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이례적으로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하며 회사가 초토화됐을 때만 해도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는 바람이 컸다. 비리 의혹으로 갑작스레 퇴장한 수장의 빈자리만 채운다면 다시 조직을 쇄신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길 것이란 희망을 가졌던 터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 이석채 전 회장의 후임 인선이 한창인 KT 얘기다.

▲ KT가 이석채 전 회장의 후임 인선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벌써부터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 등 이전투구 양상이 벌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KT가 이석채 전 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후임 인선 작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마감된 KT CEO 공개모집에 약 25명의 후보자가 응모했다. 헤드헌팅업체 등 전문기관을 통한 추천 약 15명을 더해 약 40여명에 이르는 인사가 지원했으며, 최근 2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추려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사회는 12일 쯤 회의를 열어 3∼4명 선으로 후보군을 압축할 계획이다.

KT CEO 공모에는 L사장, C사장, N사장 등 KT 전임 사장 출신 인사들이 대거 후보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KT 외부 인물로는 정보통신부 및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료 출신 인사들과 부처 산하기관장 출신 인사들이 공모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출신에서는 삼성전자 출신의 전임 사장들이 자천타천으로 후보 대열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 벌써부터 잡음 심한 KT CEO 인선

문제는 본격적인 후보 검증에 착수하기도 전부터 후보들 사이에서 온갖 추문과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후보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는 것인데, 분위기가 마치 정치권의 선거판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 흑색선전은 특정 인사의 과거 비위 의혹을 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출처도 근거도 불분명하다. 그저 특정 후보들을 깎아 내리기 위한 비방전 성격이 강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줄만 하다. CEO추천위원회가 근거없는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능력’과 ‘자질검증’이라는 본연의 취지에만 집중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자질있는’ KT 회장 후보를 추려야 하는 KT CEO추천위원회 자체가 ‘공정성’ 논란으로 이미 도마 위에 오른 상태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다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CEO추천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이석채 전 KT 회장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이 전 회장과 학연 등으로 연결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모두 이 전 회장이 선임한 인사들이다. 구조적으로 공정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데다, 일부 위원들이 특정인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지난 4월 16일, KT 대전연수원에서 열린 2013년 KT그룹 주니어보드 킥오프 행사에서 정성복(사진 우측) 부회장이 새롭게 선발된 KT그룹 주니어보드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석채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정 부회장은 이번 KT CEO 공모에 지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CEO 공모에 이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성복 부회장(그룹윤리경영실장)이 지원서를 낸 것을 알려지면서 공정성 논란에 더욱 불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정성복 부회장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던 2009년 KT에 영입됐다. 이석채 전 회장의 대표적인 법조계 인물 영입 케이스인 정 부회장은 영입 이후 줄곧 KT그룹윤리경영실을 총괄해왔으며, 지난 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정 부회장이 이끄는 윤리경영실 산하 지배구조팀은 CEO추천위원회 실무 지원을 총괄하고 있다. 누가 후보에 지원했고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소속돼 있는 인사가 직접 회장 후보에 지원한다는 것은, 시험문제를 낸 교사가 “나도 시험을 보겠다”며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 '제2의 이석채 시대' 열리나…

KT 내부에서는 이석채 전 회장 시절 낙하산 임원들 상당수가 자신의 자리보존을 위해 정 부회장을 내세운 것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때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표현명 사장을 미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청와대에서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부회장을 대신 밀기로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CEO 추천위원회 위원 중에는 사석에서 “KT 회장은 KT 출신이 돼야 한다”며 정 부회장을 대놓고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한때 정 부회장이 이 전 회장과 결별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으나 최근 분위기는 낙하산 인사들이 정 부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유독 ‘잠잠한’ 정부의 움직임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사실 이번 KT 회장 인선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또 다시 ‘낙하산 인사’가 재연될 것이냐 여부였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에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내정설’ 등과 같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쯤되다 보니 KT 내부에서는 ‘제2의 이석채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마디로 말해, 이석채 측근들에게 이석채 후임을 뽑으라고 맡겨놓은 셈이니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정 부회장은 7일 보직사퇴 의사를 밝혔고, 9일 연구위원으로 발령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T 안팎에서는 이번 CEO 선임 과정이 과연 공정할 수 있을 지 곱지 않은 시선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편 CEO추천위는 위원장인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를 비롯해 김응한 변호사,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차상균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춘호 EBS 이사장,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등 사외이사 전원과 사내이사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사장) 등 8명으로 구성됐다.

CEO추천위원회는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진행한 후 최종 후보 1명을 선정하게 된다. 면접심사는 14일 추천위 회의가 끝난 다음 주에 진행될 전망이다. 면접까지 거친 최종 후보는 위원장을 제외한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최종 후보자로 결정된 1명은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되며 임기는 오는 2017년 정기 주주총회까지다. 임시 주주총회는 내년 1월경 열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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