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신임 회장에 내정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KT의 새 수장이 결정됐다. 주인공은 ‘삼성’ 출신인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황 내정자가 산적해 있는 KT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최종 후보자를 결정하는 면접 당일(16일)까지만 해도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과 임주환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등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 중 한 명이 KT 회장에 낙점되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거나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는 등 청와대와 직간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 ‘친박’ 아닌 ‘삼성출신’

하지만 결정된 인물은 ‘의외’였다. CEO추천위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KT 회장으로 내정했다. 그의 경영능력과 글로벌 감각을 높게 평가하고 이를 KT에 접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KT가 처한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CEO추천위는 여기에 황 내정자가 정부와 경쟁사 등 회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도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KT 신임 회장으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내정된 데 대해 KT새노조 및 KT계열사 노조, 사무금융연맹 등 상급노조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17일 황 내정자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출신이란 점에 강한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사진은 지난 2011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세종로 KT광화문지점 앞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타살을 추모하는 기독인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절망의 공장 쌍용자동차, 죽음의 기업 KT, 대량해고 한국철도공사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타살 추모기도회에서 참가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황 내정자의 경영능력은 길게 얘기할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전자공학박사를 받은 황 내정자는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이사, 반도체연구소장과 메모리사업부장(사장), 반도체총괄사장, 기술총괄사장 등을 거쳤다. 화려한 스펙뿐만 아니라, 실제 능력면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 같다. 황 내정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꼽히며 2002년엔 ‘황의 법칙’을 발표, 세계 반도체 업계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하지만 황 내정자가 향후 3년 동안 끌고 가야할 KT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통신경험이 부족한 황 내정자가 현재 악화된 KT의 실적을 어떻게 끌어올릴지도 주목받고 있다. KT는 지난 3분기 이통 3사 중 유일하게 매출과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이 감소했다. 가입자 수도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순감하고 있으며, 지난 3분기에는 11만4,000명 가입자가 이탈했다.

이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당장 이석채 전 회장의 사퇴로 인해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신·구세력의 물갈이’ 여부로 관심이 모아진다.

황 내정자는 이석채 전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남긴 ‘낙하산’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인사 일부가 전ㆍ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에 휩싸여 내부 분열 문제가 제기돼 온 만큼 기존 KT 임직원과 이들간 내부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특히 황 내정자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KT 노조’다. 현재 KT 노조는 황 내정자가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무노조 기업’ 삼성 출신인 그가 KT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

◇ ‘노동인권 문제’ 최대 난관 될 듯  

이해관 KT 신임 노조 위원장은 “KT에 반노동 기업문화의 상징인 삼성출신 후보가 내정됐다는 점에서 노동인권 문제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등에서 황 내정자의 선임을 가장 우려했던 바 있다.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4명의 후보자 중 누가 되더라도 달라질 게 없었지만,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살인적인 노무관리 문제로 현재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동탄압 등으로 직원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올해만 43명의 KT 전현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현직은 23명, 명예퇴직자 중 58세 이전 사망자는 19명이다.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다.

▲ KT.
황 내정자는 지난 1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이동하려다 취소됐는데, 이 이유 역시 반노동 경영의식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대학생들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 등은 황 내정자의 교수 선임을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선임이 백지화됐다.

이 때문에 KT 안팎에서는 황 내정자의 리더십 시험대는 결국 조직운영과 내부통합 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외부에서는 황 내정자에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워낙 KT가 맞닥뜨린 현안이 크고 많기 때문이다.

KT는 국내 재계 순위 11위(공기업 제외)로 자산규모 34조8,000억원에 계열사만 54개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23조원, 계열사 임직원을 모두 합치면 6만여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다. 과연 가시밭길을 앞둔 황 후보자가 어떠한 스타일로 ‘거대 통신공룡 KT’를 이끌어 갈 지 KT그룹 임직원은 물론 정재계가 초미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황 내정자는 다음달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으로 임명될 전망이다. 이후 내년 1월 중순에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임기는 2017년 정기 주주총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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