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터전을 잃은 주민 44가구 중 32가구는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는 등의 사유로 화재 현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지난 1월 20일 구룡마을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터전을 잃은 주민 44가구 중 32가구는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는 등의 사유로 화재 현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지난 1월 20일 구룡마을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개포동=연미선 기자  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 4지구를 중심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교착상태에 빠졌던 구룡마을 재개발 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 30일 이재민 지원방안과 보상계획을 발표해 이목이 집중된다.

◇ 설 앞두고 ‘화재’… 터전 잃은 주민들

설 연휴를 앞두고 구룡마을 4지구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른 지난 29일 기자는 현장을 다시 찾았다. 지난 화재 당시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습이었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터전은 이미 잿더미가 된 상태였다.

1월 화재로 인해 살아갈 곳을 잃은 44가구 중 12가구는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마련한 임대주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는 등의 32가구는 정리된 화재 현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형성돼 서울 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거대한 무허가 판자촌이다. 당시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으로 인해 강남 도심이 개발되면서 도시 내에 있던 빈곤층은 개포동 구룡마을 일대로 밀려나게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본래 총 1,107가구였던 구룡마을 거주민 중 567가구는 임대주택으로 이주했다. 남아있는 주민은 540가구다.

그 당시에 구룡마을로 들어오게 된 주민들은 40년 남짓이 지난 지금 다른 곳으로 이주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현장을 찾아 만난 A씨(74세‧여)도 젊었을 때 구룡마을에 자리잡았다. 그는 “젊었을 적에 들어와 평생을 여기서 살았으니 이제는 그저 집이라고만 느껴진다”고 말했다.

A씨는 화재 당시에 대해 “이 일대가 난리도 아니었다”며 “작년에는 비가 쏟아지더니 올해는 불이 나더라”고 회상했다. 구룡마을은 강남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지난해의 기록적 폭우를 피하지 못했다. 더욱이 판자로 세운 가벽과 천장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폭우 이후 현장을 찾았을 때도 주민들은 겨울나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건조한 겨울에 발생하기 쉬운 화재는 골목골목 판자로 이어져 있어 빠져나오기 쉽지 않고 고령자가 많은 구룡마을엔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구룡마을은 형성된 이후 재개발 논의가 진행됐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방치됐다. 사진은 구룡마을 입구의 모습. / 사진=연미선 기자
구룡마을은 형성된 이후 재개발 논의가 진행됐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방치됐다. 사진은 구룡마을 입구의 모습. / 사진=연미선 기자

◇ 수십년간 반복된 ‘재개발 논의’… 왜?

구룡마을은 재해에 취약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교착 상태를 지속해 온 해당 지역 일대 재개발 논의가 형성됐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을은 오랜 시간 방치됐다.

구룡마을 개발정책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지역 일대에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거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구룡마을자치회(이하 마을자치회)가 결성됐다. 이어 90년대에 민간 개발업자에 의한 재개발이 제안되자 토지 소유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구룡마을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와 마을자치회 간 공영과 민영을 두고 충돌이 발생했다.

본격적으로 서울시 주도의 공영개발이 논의된 것은 지난 2011년부터다. 그러나 부지 활용 방안과 더불어 몇 십년간 구룡마을에서 살아온 마을 주민에 대한 보상 방식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지금까지 표류상태에 놓이게 됐다.

서울시와 강남구청, SH공사와 지자체, 지자체와 주민자치회 등 지난한 갈등이 반복되면서 구룡마을 재개발 건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는 동안 갈 곳 없는 주민들은 수차례의 재해를 겪었다. 2011년 최초로 시가 주도하는 개발 발표 이후 총 9차례의 화재와 1차례의 수해가 발생해 246세대 412명이 피해를 입었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구룡마을 재개발 건은 최근 서울시가 화재 이재민 이주지원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화재 이후 구룡마을 곳곳에 붙은 화재예방 안내문. / 사진=연미선 기자
교착 상태에 빠졌던 구룡마을 재개발 건은 최근 서울시가 화재 이재민 이주지원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화재 이후 구룡마을 곳곳에 붙은 화재예방 안내문. / 사진=연미선 기자

◇ 서울시의 ‘이주지원대책’, 전망은?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 1월 발생했던 화재 이후 이재민 주거 안정성을 위한 이주지원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지지부진했던 구룡마을 관련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지난 30일 서울시와 SH공사는 화재 이후 임대료 부담으로 임대주택에 이주하지 못하고 화재 현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이재민들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구룡마을 거주민 1,107세대 중 화재 이재민 천막거주자를 포함해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231세대)와 차상위자(36세대)는 임대보증금과 임대료가 전액 지원‧감면된다. 그 외 거주민에게는 임대보증금 전액 감면과 임대료를 기존 40%에서 60%까지로 확대 감면해 임시이주가 전면 지원된다.

그간 서울시에서는 구룡마을 거주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및 임대보증금 납부 유예 등을 지원했지만 일부 생계가 어려운 주민들은 여전히 이주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거주시설 전체가 무허가 비닐간이공작물이어서 소액의 보상비만으로 이주해야 하는 거주민의 상황을 주거복지 사각지대로 보고 지원을 확대한 것이다.

지원대책에 따라 SH공사는 4월 중 이주 지원대책 관련 안내문을 거주민 1,107세대에 개별 통지하고 신청 접수해 5월 1일부터 임대료 등 감면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거주민 세대주 기준 76%가 60대 이상의 고령인민큼 관련 절차를 직접 방문해서도 안내할 예정이다. 화재 이재민의 경우 희망 시 즉시 적용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 주도의 본격적인 공공개발 사업에도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사업 시행을 위한 토지소유자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상계획도 5월 1일 공고된다. 이후 이의신청 기간을 거친 뒤 올해 10월경 협의 계약 및 이주대책 공고 등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다만 토지주가 보상받기를 원하는 수준과 SH공사 등의 보상안에 차이가 있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SH는 감정평가 이후 공시가격 수준으로 보상할 계획이다. 무허가 주택 거주자에게 아파트 분양권 수준의 보상은 할 수 없다는 게 서울시와 SH공사 측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김지수 외(2017), 다중흐름모형을 적용한 구룡마을 개발정책 형성과정 분석
2017. 국가정책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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