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공시 일타강사’로 나서봅니다.

신풍제지는 지난 1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명 변경과 신규 사업목적 추가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신풍제지는 지난 1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명 변경과 신규 사업목적 추가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신풍제지는 지난 19일, ‘임시주주총회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임시주주총회가 개최된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주주총회는 중요한 사안과 관련해 주주들의 뜻을 모아 결정을 내리는, 기업의 최고의결기구라 할 수 있죠. 이날 주주총회에 상정된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눈길을 끕니다. 정관 변경, 그 중에서도 상호(사명)를 바꾸고 사업목적을 추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결정일까요?

신풍제지는 이번 임시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앞으로 사명에서 ‘제지’를 떼어내게 됐습니다. 이제는 신풍입니다. 물론 이 같은 사명 변경이 아주 이례적이고 드문 일인 것은 아닙니다. 매각이나 분사·합병 등을 계기로, 혹은 새로운 비전 제시 또는 쇄신 차원에서 사명을 바꾸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죠. 다만, 사명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만큼 다른 무엇보다 신중을 기해 결정되는 사안입니다.

신풍제지의 경우 주인이 바뀌지도 않았고 분사·합병 같은 변화 역시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명에서 기업의 정체성, 즉 핵심 사업내용을 의미하던 부분을 떼어냈는데요. 삼성전자로 치면 전자를, 현대자동차로 치면 자동차를 떼어낸 것과 같습니다. 신풍제지가 떼어낸 ‘제지’는 종이 제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명 변경은 신풍제지가 마주한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신풍제지는 2020년 1월 1일을 기해 평택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철거에 돌입했습니다. 고덕국제신도시 개발로 공장부지가 수용된데 따른 것이죠. 이에 따라 신풍제지는 기존 핵심사업이었던 백판지 제조업을 종료했습니다.

사실, 신풍제지가 토지 수용에 따른 백판지 제조업 종료를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고, 실제 대체 공장부지를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장 이전은 실행되지 않았고, 해당 부지들은 모두 재매각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토지 보상금을 두고 정부와 갈등이 있기도 했고요. 공장 이전 없이 평택공장이 철거에 돌입하면서 이곳에 있던 설비들 역시 동종업계 한창제지로 매각 처분됐습니다.

즉, 2년여 전부터 신풍제지는 종이를 제조하지 않았습니다. 종이를 만들지 않는데 사명엔 제지가 붙어있는 어색한 상황이 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는데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종이박스 대란과 쿠팡 상장 이슈 등으로 제지업체들의 주가가 폭등했을 당시 신풍제지의 주가도 요동친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신풍제지는 이번에 사명을 변경하면서 사업목적도 대거 추가했습니다. 사료 도·소매업, 비료 도·소매업, 농·축산물 중개업, 식음료의 제조·유통 및 판매업, 프렌차이즈업, 외식업 등 총 14개인데요. 유통 관련 사업이 다수 눈에 띕니다.

신풍제지는 앞서도 신규 사업목적을 추가해온 바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지류 제조업 종료를 전후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2017년엔 부동산 개발업을 추가했고, 2018년엔 전자화폐 및 가상화폐 관련 사업 등 4개, 2019년엔 화장품 제조 및 판매 등 5개를 추가했습니다. 지난해 역시 의료기, 설비, 시설, 기구, 차량, 건설기계 등 장·단기 렌탈업 및 도·소매업을 추가했죠.

즉, 신풍제지는 지류 제조업 종료 이후 이를 대체할 신규 사업 확보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이며, 이를 풀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실제 신풍제지는 최근 사업보고서 및 분기·반기보고서를 통해서도 “지류 유통사업을 중점으로 다양한 사업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류 제조업의 비중이 컸던 데다 미리 대안을 마련해두지 못했던 만큼, 실적 부진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신풍제지는 지류 제조업을 종료하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1,568억원의 연결기준 연간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지류 제조업 종료 이후 2020년 337억원, 지난해 259억원으로 매출이 급감하고 말았습니다. 올해도 상반기 매출액이 94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9.27% 줄어들었습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죠.

이처럼 새 출발이 시급한 신풍제지에게 이번 사명 변경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 신풍제지 임시주주총회 결과 공시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2022년 10월 19일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21019800221

 

- 신풍제지 2021년도 사업보고서, 2022년도 1분기보고서, 2022년도 반기보고서 공시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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