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삼성 노동문제 다루는 시민단체 ‘삼성노동인권지킴이’ 공식 출범
탄탄한 조직력, 방대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로 삼성그룹 정조준

▲ 지난 1월 30일 오전 불산 가스가 누출돼 협력사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 입구 도로에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은폐 규탄 기자회견을 갖던 중 진상규명과 대책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의 노동자 인권을 다루는 시민단체가 공식 출범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삼성인권지킴이)’가 그 주인공.

이들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워 노조결성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등 노동자들의 인권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삼성그룹의 노동권 침해를 감시하고 삼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됐다. 한 기업의 노동문제만을 다루는 시민단체는 국내에서 ‘삼성인권지킴이’가 유일하다.

◇ “삼성을 바꾸자”

이들은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삼성 노동인권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 출범을 선포했다.

출범식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성당에서 진행됐다. 출범식이 열린 대강당은 200여명 이상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채웠다. 고 황유미 씨의 부친인 황상기 씨를 비롯해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 등도 모습을 보였다. 또 지난 7월 출범한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노동자 등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무노조 경영을 일삼아 온 삼성에서 노동자들의 삶, 일상, 그들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한다”고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조돈문 상임대표는 “외국의 학자들이 어떻게 아직도 삼성이 무노조 경영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냐고 질문받을 때마다 부끄러웠다”면서 “우리는 명실공히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삼성 안의 처참한 노동인권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인권지킴이가 삼성 노동자를, 삼성 노동자가 인권지킴이를 지켜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10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출범식 모습.
이날 참석한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강정 해군기지에도, 밀양 송전탑에서도, 영주댐 공사장에도 삼성이 있지만 국회에선 ‘대선불복’처럼 삼성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 돼 있다”면서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그 금기를 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적인 권리인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이런 단체가 생기다니 아프다”면서 “국회의원으로서 사명을 느낀다. 의회에서도 열심히 지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막강한 조직력, 불편한 삼성 

삼성인권지킴이는 앞으로 삼성그룹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향상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게 된다. 하지만 기존의 시민사회단체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일단 지킴이는 △삼성의 노동인권 실태에 대한 여론 환기 △삼성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상담 △노동조합 조직 지원 △삼성 노동권 연구 등을 중심 사업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실증적 연구작업을 통해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노동권 지수인 ‘삼성노동권 지수’를 개발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삼성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동안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삼성의 노동자 인권에 대한 지적과 무노조경영에 대한 비판을 제기해왔지만, 삼성인권지킴이처럼 삼성그룹만을 ‘정조준’한 단체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겨누고 있는 사안들이 지독하게 예민한 문제들이다. 삼성인권지킴이는 공식 출범하기 전부터 삼성전자 근로자 백혈병,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 1월 30일 오전 불산 가스가 누출돼 협력사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 입구 도로에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은폐 규탄 기자회견을 갖던 중 진상규명과 대책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삼성이 이 단체를 예의주시하는 것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조직력’이다.

사실 삼성인권지킴이는 노조 만으로는 삼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지켜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생긴 네트워크다. 그만큼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막강하다.

삼성인권지킴이는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의 저자로 그동안 삼성의 노동탄압 문제를 연구해온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가 상임대표로 조직을 이끌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신승철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는다.

이 외에도 약 50여명에 달하는 지도자문위원도 참여한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 문규현 신부, 홍세화 ‘말과 활’ 편집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 김조광수 영화감독, 송경동 시인 등 각계 인사들이 삼성인권지킴이의 자문을 약속했다.

삼성인권지킴이가 발표한 조직구성에 포함된 사람들은 일개 기업을 향한 운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인권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여 삼성에 대항하는 대안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 노조와 사회운동단체 ‘두 개의 무기’

실제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부산 동래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사건’은 정당, 법조계, 언론 등과 발 빠르게 연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 덕분에 국회와 민변 등을 통해 언론에 알려지고, 즉각적으로 법률소송에 돌입하면서 이슈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노조’와 ‘사회운동단체’라는 두 개의 무기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두 개의 무기가 뭉쳤을 때 어떤 힘을 내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이 이들 단체를 가시처럼 여기는 단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조돈문 상임대표는 “노동단체에서 삼성 노동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외부에서 오히려 공정성 문제를 제기해왔다”면서 “지킴이 같은 시민단체가 나서면 삼성의 노동인권 문제를 사회적 의제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인권지킴이는 이슈에 따라 결합과 해체를 반복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의 연대체와 달리 사무실과 상근자를 두고 독자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그만큼 결연한 각오로, 체계적으로 꾸려진 조직이라는 점에서 영향력과 파괴력이 적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지킴이는 출범식 바로 다음날인 11일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관 앞에서 아시아 각국에 진출한 삼성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사례를 엮은 ‘삼성노동자 아시아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3일부터는 ‘삼성재벌의 지배구조와 축적방식’을 주제로 내년 2월까지 격주로 연속 토론회를 개최한다.

과거 삼성에 맞선 개인들의 폭로나 저항은 ‘자본’이라는 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제압됐다. 그러나 이제 삼성 내부에서도 커다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이에 힘을 실어주는 ‘강한’ 시민사회단체가 탄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삼성인권지킴이’의 출범을 바라보는 삼성 안팎의 시선은 분명 다르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출범식 홍보 전단 자료.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지도자문위원 
 
■정치권 :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은수미 민주당 의원, 이용길 노동당 대표, 장하나 민주당 의원, 전순옥 민주당 의원

■노동계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단병호 전 의원,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 이상무 공공운수연맹 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전 위원장,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시민사회 :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대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법조계 : 김선수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 백승헌 변호사(전 민변 회장), 이덕우 변호사, 최병모 변호사

■종교계 : 김장환 성공회 신부, 김인국 신부, 나승구 신부, 도철 스님, 문규현 신부, 장동훈 신부, 장창원 목사, 정진우 목사, 최헌국 목사

■언론계 : 이강택 KBS PD, 홍세화 '말과 활' 편집인

■학술계 :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김인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전임교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유병제 대구대 생명공학과 교수(교수노조 위원장),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문화예술 : 김성희 작가, 김수박 작가, 김조광수 감독, 김태윤 감독, 박준 가수, 송경동 시인, 이동연 한예종 교수

■반올림 : 황상기(고 황유미 씨 부친)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