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으로 돌아온 변성현 감독.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으로 돌아온 변성현 감독.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 분)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2월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스페셜(Berlinale Special) 부문에 공식 초청돼 주목을 받았고, 지난달 31일 공개된 뒤 단 3일 만에 1,961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도 3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메가폰은 변성현 감독이 잡았다. 2012년 ‘청춘 그루브’로 데뷔한 뒤 영화 ‘나의 PS 파트너’(2012)로 흥행에 성공한 변 감독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으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돼 실력을 인정받았고, ‘킹메이커’(2022)로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입증했다.

변성현 감독은 이번 ‘길복순’에서도 자신이 가진 강점과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흥미로운 소재부터 탄탄한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타일리시하고 독창적인 미장센 등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세계를 완성,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지난 6일 <시사위크>와 만난 변성현 감독은 ‘길복순’의 시작부터 시나리오 작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최근 불거진 일명 ‘일베’ 논란에 대한 해명과 함께 솔직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길복순’. /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길복순’. / 넷플릭스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오갔겠다. 글로벌 1위 소감은.  

“안 좋은 일이 먼저라서 속상한 상태로 있었다. 좋은 일에 대한 연락은 어제 받았는데 신난다기보다 안도감이 제일 컸다. 정확히 안도감이었다. 전작이 코로나19 시즌에 개봉하면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둬서 ‘길복순’이 잘 되길 바랐고 (잘 되면)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안도감이 제일 컸다.”

-특정 지역을 비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혹스럽고 억울하다. 정치적 의도를 담으려고 한 적 없다. 게다가 나는 (극우 성향)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해당 장면에 쓰인 지역명은 미술감독이 쓴 거다. 내게 너무 미안해하더라. 하지만 내가 감독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논란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전도연 선배에게도 미안하다고 연락을 했었는데, 괜찮다고 의연하게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해주셨다.”

-흥미로운 소재였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전도연 선배가 어떤 작품을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을 했는데, 내가 직접 쓴 오리지널 작품으로 함께 하고 싶어서 다시 역으로 제안을 했다. 배우를 두고 시나리오를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전도연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엄마 전도연과 배우 전도연의 간극이 크더라. 그래서 배우를 킬러로 치환하면, 사람을 키우는 엄마와 사람을 죽이는 직업,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각본을 직접 쓰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연출은 계속 농익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은 어느 순간부터는 안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출은 재밌는데 글 쓰는 것은 싫어질 수 있겠더라.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는 계속 해놔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글만 받아서 연출하는 게 작품 수도 많아지고 좋은데,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못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고집하는 편이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전도연. / 넷플릭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전도연. / 넷플릭스

-전도연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어떤 점을 활용하고 싶었나.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희생당하거나 처연함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작품 속에서 많이 쓰임을 당했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아는 도연 선배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다가가기 힘든 존재잖나. 먹이사슬의 가장 최상위층에 있는 사람인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도연 선배도 갈증이 되게 많더라.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데 선택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부담감도 컸다. 너무 잘 해내야만 할 것 같은 거다. 물론 경구 선배에게도 그런 부담감이 있었지만 이번 작품이 더 컸다. 하루하루 예민해 있었고 전쟁 같았고 치열했다.”

-배우에게 세세하게 디렉션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전도연은 감독의 이런 방식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하더라.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했겠다.  

“그래서 경구 선배도 ‘불한당’ 때 트러블이 있었다. 심한 트러블은 아니고 경구 선배가 답답해하고 불편해했다. 그러면서도 다 해주시긴 했다. 도연 선배에게 미리 말했다. 나는 이렇게 연출하는 편이라고. 그랬더니 도연 선배가 그렇게 한 번도 안 해봐서 재밌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조금 더 했나 보더라.(웃음) 불편하다고 말을 했는데 나도 고집을 계속 부렸다. 그랬더니 바로 또 맞춰주시더라. 나중에는 선배님이 오히려 재밌다고 하셨다.”

-설경구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에 이어 연달아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우려는 없었나. 

“내가 설경구라는 배우를 워낙 좋아하고 그분의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 나도 ‘변성현과 설경구의 조합 지친다’는 글을 봤다. 나도 이제 설경구 선배와 할 만큼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그런 글을 보니 이 나이대 역할이 있으면 경구 선배한테 제안을 드려야겠다 싶더라.”

변성현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 /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 / 넷플릭스

-설경구라는 배우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 

“어떤 걸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만약 다시 경구 선배와 일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슈트를 입히진 않을 것 같다. ‘불한당’ 이전에 보였던 선배의 모습을 담고 싶다. 원래부터 워낙 (설경구의) 팬이었다. ‘불한당’ 때 주변에서 설경구 선배가 어울릴까 걱정을 했는데, 나는 좋은 배우는 모든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배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그쪽으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경구 선배에게 슈트가 잘 맞는 옷이라면 이제는 벗기고 싶은 마음이다.”

-오프닝은 황정민이 열었다. 캐스팅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그런 배우가 나의 영화에 카메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도 안 했는데, 도연 선배가 황정민 선배에게 문자를 했다. 바로 답이 없어서 ‘역시 말이 안 되지’하고 자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잘 안 받는 편인데 혹시 하고 받았더니 ‘안녕하세요, 배우 황정민이라고 합니다’라고 하더라. 너무 놀랐다. 전화를 끊고 보니 전도연 선배에게 문자가 와 있었는데 황정민 선배가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고 한다고 해서 내 연락처를 줬다고 하시더라.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를 드렸다. ‘생각보다 영화의 톤을 앞에서 잡아줘야 하는 역할이네’라고 하시더라. 연극하는 와중이셨는데 준비도 많이 하시고 가장 추운 날에 고생을 많이 해주셨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내 모니터에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게 되게 신기했다. 영화 보는 기분이 들더라. 나랑 일하는 스태프들도 어느 정도 고착화돼 있어서 유명한 연예인 배우가 왔다면서 다 신기해했다.” 

-독창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신들도 많았다. 굉장히 공을 들인 장면들이었는데 그만큼 촬영은 쉽지 않았겠다. 

“그중에서도 길복순이 다음 수를 예측하는 장면들은 ‘닥터 스트레인지’ 나오기 전에 찍고 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 비슷한 장면이 나올 걸 알았다면 다른 방식을 택했을 거다. 되게 많은 아이디어 중에 이렇게 찍자고 해서 택한 방식이었다.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해서 비디오아트워크까지 엄청난 레퍼런스를 찾아보면서 고민하고 나름대로 찾은 해답이었다. 촬영도 힘들었지만 배우들이 힘들었을 거다. 같은 액션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몇 날 며칠을 계속 익히고 연기하는 게 되게 미안했다. 배우들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촬영 감독과 다시는 액션 영화를 찍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몸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조마조마해서 오케이를 해야 하는데 만족할 때까지는 오케이 사인을 못 내겠는 거다.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 되는구나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또 못할 것 같다. 조금 더 독해야 될 것 같다.” 

변성현 감독이 쉽지 않았던 촬영 과정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이 쉽지 않았던 촬영 과정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이번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고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딱 하나만 꼽을 수 없는 게 이번 영화는 내가 되게 예민한 상태였다. 원래 스태프들 사이에서 잘 웃고 농담도 많이 하고 현장에서 늘 음악을 틀어놓고 어깨 덩실거리면서 춤도 추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스태프들이 변성현 현장은 휴가 나오는 기분으로 온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날이 너무 서있었다. 전도연 선배도 현장이 화기애애하다는 소문을 들었나 보더라. 그런데 내가 첫날부터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 부담이 되케 컸던 것 같다. 도연 선배와 첫 작업인 것도 그렇지만, 본격 액션이 내게도, 배우들에게도 도전이었을 것 같아서 모든 게 곤두서 있었다. 모든 능력치를 다 뽑아서 하고 싶었다. 바라는 현장은 화기애애한 쪽인데, 나라는 사람이 치열하게 바뀐 것 같다.” 

-최근 작품들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물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비슷한 패턴이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패턴화? 정형화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이야기해 줘서 알았다. 이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물론 계속 패턴화하는 게 본인의 스타일이 될 수 있으니 좋을 수 있지만 나는 거장이 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제자리에서 잘 하고 싶은, 꽤 괜찮은 감독이 꿈인 사람으로서 이렇게 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다.” 

-차기작 계획은. 

“‘불한당’이 끝난 후 로맨틱 코미디나 가벼운 코미디를 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그런데 그게 싫어서 바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었는데 뻗댔다. 그러다 ‘킹메이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작품이다. ‘길복순’은 처음으로 배우에게 접근해서 쓴 시나리오였다.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보통 다른 감독 이야기 들어보면 다음 프로젝트가 본인 안에 있던데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늘 불안하다. “‘킹메이커’ 끝나고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길복순’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도 할 수 있구나 싶더라. 뭔가를 꼭 이야기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길복순’ 다음은 어떤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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