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부지방 일대에 기록적 폭우가 강타했다. 수해 직후 처참했던 구룡마을은 100일 정도 지난 현재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이었다. 위는 구룡마을 입구, 아래는 구룡마을 내 풍경./ 사진=연미선 기자
지난 8월 중부지방 일대에 기록적 폭우가 강타했다. 수해 직후 처참했던 구룡마을은 100일 정도 지난 현재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이었다. 위는 구룡마을 입구, 아래는 구룡마을 내 풍경./ 사진=연미선 기자

시사위크∣개포동=연미선 기자  지난 8월 초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시간당 100mm이상 집중된 호우에 지대가 낮은 지역은 물에 잠기기도 했다.

판잣집 등 가건물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도 수해를 입은 곳 중 하나였다. 지난 8월 기자가 방문한 수해 현장은 참담했다. 고지대에서부터 쏟아지는 세찬 물줄기는 마을 곳곳을 할퀴고 지나갔다. 천장이 무너진 집도 수두룩했다.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지 100일 정도가 지난 현재, 구룡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기자는 지난 17일 구룡마을을 다시 한 번 찾았다.

◇ “작은 도움만으로도 감사”

현수막들이 걸려있는 구룡마을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자 드문드문 세워진 판잣집이 보였다. 인적은 드물었지만 지난 8월보다 정리가 된 모습이었다. 벽을 새로 세운 곳도 보였다.

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찌개를 파는 작은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박모(71‧여) 씨는 “집은 그나마 좀 위쪽에 있어서 괜찮았는데 가게에는 물이 많이 들었었다”고 폭우 당시를 기억하면서 “그래도 정부가 지원해준 돈으로 벽을 새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사는 사람들은 큰 도움은 못 받지만 그래도 작은 도움을 받으면서 그런대로 산다”며 “어쨌든 살아있으니 좋은 것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길목에서는 집으로 걸어 올라가던 또 다른 주민 김모(75‧여) 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해 당시 구룡중학교 이재민 대피소에 일주일 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복구가 안 된 집이 많았지만 중학교 개학이 다가와 더 이상 대피소를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강남구청 측은 당장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재민들을 위해 호텔 숙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씨는 숙소로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살던 집이 어느 정도 수리가 돼서다. 그는 “야외용 돗자리 같은 걸 깔고 마루 한쪽에서 생활하고 그랬다”며 “친척들이 와서 쓸고 닦고 하면서 도와주기도 했다. 참 고마웠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폭우로 인해 구룡마을이 침수됐을 때부터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을 다니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40대쯤 (구룡마을에) 들어와서 한 몇 년 살다가 나가야지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됐다. 살다보니까 빨리 안 나가지더라”면서 “그렇게 3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참 쉽지만은 않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구룡마을은 아직 완전히 복구된 것은 아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겨울에 주민들은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사진은 침수 이후 벽을 새로 세운 구룡마을 내 풍경./ 사진=연미선 기자
구룡마을은 아직 완전히 복구된 것은 아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겨울에 주민들은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사진은 침수 이후 벽을 새로 세운 구룡마을 내 풍경./ 사진=연미선 기자

◇ 다가오는 ‘겨울’… 걱정 앞선 구룡마을

기자는 구룡마을 입구에서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도 만났다. 그에 따르면 최근 구룡마을은 침수 피해 복구에 이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로 바쁘다.

유귀범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지난 8월 있었던 수해에 대한 복구는 아직 진행 중에 있다. 그는 “처음에는 200만원씩 나왔고 추가 100만원이 나왔다”며 “그런데 자재값도 인건비도 올랐다. 지금 나오는 복구비용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폭우로 인해 구룡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집도 살림도 모두 없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친척 등 주변 도움을 받은 주민의 경우 복구에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복구조차도 어려운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가오는 겨울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귀범 주민자치회장은 “처음 여기가 생겼을 때는 전기나 수도 공급도 안 됐다”면서 “지금은 자체적으로 농업용 전기와 변압기를 사서 운영하고, 물도 직접 연결한 파이프로 공급된다”고 말했다.

직접 물을 끌어오는 구룡마을의 수도관은 땅 속이 아니라 위에 있다. 그래서 구룡마을의 겨울은 더 험난하다. 수도관이 밖으로 노출돼 있어 쉽게 얼기 때문에 계속해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이 때문에 구룡마을의 수도세는 일반 가정보다 더 많이 나온다.

화재 위험도 크다. 유 주민자치회장은 “주민들 중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이 대부분이라 음식을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깜빡하거나, 전기가 노후화돼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등 위험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굉장히 불안하다”면서 “특히 6지구 같은 경우 골목이 미로처럼 생겨서 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겨울에 취약한 구룡마을을 돕기 위해 봉사단체가 나서기도 했다. ‘사랑의 연탄’과 ‘연탄은행’ 등에서는 구룡마을에 연탄을 제공하고 물에 잠긴 보일러 열선 등을 무상으로 수리해주기도 했다. 

구룡마을은 서울 내 마지막 남은 무허가 판자촌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곳에 모이게 된 주민들과 강남구청은 개발 방식을 두고 갈등관계가 이어져 왔다.  현재 구룡마을엔 6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지난 8월 폭우엔 285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한 정부의 대책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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