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이 영화 ‘교섭’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임순례 감독이 영화 ‘교섭’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 정재호(황정민 분)와 현지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 분)의 교섭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메가폰은 임순례 감독이 잡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토대로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이라는 소재를 오직 진실을 향해 가는 언론인의 모습을 통해 정면 돌파한 ‘제보자’, 자연에서 얻는 한 끼의 소중함과 힐링을 보여준 ‘리틀 포레스트’까지. 

새로운 도전과 시도, 그 뒤의 뚝심과 인간애를 담아 관객을 매료해 온 그는 ‘교섭’을 통해 인간애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그만의 작품 세계를 한 단계 더 높고 넓은 주제의식과 스케일로 펼쳐 보인다. 2007년 실제 발생했던 한 교회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모티프로 한 영화에서 피랍된 인질들이 아닌 그들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국가의 존재 이유와 생명의 가치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임순례 감독은 ‘교섭’을 연출한 이유부터 요르단 로케이션 등 촬영 비하인드,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교섭’을 두고 “재미도 있지만 생각해 볼 거리도 있는 영화”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교섭’.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교섭’.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이 쉽지 않았다고. 
“원래 해외 촬영 먼저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국내 촬영을 먼저 하고 요르단에서 한 여름에 찍게 됐다.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요르단에서) 촬영했다. 완전히 여름 한가운데 찍었다. 코로나19에, 무더위에 쉽지 않았다. 또 외국이라고 해도 영어만이 아니라 아랍어도 있고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배경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나와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두 가지 언어를 쓰더라. 이란과 국경이 맞닿아있어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언어 자체도 페르시아어다. 문자도 아랍문자가 아니고 페르시아문자를 차용해서 쓰고 또 탈레반이 집중돼 있는 동부 쪽은 파슈토어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쓴다. 그래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된다. 그런데 그것을 또 아프가니스탄 배우가 아니고 요르단 배우들과 해야 하니 아주 힘들었다.”

-영화의 모티프가 된 사건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인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존재하는 가운데, 해당 소재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공개 전부터 ‘인질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럼에도 연출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떻게 만들어도 논쟁적일 거라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나중에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는 뭔가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탈레반이라는 집단을 시각화했을 때 어떨까.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잖나. 국제 뉴스에서나 본 것들을 가깝게 당겨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한국영화에서 쉽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사건으로 보면 논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결국은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한 집단은 기독교적인 신념을 위해 선교를 하러 간 것이고, 탈레반은 자기들이 신념에 따라 행동한 거다. 신념과 신념이 부딪히는 지점에도 관심이 갔다. 또 국가와 국민의 관계,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지는 게 맞는가, 잘못을 한 국민은 국민이 맞나 등 묵직하고 큰 테두리에서 던져볼 수 있는 주제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접하지 않은 관객들은 혹시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그런 게 아닌 걸로 밝혀진 것 아닌가?(웃음)”

-실제 사건을 조금은 비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설정을 아예 다르게 가져간다든지.   
“내가 관심을 가진 요소 중 하나는 23명이라는 많은 수의 한국인이 납치됐는데 교섭해야 하는 상대가 우리가 정말 알지 못하는 미지의 나라 테러집단인 탈레반이고 아무 정보도 없이 그들과 교섭해야 하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사람들의 한계와 태도에 대한 거였다. 아예 다르게 가져갔다면 신념이 부딪혔을 때 상황이나 국가와 국민의 관계, 주제를 표현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인질이 아닌 그들을 구하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교섭’.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인질이 아닌 그들을 구하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교섭’.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인질보다 그들을 구하려는 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논쟁을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부분(인질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진 않았다. 처음부터 교섭을 하러 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하자는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인질들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 옹호를 하던 비난을 하던 그것은 논쟁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에, 두 인물에 포커스를 둔 것은 처음부터 의도했던 거다.” 

-실제 이 사건이 발생하고 인질들이 풀려나기까지 디테일한 일정은 거의 극비에 굳혀져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 기반인가.    
“외교부 안에서도 극비로 보안을 철저히 하고 있다. 부분 부분 드러나는 것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세스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단기 선교를 떠난 선교인들이 탈레반에게 납치가 됐고 그것을 해결하러 한국에서 교섭단이 갔다는 것, 중간에 인질이 살해된 것, 결국에는 돌아왔다는 큰 줄기만 사실이고 나머지 인물이라든가 구체적인 프로세스는 다 창작된 부분이다. (교섭 과정은) 당시 뜬소문도 많았고 추측도 많았다. 브로커에게 당했다는 말도 있었다. 지르가(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부족 원로들이 참여하는 회의)는 실제 사법적인 기능도 한다.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생기면 부족장들이 회의를 열어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납치됐을 때 지르가가 열린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의 보편적인 문제 해결 조직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루게 됐다.” 

임순례 감독이 작품에 관한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임순례 감독이 작품에 관한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드라마적인 요소가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질이나 선교를 하러 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더 극적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논쟁에 휩쓸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나 영화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인 기획 속에서 극화를 심하게 하게 되면 본질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균형점을 찾은 것 같다. 그 지점은 실화를 극화하는 데 있어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화와 픽션의 믹스나 지점들을 어디서 끊고 어떤 방식으로 섞을 것인가 항상 고민이다.”

-제목은 매우 직관적이다. 
“제목이 제일 짓기 어려운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처음에는 가장 직관적인 제목을 하고 바꾸는데, 일단 가제를 쓰면 끝나는 거다. 우선 ‘교섭’을 붙이고 나중에 좋은 것을 찾겠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2019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당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교섭’ ‘피랍’ ‘탈출’이었다. 모두 두 글자 제목인데다 중동 배경, 납치 소재였다. 다 고민을 많이 했다.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 먼저 들어가는 게 최고다 했다. 너무 헷갈리잖나. 그러다 ‘탈출’이 ‘모가디슈’로 바뀌었다. ‘모가디슈’라도 바꿔서 다행이다. 하하.” 

-대면 교섭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연출적으로 어떤 고민이 있었나.  
“우선 공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변주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배우의 연기가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황정민도 당연히 그 신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워낙 연기 경험이 많고 잘 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황 배우에 대해서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 배우가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프로페셔널한 전문 배우는 아니었다. 연기 경험이 엄청 많은 분이 아니었고, 무섭고 카리스마 있게 보여야 하는데 실제로 봤을 때 장난기도 많고 다정해 보여서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연기라는 게 상대적이다 보니 황배우와 같이 대등하게 잘 해줬다. 배우의 연기에 집중했던 신이다.”

‘교섭’으로 임순례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현빈.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으로 임순례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현빈.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국가적 재난,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결정권자로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잘 해결되는지 달라지는데, 그런 바람이 담겼다고 해석해도 될까. 
“정재호가 ‘외교부의 제일 사명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극 초반 ‘이 협상의 기조는 어떠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 나온다. 공무원이나 국가의 기능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황정민과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재회했다. 어땠나. 
“황정민과 다정하게 대화하거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간담회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그러는 것 같다. 황정민도 비슷할 거다. (황정민이) ‘교섭’을 하게 된 게 영화의 첫 출발을 함께 한 것에 대한 감사, 이만큼 성장했고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경험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고. 또 황정민이라는 배우 때문에 투자가 된 것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 대해 본인도 잘 알고 있고 놀라울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고 집중력도 강했다. 그런 에너지들이 동료 배우나 스태프들에게도 큰 가이드가 됐던 것 같다. 고마웠다.”

-현빈과는 첫 작업이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과거 회상 신은 영화가 공개되면 뜨거운 반응이 있을 것 같다. 감독의 노림수도 있었나.     
“노린 거 아니다. 하하. 대식이라는 인물은 과거 트라우마도 있지만 중동 지역을 너무 사랑해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그곳을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런 대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현빈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염, 헤어스타일, 의상 등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픽스가 됐는데 과거는 확실하게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그 지점에서 수염이 있고 없고가 제일 크잖나. 수염을 없애고 피부도 조금은 뽀얗게, 그리고 슈트를 입었다. 딱 세 가지였는데 그렇게 나온 거다. 편집할 때도 확실하게 차별화가 되겠다 정도였지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 샤워신이나 액션은 노린 게 맞다.(웃음) 현빈이라는 배우가 나오면 액션에 대해 기대할 것 같더라. 다만 전형적인, 장르적인 액션과는 다르다. 이유 없는 액션이 아니다. 현빈도 다양한 영화에서 액션을 많이 했는데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걸 하고 싶어 했고 새롭게 보여주자 고민했다. 대역을 전혀 안 쓴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것은 배우가 직접 했다. 사전에 리허설도 많이 하고 철저하게 준비를 했더라.”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임순례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임순례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장르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액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채워진 영화라면 힘들었을 거다. 바로 전작인 ‘리틀 포레스트’와 비교하면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내용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10배 정도 예산이 더 들어간 영화다.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산에 맞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아무리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산업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액션이라든가 볼거리 등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예산이 많이 들어갔으니 블록버스터이긴 한데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진 않다. 내 색깔은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상업적인 것이나 대중적인 것을 차용하는 정도의 영화다.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해피한 일인 것 같다.”

-장르가 무엇이든,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공통적으로 따뜻한 인간애가 녹아있다. 어떤 이야기에 끌리고,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소재를 다뤄왔고 그중에서도 사회에서 메인스트림이 아닌 사람들,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를 해 온 것 같다. ‘교섭’ 정재호는 아웃사이더라고 볼 수 없지만 상황이 아웃사이더다. 위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지만 탈레반과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 아웃사이더인 거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 인간애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어둡고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손길을 내밀어 주고 싶다. 그런 연대와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교섭’은 재미도 있지만 생각해 볼 거리도 있는 영화라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