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에 이어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치적 외풍이든 비리 때문이든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두 사람은 비슷한 길을 걷게 됐다. MB정부에서 회장 자리에 앉은 것도, 회장 취임 이후 실적이 신통찮은 것도, MB 정권 아래서 연임에 성공한 것도, 심지어 임기가 1년 6개월 가량 남은 것도 참 많은 것이 닮았다. 하지만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전혀 다르다.

▲ 사진은 지난 2012년 1월 1일 이석채 KT 회장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는 모습.

두 회사는 각각 통신(KT)과 철강(포스코)으로 대표되는 기업으로, 전혀 사업적 공통점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 회사는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최고경영자가 교체되는 묘한 닮은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KT 이석채 회장이나, 포스코 정준양 회장 모두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체설에 시달려 왔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체설이 제기됐을 당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도하차와 같은) 그런 일은 없다”며 강하게 부인한 것도 둘 다 똑같았다.

하지만 대외적으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닮은꼴’ 행보일지 몰라도, 이들이 떠나는 뒷모습과 남겨진 이들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우선 이석채 전 회장이 떠난 KT는 그야말로 ‘쑥대밭’인 분위기다. 이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검찰이 들쑤시면서 내부 임직원들의 동요가 심하다. KT는 이례적으로 3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전 정권에서 기세등등하게 대기업 행세를 하던 임직원의 기세도 꺾인 지 오래다. 그야말로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더구나 검찰이 이 전 회장을 둘러싼 배임·비자금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나서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관계자와 임직원이 서초동으로 불려나가고 있다. 이 전 회장에서 시작된 먹구름은 이제 정치권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쯤되다 보니 ‘CEO 잔혹사’를 몸소 겪고 있는 KT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이 ‘조용히’ 물러났더라면 이렇게까지 요란해지진 않았을 것이란 곱지 않은 뒷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 회장은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꿈쩍 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열린 ‘아프리카혁신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거취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이 백기투항 한 것은 검찰이 KT와 이 전 회장 자택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다. KT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지 13일만에 이 회장은 결국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직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솔로몬왕 앞의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관련 혐의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회사에 누가 될까 부담을 느껴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전 회장의 이 같은 행동이 오히려 ‘이석채 사퇴 동력’을 만들게 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포스코는 잠잠하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역시 퇴임 의사를 밝혔으나, KT와는 ‘내부 동요’의 정도가 다르다.

사실 정 회장도 이 전 회장 만큼이나 퇴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하차설이 제기됐고, 청와대의 경제인 모임에 초청을 받지 못하면서 회장직 흔들기가 시작됐다. 정 회장은 이석채 회장과 함께 9월 박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에서도 빠졌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청와대의 압력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포스코와 국세청은 모두 ‘정기 세무조사’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정 회장의 사퇴는 시간문제고 길어야 내년 주총이 마지노선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후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는 정치권 발 뉴스가 흘러나왔고 정 회장에 대한 사의 압력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결국 정 회장은 지난 15일 ‘항복’ 선언을 했다. 

▲ 사진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 룸에서 열린 '전경련 5월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떠나는’ 정 회장은 타이밍이 적절했다. 검찰의 수사 칼끝이 목까지 들이닥치기 전,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든 사정기관이든 정 회장의 숨통을 조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처럼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포스코 세무조사도 지금으로선 조용하다.

여기에 정 회장은 “내년 3월 주총까지”라는 단서까지 여유롭게 달았다. 정 회장으로선 유종의 미를 거둘 시간을 벌었다. 인수인계를 비롯해 벌여놓은 사업에 대한 조율과,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포스코 내부에서도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되는 만큼 CEO 교체에 따른 동요와 혼란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급하게 쫓겨나듯 회사를 떠나게 된 이 전 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재 정 회장은 공식 일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소화하고 있다. 되레 차기 CEO에 선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열린 이사회에선 “사퇴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와 소문이 그룹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더구나 내년 3월 주총까지 업무를 맡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수인계가 이뤄지는 모양새가 돼 퇴임하는 뒷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정 회장이 이석채 회장보다 ‘현명했다’는 웃지못할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며 ‘동병상련’의 길을 걷게 된 포스코와 KT는 이제 새 회장 선임을 앞두고 있다. KT는 ‘공모’를 통해 연내 후보 선정을 마치기로 했고, 포스코는 후보군을 추리기 위한 임시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신임 회장에 대한 인선 과정은 다르지만, “낙하산만큼은 절대 안된다”는 점에선 두 회사가 강하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두 회사가 또 다시 ‘CEO 잔혹사’라는 동병상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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