공론화시켜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사안별로 시한을 정확하게 정해주고, 그 가이드라인에 맞는 인물을 발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에도 이 교수의 제안과 비슷한 견해가 명시돼 있다. 지난 2017년 7월 발간된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운영을 둘러싼 쟁점’ 보고서는 “공직후보자의 낙마를 초래한 대표적인 사유로는 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논문표절·위장전입 등을 들 수 있다”며 “문제는 공직후보자 검증에서 일관된 기준이 적용되지 못하고, 같은 사유로 어떤 후보자는 낙마하고 어떤 후보자는 공직에 임용되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가 주체가 되어서 여야가 바뀌어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인사검증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초당적인 인사검증 기준을 마련한다면, 청문회가 정파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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