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17:46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바다와 나비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바다와 나비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2.03.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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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3월이면 즐겨 읽는 짧은 시가 하나 있네.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바람에 흔들리는 춘심(春心)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로 읊고 또 읊는 시지. 공자가 『논어』에서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한 나이 일흔이 내일모레이지만, 아직도 봄이면 마음이 뒤숭숭해서 이 시를 읽으며 봄바람에 들뜬 기분을 달래고 있네. 어떤 시인데 서론이 이렇게 기냐고? 일제 강점기에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였던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일세.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삼월은 아직 대다수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는 아니네. 그래도 마음 급한 사람들은 천천히 북상하는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꽃을 찾아서 산과 들로 나가기 시작하는 달이지. 아직 일교차가 심하고 찬바람과 봄바람이 함께 부는 3월에 바다가 청무우밭인 줄 알고 내려갔다가 물에 흠뻑 절어 돌아온 저 흰 나비처럼, 꽃 찾아 나갔다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네.

시 속 ‘흰 나비’처럼 무모한 사람들이 어디 3월에 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뿐일까. 지난 몇 주 동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관해 했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고 철없이 나대다 좌절하고 마는 저 ‘흰 나비’를 생각했네. 아직 임기도 시작하기 전인데 마치 현직 대통령인 것처럼 행세하는 게 참 무모하고 교만하게 보였거든. 소통을 위해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사람이 “여론 조사는 의미가 없다”거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청계천 복원 공사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라고 말하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데도 기어이 강행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이해가 안 되거든. 임기 시작 후에 천천히 시작해도 될 일을 왜 굳이 지금 하겠다고 그러는지…

이런 무모함과 고집불통 때문에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윤 당선인의 국정수행 전망이 벌써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네. 그래서 취임도 전에 레임덕이 시작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 의뢰로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12명을 대상을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윤 당선인이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긍정 응답은 46.0%로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 응답 49.5%보다 3.5% 낮았네. 대선 직후인 2주 전에 비해 긍정 전망은 6.7%포인트 하락했고, 부정 전망은 8.4%포인트 상승한 거야.

국정수행 긍정전망이 20일 전 대선 당시 득표율 48.56%보다 낮다는 것은 2번을 찍었던 사람들이 벌써 실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세. 앞으로 5년 동안 원만한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겸손한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할 거야. 작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하면서 내놓았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스스로 성찰할 시간을 가져야 할 걸세.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집무실 용산 이전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국민 모두가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호기 있는 꿈이 이미 ‘꿈’으로 끝나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네. 국민에게 맞서는 대통령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말일세.

그나저나 바다 깊은지 모르고 철없이 나대다 날개가 흠뻑 젖어 돌아온 저 ‘흰 나비’는 다시 날 수 있을까? 다시 꽃을 찾아 훨훨 날 수 있길 바라네만… 아직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철없는‘흰 나비’에게 『채근담』 전편 133칙을 들려주고 끝내고 싶네. “파란 하늘과 밝은 태양처럼 빛나는 절의도/ 어두운 방, 깊숙한 방구석에서 삼가는 마음으로부터 배양되어 나온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못에 이른 듯, 살얼음을 밟는 듯/ 조심하는 태도에서 성숙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