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오른쪽)과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21일자로 전기요금이 평균 5.4% 인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말 많던 ‘전기요금’이 결국 오른다. 지난 1월 인상된 뒤 10개월만에 또 오르는 것이다. 인상률도 평균 5.4%에 달한다. 주택용의 경우 2.7%가 올라 실제 고지서에는 천 몇백원 정도 더 내야하지만, 누진세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체감 인상률을 훨씬 커질 전망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세금만 줄줄이 오르면서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은 한숨에 땅이 꺼질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전기요금을 더 내게 되서’ 만은 아니다.

◇ “10개월 만에 또”

정부는 19일 “21일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주택용 2.7%, 일반용(빌딩·상업시설용) 5.8%, 농사용 3.0%, 가로등용과 심야전력 5.4%가 오른다. 교육용 전기요금은 인상되지 않았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6.4%로 조정돼 평균 이상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용 및 일반용은 평균 이상으로 조정해 전기 다소비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주택용은 최소 수준으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대신 도시가스에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난방용으로 쓰이는 등유에 대한 세금은 30%씩 낮췄다. 전기 대신 가스나 기름 사용을 권장한 것이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전기 소비 증가에 따라 수요만큼 공급 확대하기 보다는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매년 여름·겨울철에 반복되는 전력난 해결을 위해 전기 수요를 억제하고 유류나 가스 등으로 소비를 돌리려는 정부의 포석인 것이다.

대기업 등 산업계가 그동안 빌딩용과 가정용에 비해 훨씬 싼 전기요금의 혜택을 누려온 것을 감안하면 산업계의 볼멘소리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직격탄을 맞는 서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 올해 첫 전기요금 인상이 발표됐던 지난 1월 1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사내에 지하철 공사가 한전의 전기요금인상에 대한 부당함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물론 매년 여름 전력난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정부가 절전을 호소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가 내놓은 전기요금 인상 배경은 타당하다. 서민들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에 전기요금까지 인상되면서 서민가계에 부담감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 3년간 5번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평균 7개월마다 전기요금을 올린 것이다. 짧게는 4개월 만에 올린 적도 있다. 기업이나 국민들이 미처 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더구나 이번 전기요금 인상률은 지난 5년간 인상률 중 가장 높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률을 주택용에 적용할 경우, 월평균 310kWh(요금 4만8,820)원을 쓰는 4인 가구의 경우, 요금을 월 1,310원 정도 더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진 구간에 따라 인상액 격차는 최대 30배에 달한다.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이성림 교수는 “가정용 전기는 전기소비량이 많지 않지만, 사실상 대체제가 없고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그대로 가계 지출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보다는 전력소비가 큰 제품을 규제하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는 전기요금개편안을 발표하고 이틀만인 21일부터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종의 ‘기습인상’이다. 여기에 정부는 “당초 8% 인상을 하려 했지만, 최소한의 인상률만 반영해 5.4%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8%와 5.4%의 근거는 무엇에 대해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정부를 믿어달라는 식이었다.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없이 그때그때 단기적 처방으로 전력 수급 위기를 모면하려는 한다는 거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국민이 봉이냐”

무엇보다 서민들은 전력난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정부는 올 여름, 수요예측 실패와 원전 비리로 전력위기를 맞은 바 있다. 지난 8월 11일엔 실제 원전 비리로 인한 원전 무더기 가동 정지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블랙아웃(대정전) 직전까지 갔었다. 정부가 수요예측과 원전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전기요금 인상은 하지 않아도 됐던 셈이다.

이 때문에 전력난 책임을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에게 부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 지난 8월, 조환익 한전 사장이 전력수급상황실에서 수요관리 실적을 점검을 하고 있다.(사진=한전)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원래 전기요금을 8% 이상 올려야 하지만 관계기관들이 일정 부분 부담을 하기로 해 최소한의 인상률만 반영했다”고 생색까지 냈다. 원전 사고 등으로 인해 인상된 약 1조원에 대한 부분은 한수원이 부담하고, 한전의 자구노력으로 5,000억원 정도 원가인상 요인을 최대한 낮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기’일 뿐이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5.4%의 인상률은 당초 8% 인상안에서 한수원과 한전의 비용 부담 1조5,000억원을 뺀 규모다. 하지만 한수원이나 한전이 실제 부담하는 금액은 없다. 정부가 '자랑한' 1조5,000억원이라는 돈을 따로 마련해 메우는 게 아니라 한수원과 한전이 자구 노력으로 원가를 절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없는 돈으로, 결국 다 빚일 뿐이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정부의 전기요금 평균 5.4% 인상으로 한전의 내년 영업이익은 기존 대비 1조9,000억원 늘어난 6조4,000억원이 예상됐다.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한 명분으로 전기료 인상을 내세웠으면서도 한전은 6개 자회사의 실적을 합쳐 흑자를 냈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 판이다.

내년에도 전기요금은 최소 2~3%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 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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