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공시 일타강사’로 나서봅니다.

동화약품은 지난달 30일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했습니다. /뉴시스
동화약품은 지난달 30일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했습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가스활명수와 후시딘 등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중견 제약회사 동화약품은 지난달 30일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했습니다.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최대주주는 통상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보유 및 행사하는 주체로 여겨지며, 실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최대주주 변경’은 경영권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공시 중 하나로 볼 수 있죠.

동화약품의 주인이 바뀐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동화약품의 기존 최대주주는 창업주 일가 3세 윤도준 회장이었습니다. 윤도준 회장으로부터 최대주주 지위를 넘겨받은 것은 DWP홀딩스입니다. 그런데 DWP홀딩스는 윤인호 동화약품 부사장이 특수관계자와 함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윤인호 부사장은 윤도준 회장의 장남이죠. 따라서 큰 틀에서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승계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변화입니다. 사실상 윤인호 부사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동화약품은 앞서도 승계작업을 꾸준히 밟아오고 있었습니다. 2013년 동화약품에 입사한 윤인호 부사장은 2019년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진에 합류했죠. 같은 시기 윤도준 회장은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직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또한 윤도준 회장이 70대에 접어든 올해, 윤인호 부사장은 승진과 함께 또 한 번 존재감을 확대한 바 있습니다.

이에 이번 최대주주 변경을 통해 동화약품이 창업주 일가 4세 시대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최대주주 변경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요?

이번 최대주주 변경은 윤도준 회장이 보유 중이던 지분을 DWP홀딩스가 단순히 매입 또는 증여받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DWP홀딩스는 최근 동화약품의 비상장 계열사 중 하나인 동화지앤피의 투자사업부문을 분할해 합병했는데요. 이를 통해 동화지앤피가 보유 중이던 동화약품 지분을 가져오게 됐습니다. 동화지앤피는 동화약품 지분 15.22%를 보유 중인 단일 1대주주였죠. DWP홀딩스는 기존에도 동화지앤피 지분 100%를 보유하며 동화약품을 간접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번 분할 및 합병을 통해 동화약품 지분을 직접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동화약품의 최대주주가 DWP홀딩스로 변경된 것이고요. 

기존 최대주주였던 윤도준 회장의 개인 지분은 5.13%입니다. 윤인호 부사장은 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윤인호 부사장은 이미 2~3년 전부터 동화약품의 실질적인 최대주주나 다름없었습니다. DWP홀딩스가 동화지앤피의 지분을 늘려나가며 100%까지 확보한 것이 2019년~2020년이기 때문이죠. 

즉, 이번 최대주주 변경은 지분구조 자체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세 시대에서 4세 시대로의 전환, 그리고 승계작업의 마무리를 상징하는 이정표인 셈이죠.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윤인호 부사장이 DWP홀딩스를 통해 동화약품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면서 얻게 된 효과는 각종 부담을 덜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윤인호 부사장이 이번에 DWP홀딩스를 통해 확보하게 된 15.22%의 지분을 개인적으로 매입하거나 증여 받았다면 자금 및 세금 부담이 더 컸을 겁니다. 각종 변수와 논란이 불거지는데 따른 부담도 있었을 거고요. 

그런데 DWP홀딩스를 통해 동화지앤피 지분 100%를 확보한 뒤 분할·합병을 단행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일련의 과정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화지앤피의 기존 주주들이 동화약품과 계열사 및 재단, 윤도준 회장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보니 DWP홀딩스의 동화지앤피 지분 확보는 더욱 수월할 수 있었죠.

이처럼 동화약품의 승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DWP홀딩스는 2019년 11월에 설립됐습니다. 윤도준 회장이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고, 윤인호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처음 선임된 바로 그 해죠. 이는 DWP홀딩스가 애초부터 윤인호 부사장에 대한 승계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설립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같은 승계 방식의 큰 그림은 더욱 한참 전부터 그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화지앤피가 동화약품의 지분을 확대하며 단일 1대주주 자리에 오른 것이 2000년대 초중반이기 때문이죠. 

다만, 동화지앤피는 유리병 제조업체로 오랜 기간 전체 매출에서 동화약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왔습니다. 동화약품이 생산한 가스활명수가 동화지앤티의 병에 담겨 판매되는 식이었죠. 따라서 윤인호 부사장은 승계 과정에서 내부거래 및 비상장 개인회사를 발판으로 삼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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