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성웅이 영화 ‘젠틀맨’(감독 김경원)으로 돌아왔다. / 콘텐츠웨이브
배우 박성웅이 영화 ‘젠틀맨’(감독 김경원)으로 돌아왔다. / 콘텐츠웨이브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악역을 할 때 극도로 더 나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관객들에게 젠틀한 게 아닐까.” 배우 박성웅이 영화 ‘젠틀맨’(감독 김경원)으로 관객 앞에 섰다. 또 ‘빌런’이다. 그러나 질리지 않는다. 이미 아는 얼굴이지만, 섬뜩하고 강렬하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박성웅의 노력 덕이다.  

‘젠틀맨’은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 분)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다. OTT 서비스 ‘웨이브’의 영화 펀드 첫 투자 작품이자 오리지널 영화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신예 김경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극 중 박성웅은 악랄한 로펌 대표 변호사 권도훈을 연기했다. 권도훈은 사법계 인사들에게 전방위적인 로비를 통해 로펌을 세운 인물로, 500억 규모의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도 가볍게 빠져나오는 등 권력의 정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인물이다. 

박성웅은 기존 악역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품위 있는 말투, 매너 있는 성격까지 디테일한 설정을 더했고, 그 결과 비슷한 듯 다른, 자신만의 또 하나의 빌런 캐릭터를 완성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빌런을 완성한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또 하나의 빌런을 완성한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성웅은 “‘신세계’(2013) 이중구를 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면서 새로운 빌런 권도훈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고민을 기울였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젠틀맨’이라는 작품에 참여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고 애정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똑같은 빌런이 나올까 봐 처음에는 고사했다. 겁이 났던 것 같다. 똑같이 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러다 주지훈이 설득을 했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그냥 박성웅으로 보였다고 하더라. 지훈이와 작품을 제대로 같이 한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한 번 만났다.(웃음) 영화를 보고 나니 자신감, 확신이 생겼다. 무대인사도 재밌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빌런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제일 큰 산은 ‘신세계’ 이중구였다. 당연히 이중구와 다른 인물이고,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았다. 로펌 대표라는 설정, 테니스를 즐겨 하는 점, 펜션 세트장 등 여러 장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테니스 장면에서 부상도 있었다고. 
“왼쪽 발톱이 까맣게 멍이 들었다. 평소에도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 코치로 나온 배우가 대학교 때까지 선수였는데, 그 친구가 잘 친다고 칭찬하니까 그 말에 더 막 친 거다. 그랬더니 발톱에 멍이 들었다. 멍 빠지는 데 몇 개월이 걸렸다. 촬영이 다 끝났는데도 멍든 발톱을 보면서 ‘젠틀맨’이 계속 생각났다. ‘젠틀맨’은 나의 왼쪽 엄지발가락이다.”

-극 중반이 다 돼서 등장했다. 그만큼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걸 잘 표현해 줬더라. 표현보다는 때와 장소에 따른 것 같다. ‘나 첫 등장이야’ 이렇게 나오지 않고 그냥 툭 나오잖나. 대신 그전에 장치를 다 깔아 놨다. 귀족 출신인데다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사건에 얽혀있는지. 오히려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존재감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하는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존재감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하는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그냥 웃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배우가 가진 특유의 아우라 때문인 듯한데, 그런 장면들에서 어떤 감정, 생각을 갖고 연기하나. 
“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아들 생각하면서 웃었다. 하하. 아내 덕이다. 아내가 결혼하고 나서 6개월 동안 가만히 있으면 화났냐고 물어봤다. 평온한 상태였는데 자꾸 화냤냐고 하더라.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보이는구나 싶었다.(웃음) 그래서 연기할 때도 뭘 더 안 하려고 한다. 오히려 더 환하게, 더 천진난만하게 웃으려고 한다. 그 상황에 들어갔을 때 빌런이 되는 거다. 의미를 주지 않고 더 일상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더 나빠 보이니까. 권도훈은 그냥 ‘나쁜 X’였다. 밑에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하다가도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이스하게 보이려고 했다. 그래야 틀어졌을 때 더 배가 된다고 생각했다.”

-신예 김경원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신인감독의 열정과 패기가 당연히 있는데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준비해서 가면 다 받아들일 줄 알고 제안도 하는 감독이었다. 사실 입봉감독은 제안을 잘 안 한다. 그냥 배우한테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 선배니까 그냥 ‘오케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경원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너무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김경원 감독은 요구를 했고 그에 맞게 연기를 했는데 전체적인 흐름에 맡더라. 그냥 넋 놓고 있는 감독은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앞서 언급했듯 ‘신세계’는 배우 박성웅의 필모그래피에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다만 그만큼 넘어야 할 과제일 것도 같다.
“되게 고마우면서도 숙제다. 고맙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중구 때문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권도훈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 ‘신세계’가 10년이 됐다. 오는 2월 21일이면 개봉 10주년이다. 그런데 아직도 케이블채널에서 방영이 된다. 지금 고등학생들이 날 보고 ‘중구형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트레스보다는 기분 좋은 숙제다. 넘어야 한다고 고민하다 보니 계속 발전하지 않겠나. 권도훈도 마찬가지다. 빌런이지만 똑같이 보이지 않기 위해 연구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것 같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배우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배우 박성웅. / 콘텐츠웨이브

-그때와 지금 배우 박성웅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때 박성웅은 힘을 뺄 줄 모르고 달려들기만 했다면 지금은 힘을 뺄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이 알게 될 거다.” 

-만약 다시 이중구를 만난다면. 
“아주 맛깔나게 할 수 있다. 박성웅인데 누아르 한 번 더 해야 하지 않겠나. 액션도 있고.” 

-악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오케이 마담’ 같은 코미디 장르를 소화하는 능력도 흠잡을 데 없다.  
“예전에는 악역을 하면 밀가루도 던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연기를 잘한다, 멋있다고 칭찬해 준다. 그래서 악역을 할 때 더 극도로 나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관객들에게 젠틀한 거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을 위해 항상 도전을 하긴 한다. ‘오케이 마담’ 같은 작품이 연기하기 더 편하기도 하다. 평소 일상이 이중구나 권도훈은 아닐 거잖나. 물론 갖고 있는 하드웨어 자체가 가만히 있으면 화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지만, 또 반대로 그런 나의 장점이 코미디를 하면 진짜 웃기게 되는 거다. 정우성처럼 안 생겨서 다행이다.(웃음)” 

-후배들이 잘 따르는 배우 중 하나다. 비결이 있다면. 
“만약 내가 선배가 된다면 동생들을 잘 이끌어줘야지 생각했다. 배우들끼리 작품을 보고 연기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현장에서 직접 호흡을 맞춰보지 않는 이상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는데, 그래서 어떤 역할이 있을 때 추천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낙하산이 아니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추천을 하는 거다. 그러다 잘 돼서 캐스팅이 되면 나한테 보은하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후배들한테 똑같이 해주라고 한다. 나는 내가 알아서 잘 할 거다. 이런 마인드는 60대, 70대가 돼도 져버리지 않을 거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젠틀맨’은 막판 타격감이 너무 좋은 작품이다. 앞이 거의 생각 안 날 정도다. 주지훈이 기술시사가 끝나고 ‘형, 영화 보면 알 거야’라면서 자신만만했다. 나도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보고 나니 지훈이가 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더라. 흥행 성적도 중요하지만 잘 되든 안 되든 내가 이런 영화를 같이 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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