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감독이 영화 ‘킬링 로맨스’로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석 감독이 영화 ‘킬링 로맨스’로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킬링 로맨스’(감독 이원석)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 분)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분)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 분)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메가폰은 이원석 감독이 잡았다. 이 감독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적인 로맨틱 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2013)와 조선시대 왕실의 옷을 만들던 ‘상의원’을 소재로 그려낸 로맨스 사극 ‘상의원’(2014) 등을 통해 신선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킬링 로맨스’는 그런 이원석 감독의 매력과 강점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한층 더 과감해진 시도로 세상 어디에도 없던 또 한 편의 ‘신박’한 영화를 완성, 관객을 매료한다. 완전히 새로운 이 영화의 ‘맛’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꾸만 생각나고 묘하게 끌리는 ‘힘’이 있다.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시사위크>와 만난 이원석 감독은 ‘B급 감성’이 물씬 담긴 ‘킬링 로맨스’로 돌아온 것에 대해 “나는 그냥 무언가를 비틀고 이런 게 재밌고 분명 사람들도 희열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며 “내겐 비주류가 아닌 주류의 감성”이라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세상에 없던 영화의 탄생, ‘킬링 로맨스’. / 롯데엔터테인먼트​
세상에 없던 영화의 탄생, ‘킬링 로맨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을 앞둔 소감은. 

“떨리고 그런 건 지나갔다.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시사회 이후 인터넷을 안 한다. 하도 욕을 많이 먹는 감독이기 때문에, 한 6개월 있다가 보려고 한다. 지금은 해야 할 것을 열심히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서 내주는 숙제를 다 하고, 영화 번역본 확인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 사실 떨린다. 떨리지 왜 안 떨리겠나.(웃음) 나는 되게 대중적인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서는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따라갈 수 있겠구나, 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인데.  

“영화가 ‘운’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이번 영화도 그런 게 많았다.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이선균 아카데미상 받으러 가는 길에 거절하러 온 사람 붙잡고 정신없게 해서 거절 못하게 한 다음에 미국을 갔는데 거기서 아카데미를 받았다. 사람들은 다 축하해 주고 그랬는데 나랑 제작사 대표는 ‘아, 물 건너갔다’ 싶었다. 그런데 하겠다는 거다. 이하늬도. 미친 상황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정말 좋았다. 이 영화가 참 희한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하지 마’라는 소리만 들었지, 제작자부터 시작해서 배우들도 그렇고 서로 다 갈 때까지 가보자고 하는, 이런 프로젝트가 어딨나. 농담처럼 이민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진심이었다. 이건 위험하고 욕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해보자. 그 매력에 모험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꼈나. 

“일단 폭력이라는, 남편을 죽인다는 소재. 이병헌 감독의 ‘바람 바람 바람’이 교본이라고 생각했다. 코미디로 할 수 없는 소재다. ‘바람 바람 바람’은 소재의 불편함을 모든 코미디를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뛰어넘으려고 한다. 우리 영화에서도 폭력을 저지르는 이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동화’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만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곳이 바다라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면 ‘왜요?’라고 물어볼 거다. 그런데 ‘만약 이곳이 바다라면 어떨까요?’라고 하면 ‘왜?’라는 질문이 없어진다. ‘만약’이라는 말은 마법처럼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넓어진다. 그것을 정말 잘 하는 게 디즈니였다. 디즈니가 ‘옛날 옛날에’라고 시작하면 벌써 납득이 된다. 그걸 끌어들인 거다. 그러면서 그것을 비틀기 시작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할머니도 땀복을 입고 나온다. 미국에 있는 트레일러에 사는 할머니 같은 느낌. 전형적이지 않고. 그것 자체도 디즈니를 비꼰 거다. 동화로 가면서 ‘왜’보다 ‘어떻게’에 더 집중해서 갈 수 있게 한 거다. 또 이것을 사람들이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자고 해서 음악도 들어가게 됐다. 되게 엄청나게 큰 모험을 시작한 거다.”

파격 변신을 보여준 이선균(왼쪽)과 이하늬. / 롯데엔터테인먼트​
파격 변신을 보여준 이선균(왼쪽)과 이하늬. / 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 시나리오에는 동화를 읽어주는 설정이 없었나.  

“그냥 현실적인 대본이었다. 나는 항상 극적인 대본이 들어온다. ‘뷰티인사이드’인데 외계인 버전 같은. 그런데 그런 것에 내가 또 빠진다. 그런 거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이상한 거에 더 이상한 게 들어가니까 투자가 안 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몇 년이 훅 간다. 중국에 가서 영화를 해야지 해서 갔는데 사드 이슈가 터지면서 관광만 열심히 하고.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가 이 대본이 들어왔는데, 되게 안정적인 거다. 이걸 왜 나한테 줘? 했더니, 감독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더라. 색깔을 입히라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다.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한 작품은. 물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진 못했다.(웃음) 박정예 작가님이 수정 작업도 같이 해주셨다. 작가님은 굉장히 현실적인 대본을 썼고 나는 여기까지 가자고 했다. 그걸 작가님이 따라줘서 너무 고마웠다. 만약 그 시나리오 그대로 영화를 만들어도 같은 영화라는 걸 모를 거다.”

-왜 이선균이었나.  

“원래 이선균을 좋아했고, 정말 웃긴다. 본인은 조나단이 모르는 캐릭터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페르소나다. 개인적인 생각, 뇌피셜이다. 이선균의 필모를 보면 사람들이 모르는 필모가 몇 개 있다. 단막극 이런 거, 그걸 보면 왜 캐스팅했는지 알게 될 거다. 어떤 역이든 엄청 열심히 한다.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이 조나단을 했으면 했다. 조나단은 악당이지만 주변에 악당이 얼마나 많잖나. 그런데 그 악을 보면 자기가 악인 줄 모른다. 항상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위함이고 무언가를 위해서고.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조나단은 우리 주변의 악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알고리즘도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어떤 취향을 만들어 주잖나. SNS를 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 산다. 그리고 거기에서 제시하는 행복. 만들어진, 무언가 조종당한다는 느낌. 그런 악을 조나단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우리가 모르는, 친근하고 우리를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그런 사람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나의 아저씨’(이선균). 그 사람이라면 조나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된 거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이원석 감독의 색깔이 고스란히 담긴 ‘킬링 로맨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석 감독의 색깔이 고스란히 담긴 ‘킬링 로맨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감각적인 미장센, 독특한 화면 구성 등 연출적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중점을 둔 것은.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영화적인 앵글은 평면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플랫한. 촬영감독님들은 되게 싫어한다. 성의 없어 보인다고. 배우가 화면 가운데 뿅 하고 놓는 거잖나. 나는 그게 너무 좋다. 가장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이다. 현실에서는 우리 다 입체로 보잖나.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앵글이라고 생각해서 활용을 많이 했다.”

-H.O.T. ‘행복’과 비의 ‘레이니즘’ 선곡 이유도 궁금한데.  

“어떤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마치 악마가 놓은 마법의 주문 같은 느낌이 날까 고민하던 차에 이선균과 냉면을 먹었다. 그러다 이선균이 ‘행복’ 어때? 라고 했는데, 옆에 장우혁이 냉면을 먹고 있는 거다. 이선균과 또 아는 사이더라. 그래서 이선균과 ‘이것은 신의 뜻인 것 같다’고 하며 ‘행복’을 택했다. ‘레이니즘’은 우리나라에 그런 노래가 없다. ‘자뻑’의 노래. 어디에 있든 그 노래가 나오면 세상이 내 것 같고 그렇다. 그런 노래가 어딨나. 나는 그게 여래가 느낀 행복했던 순간, 그녀가 원했던 순간을 상징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마침 이하늬와 비가 친해서 적극적으로 불러주고 그랬다.”

-타조의 등장도 인상적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우선 범우는 너무 순수한 사람이다. 어떤 바보가 그런 급한 상황에서 타조를 도와주나. 짜증 날 정도다. 그런데 끝내는 그 친구가 용기가 제일 많았던 거다. 그 선함은 결국 대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타조는 원래는 원주민이었다. 동물이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없잖나. 그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한이 맺힌 이민자들, 원주민을 상징한다.”

자신만의 세계로 관객을 매료해온 ​이원석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신만의 세계로 관객을 매료해온 ​이원석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심달기가 타조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 

“타조가 어떻게 우는지 연구하기 위해서 저희 팀이 보름인가 타조 농장에 가있기도 했다. 타조 울음소리가 마치 욕처럼 들렸으면 했다. 그래서 여러 시도를 했는데 너무 상스럽다고 해야 할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거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심달기가 다른 거 하러 왔다가 타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울음소리를 자기가 해보겠다고 해서 했는데, 정말 잘 하는 거다. 효과를 하나도 안 썼다. 센 것과 약한 것, 중간 버전까지 다 해줬다. 심달기의 팬이라서 정말 작은 역할인데도 꼭 나와 달라고 부탁해서 한 거다. 정말 고마웠다.”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는데,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하는 편인가.  

“호러 영화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호러 현장에서는 감독이 웃고 있을 수 없더라. 지나가다가 한 번 봤는데 너무 무섭더라. ‘킬링 로맨스’는 코미디이고 밝고 에너지가 넘쳐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사람들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이번 작품에서 만나서 결혼한 커플이 많다. ‘상의원’ 때도 정말 많았다. 일은 안 하고 연애만 하는 것 같다. 하하. 가슴 아픈 게 많은 사람들이 몇 년을 준비해서 영화를 만들고 선보이고 홍보하는데, 하루 만에 평가되는 게 참 희한한 것 같다. 그 과정이라도 재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또 영화 속 좋은 에너지는 좋은 분위기에서 밖에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작품을 두고 ‘B급’ 감성, 독특하다, 비주류라는 평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스스로도 비주류라고 생각하나.  

“어렸을 때부터 ‘꼴통’ ‘또라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남한테는 최대한 피해를 안주려고 했다. 영화를 늦게 배웠는데 60~70년대 미국영화에 빠졌다. 계급을 무너뜨리는 느낌이었다. 고상하고 완벽한 것을 무너뜨리는 재미, 그게 B급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영화를 보면 대충 만든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또 너무 재밌는 거다. 그리고 그게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거다. 나의 감성이 B급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냥 무언가를 비트는 게 재밌다. 그리고 그걸 보며 분명히 사람들도 희열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되게 중요하다. 웨스 앤더슨 감독처럼 비주류 정서로 영화를 만들어서 주류를 만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렇게 되고 싶다. 이 영화 자체도 기존에 있던 것을 다 비튼 거다. 이 영화가 모험인 것은 코미디라는 게 익숙해야 하고 공감이 가야 웃을 수 있는 건데, 이 작품은 낯설다. ‘이건 뭐지?’라고 시작을 하기 때문에 ‘반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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