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가) 형제들 사이에서 수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은 올해 경쟁적으로 주요 계열사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롯데 측에선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재계에선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지분 경쟁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두 형제가 동남아시장을 두고 경쟁을 시작하는 모습까지 보여지면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좌), 신동빈 롯데 회장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제과 주식을 또 매입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 19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롯데제과 주식 576주를 매입했다.

◇ 지분 경쟁 돌입했나   

신 부회장은 지난 1월부터 롯데제과 등 한국 롯데 계열사의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지난 1월 롯데푸드 2만6,899주(1.96%)를 매입한데 이어 지난 8월 643주, 9월 620주, 10월 577주 등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3.65%까지 늘렸다. 

흥미로운 점은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도 올해 계열사들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1월 롯데푸드 지분을 1.96% 늘렸고, 5월 롯데케미칼 6만2,200주를 매입한데 이어 6월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을 각각 6,500주, 7,580주 매수했다. 또한 지난 9월 롯데손해보험 100만주(1.49%)를 사들였다.

두 사람의 지분 매입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롯데그룹은 지분 매입 등 지배구조의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형제는 지난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개인 돈을 들여 계열사의 주식을 매입한 적이 없다.

특히 일본 롯데의 경영을 맡고 있는 신 부회장이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늘린 점은 업계의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두 아들의 역할을 일찌감치 나눴다. 장남 신 부회장은 일본 롯데를, 차남 신 회장은 한국 롯데의 경영을 맡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해외시장도 지역을 나눠 공략하는 등 서로 간의 영역을 지켜왔다. 

그런데 갑자기 롯데가 형제들이 경쟁적으로 지분 매입에 나서자 업계에선 “그룹의 대권을 잡기 위한 후계 경쟁이 시작됐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올해 만 91살인 신 총괄회장은 자녀들에게 자산 승계를 거의 마무리했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 롯데를 아우르는 ‘왕회장’으로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 ‘왕회장’의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는 상황이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났고,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신 부회장과 신 회장의 각축전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지분 매입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일단 두 사람의 지분 보유율을 살펴보면, ‘막상막하’로 요약될 수 있다. 롯데그룹의 51개 계열사들은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로 얽혀 있다.

이 중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롯데쇼핑에서 두 사람의 지분율은 거의 비슷하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쇼핑의 지분 13.46%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지만, 신 부회장도 13.45%를 갖고 있어 형제간 지분율 차이가 0.01%포인트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롯데쇼핑의 지분을 매입하지 않았기에 후계 싸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선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통해 롯데쇼핑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은 각각 7.86%와 3.93%의 롯데쇼핑 지분을 갖고 있다. 신 부회장과 신 회장은 올해 롯데제과 지분율을 높이는데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은 해외시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그간 일본 롯데와 한국롯데는 해외 시장을 공략할 때 중복 진출을 피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 암묵적인 약속이 깨지는 모습이 동남아시장에서 포착되고 있다.

◇ 동남아시장서 격돌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장은 한국 롯데가 최근 몇 년간 집중 공략했던 시장이다. 한국롯데는 2007년 베트남 제과업체 비비카를 인수했고, 인도네시아에선 38개의 롯데마트 점포가 운영하고 있다. 한국롯데는 제과와 유통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왔다.

그런데 최근 일본 롯데가 동남아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롯데와 주력 업종이 겹치는 사업으로 말이다. 일본 롯데는 지난 7월 태국에서 제과공장을 가동시켰고, 11월엔 인도네시아 공장을 가동한다. 일본 롯데는 시장 확대를 위해 약 741억 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8월 “한국과 일본 양국의 롯데가 6억명이 넘는 거대 시장인 동남아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양측 간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태국 신공장 준공식에서 신 부회장이 “일본에서 태어난 과자를 해외로 넓히는 것은 일본 롯데의 역할이다. 과자 브랜드 전략은 일본이 주도한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업계에선 양측의 분업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석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신 회장은 동남아시장 확대에 의지를 드러내 이목을 끌었다. 신 회장은 28일 경기도 안산시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신공장에서 열린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이제는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동남아 미 진출국과 미주지역 등 선진국을 포함한 Post-VRICI 국가로의 진출을 추진해야 하다"고 말했다. VRICI는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를 이르는 말이다. 

한편 롯데그룹 측은 이런 재계의 시선에 대해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 측은 "두 형제의 지분 매입은 책임경영 강화와 개인적인 투자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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