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두산건설, SK건설 등 무려 21개 건설사가 인천도시철도 2호선 건설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새해 벽두부터 건설업계에 ‘폭탄’이 투하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인천도시철도 공사와 관련해 입찰 담합한 혐의로 1,300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담합에는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줄줄이 연루돼 충격을 주고 있다.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두산건설, 삼성물산(건설부문) 등 적발된 업체만 무려 21개사다. 국내 건설시장을 주도하며 위상을 떨치던 이들 대형 건설사가 결국 ‘짜고 친 고스톱’으로 ‘건설명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무려 21개 건설사의 ‘나눠먹기’

태풍의 진앙지는 지난 2009년 4월 인천광역시 도시철도건설본부가 발주한 인천도시철도 2호선 건설공사 현장이다. 이곳 16개 공구 가운데 한 곳을 뺀 15개 전 구간에서 가격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는 무려 21개사다.

대림산업, 대우건설, 두산건설, 롯데건설, 삼성물산, 신동아건설, 쌍용건설, SK건설, GS건설, 코오롱글로벌, 태영건설, 포스코건설, 한양,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공사를 낙찰받은 15개사와 고려개발, 금호산업, 대보건설, 서희건설, 진흥기업, 흥화 등 담합에 가담한 6개사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건설사까지 모두 끼어들어 인천도시철도 2호선 공사를 나눠먹은 셈이다.

이들은 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특정 공구 낙찰자와 들러리를 정하는 수법을 썼다. 이를 위해 개별적인 모임을 갖거나 유·무선 연락을 통해 합의하고 말을 맞추는 등 치밀하고 계획적인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대형 건설사 5곳은 5개 공구에서 저마다 한 곳씩 다른 건설사의 들러리를 서 줘 경쟁을 피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3공구를 낙찰받은 현대산업개발은 GS건설(205공구)의 들러리를 서고, GS건설은 현대건설(211공구), 현대건설은 대우건설(207공구), 대우건설은 SK건설(209공구), SK건설은 다시 현대산업개발의 들러리를 서는 식이다.

또, 삼성물산은 진흥기업(213공구)을, 대림산업은 태영건설(214공구)을 각각 들러리로 세워 입찰에 참여했다. 포스코건설과 롯데건설은 201공구, 215공구에 대해 맞교환 방식으로 낙찰자-들러리를 정한 후 입찰에 참여한 경우다.

이와 함께 두산건설, 롯데건설, 신동아건설, 쌍용건설, 코오롱글로벌, 태영건설, 한양 등 7개 중견건설사들은 대형건설사가 참여하지 않은 공구에 들러리를 세워 공사를 낙찰 받았다.

금호산업의 경우 코오롱글로벌의 공동수급업체로 참여했으나, 들러리 합의에 관여한 사실이 있어 피심인에 포함됐다.

▲ 각 공구별 낙찰자-들러리 현황(사진=공정위)

◇ 2,200억 국민 혈세, 제 주머니에 채웠다

들러리를 선 건설업체들은 일부러 품질이 낮은 설계서를 제출하는 수법을 썼다. 의도적으로 점수를 낮게 받은 것인데, ‘담합’의 고전적 수법인 입찰가격을 올리는 것은 적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 같은 지능적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이를 ‘들러리 설계’ 또는 ‘비(B)설계’라고 지칭된다.

이렇게 ‘짜고 친 담합’으로 인해 건설사들은 1조2,288억원에 공사를 따냈다. 낙찰률은 97.56%로 치솟았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건설, 태영건설, 쌍용건설, 신동아건설 등은 낙찰률이 모두 99%를 넘었다. 업계에서는 최근 공공공사 평균 낙찰률이 80% 정도고, 전체 낙찰금액이 1조2,288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건설사 담합으로 2,200억원 가량의 국민 세금이 건설사 주머니를 채우는 데 낭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21개 건설사들에 시정명령과 1,3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 부과액은 2012년 4대강 1차 턴키공사 입찰 담합 제재 때의 1,115억원보다 많은 것으로, 건설업체 담합 사건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건설사별 과징금은 대우건설 160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건설 141억원, 현대산업개발 140억원, SK건설 128억원, GS건설 120억원, 포스코건설 96억원 등의 순이다.

포스코건설은 96억원의 과징금 이외에 법인과 3명의 임직원에게 따로 1억 4,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2012년 공정위의 추가 현장조사 때 3대의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없애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여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특히 낙찰을 받은 15개 건설사에 대해서는 법인과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한편 인천 도시철도 2호선 공사는 2016년 개통을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국비 1조3,000억 원 등 모두 2조1,000여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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