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민단체 중심으로 선분양의 문제점이 이슈화되면서 선분양제도가 우리나라에서만 운영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 뉴시스
과거 시민단체 중심으로 선분양의 문제점이 이슈화되면서 선분양제도가 우리나라에서만 운영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그동안 시민단체들을 주축으로 ‘시장에서 1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흠이 있는 지 직접 살펴보고 사는데 정작 수 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아파트는 보지도 않고 산다’며 선분양제도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선분양제도가 과거 1970‧1980년대 정부 재원이 부족할 때 분양가격을 규제하고 소비자 돈(계약금‧중도금)으로 쉽게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도입‧시행한 제도라고 주장해왔다. 

과거 언론을 통해 이같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소개되면서 현재 많은 국민들이 선분양제도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공급 정책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84년 11월 28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최초 도입‧시행된 이후 약 39년 동안 운영돼온 선분양제도는 과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일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여러나라에서도 한국의 선분양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다만 우리 선분양제도에 있는 중도금이 없고 전체 물량이 아닌 일부 물량만 선분양하는 등 각기 차별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미국‧호주‧홍콩‧일본 등 선분양 유사 제도 운영

지난 2020년 12월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발표한 ‘해외 선분양 사례 및 전문가의견 조사를 통한 효과적인 후분양 활성화방안 연구’ 논문에 따르면 우선 미국과 캐나다는 일종의 사전계약인 프리세일(Presale)이 운영되고 있다.

프리세일은 개발업자와 소비자간에 체결하는 계약으로 변호사가 대리하며 계약해지나 건설기간연장, 미준공 등에 관련된 보험도 계약에 포함한다. 준공 후에 입주대상 주택이 계약조건에 미달하면 소비자는 계약 해지 후 계약금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미국·캐나다의 프리세일은 우리나라의 사전예약제와 유사하며 중도금이 없다는 점이 차이다.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실제 사례도 소개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는 주택건설업자(디벨로퍼, developer)들이 아파트·타운하우스를 주로 선분양 하는데 컬럼비아 주에서는 ‘부동산개발 및 판매법(The Real Estate Development Marketing Act) 제10조’에 따라 선분양을 시행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오프플랜(Off-Plan Property)이라는 제도를 통해 주택이 선분양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 오프플랜 계약 과정에서 계약금은 주택 총 가격의 5~30% 수준이며 미국·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중도금 없고 입주시 나머지 잔금을 치른다. 

마운트 앤빌(Mount Anvil)사는 실제 영국 런던 남동쪽 실크구역에서 2021년 4분기 준공하는 4개 동의 아파트를 오프플랜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다.

호주는 영국의 오프플랜과 비슷한 형태의 오프더플랜(OTP : Off-the-Plan, 사전판매)을 통해 선분양에 나서고 있다. 

호주의 오프더플랜은 변호사를 통해 개발업자와 수분양자간 1대1로 계약을 맺는 과정을 거친다. 계약금으로 통상 주택 가격의 10%를 내고 중도금은 없고 입주일에 잔금을 납부한다. 

옆나라인 일본은 선·후분양 개념을 사용하진 않지만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 맨션의 경우 민간 건설사가 선분양과 비슷한 사전계약을 통해 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정률이 50~60% 수준 진행된 시점에 사전예약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내 공공주택 공급을 관할하는 주택청(HDB: Housing Development Board)도 우리나라의 선분양제도와 유사한 BTO(주문건설판매 : Build-To-Order)를 운영하고 있다.

BTO는 몇 개의 지역을 대상으로 사전에 수요자를 모집한 후 수요가 충분할 경우 주택을 건설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선분양 및 사전청약과 닮아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개발시점을 어느정도 수요가 다다랐을 때 맞춘다는 것인데 몇 개의 택지에 대해 사전청약을 받고 청약률이 일정수준(70%)에 도달한 택지부터 착공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김진유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선분양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유일하다는 것을 잘못된 정보”라며 “우리나라와 유사한 선분양제도는 홍콩, 중국에서도 시행 중이며 우리와 비슷하나 약간 다른 프리세일의 경우 중도금 없이 계약금만 받아 제3기관에 유치하는 형태인데 미국·캐나다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선분양은 무조건 미리 분양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도 법규상 분양시점이 규정돼 있는데 준공 전 공정 초반에 분양할 수 있고 준공 완료 후에도 분양이 가능하다”면서 “국내의 경우 통상 공정률 10~20% 수준에서 분양하는 것을 선분양이라고 공정률 80% 이상일 때 분양하는 것은 후분양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마운트 앤빌사가 오프플랜으로 분양한 주택 / 마운트 앤빌
영국 마운트 앤빌사가 오프플랜으로 분양한 주택 / 마운트 앤빌

◇ 해외 선분양 관련 제도 국내와 달라 ‘중도금 無, 일부 물량만 선분양’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선분양제도와 비슷한 여러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 면에서는 우리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대부분 중도금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중도금 없이 초기 보증금과 잔금으로만 구성돼 있다. 싱가포르의 민간 선분양이나 홍콩의 경우 각각 중도금 성격의 보증금이 존재했다.

선분양 관련 제도를 시행 중인 해외 국가들은 중도금이 없으므로 실제 수분양자로부터 준공 전에 받는 보증금은 10% 내외에 불과했다.

둘째로는, 대부분 나라들이 전체 물량 중 일부 물량만 선분양해 수요를 확인한 뒤 이후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논문에 의하면 미국‧호주 등 선분양 관련 제도를 운영 중인 국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기 보증금 등은 주택개발업자가 직접 주택건설에 사용하지 않고 제3기관에 예치하는게 일반적이다. 

김진유 교수는 “영국·호주 등이 시행 중인 프리세일·오프더플랜은 사전에 매매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선분양제도와 같다”며 “하지만 다른 점은 우리처럼 선분양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규모의 주택 물량을 선분양을 통해 공급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곳이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선분양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 자체에서는 우리나라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국 단위에서 대규모 주택을 선분양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성”이라면서도 “단 그렇다고 해서 선분양제도가 한국만의 유일한 제도라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일례로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의 LH처럼 국가가 공영개발해서 장기주택을 저렴하게 자국민에게 공급하는데 이때 일부 물량을 선분양으로 공급한다. 이외에 민간 부문의 고급주택 일부 물량 역시 선분양으로 공급된다”며 “그러나 한국처럼 거의 대부분의 물량이 선분양으로 공급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HUG가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 한국형 선분양 보증시스템을 전파했다. / 뉴시스
HUG가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 한국형 선분양 보증시스템을 전파했다. / 뉴시스

◇ ‘한국형 선분양 시스템’ 베트남‧카자흐스탄 등에도 전파

한편 우리나라의 선분양 관련 시스템은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다른 국가에도 전파된 상황이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공사와 베트남은 선분양 관련 보증제도 전파를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한 바 있다. 이어 2013년에는 베트남 정부 실무진을 초청해 연수를 진행했다.

이후 베트남은 HUG의 정책제안에 따라 지난 2014년 11월 부동산사업법을 개정한 뒤 2015년 7월 주택법을 제정해 분양보증제도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사이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HUG를 벤치마킹해 2016년에 분양보증 관련법을 제정한 뒤 HUG와 유사한 분양보증 전담 주택보증기금(HGF) 설립을 추진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분양제도를 실시하던 카자흐스탄 정부는 당시 건설사 파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HUG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은 한국형 분양보증 제도가 성공적으로 자리잡힌 모범사례에 속한다”며 “카자흐주택공사(KHC)는 2017년 이후 작년 1분기까지 148개 사업장(4만4,624가구)에 약 2조원의 분양보증을 공급하기도 했다”고 알렸다.

이외에도 HUG는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콜롬비아 등의 국가들과도 선분양 관련 보증제도 전파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HUG는 지난 1993년 설립돼 보증업무를 전담하는 공기업이다. 현재 30가구 이상 주택을 선분양하는 주택 사업자는 HUG의 분양보증이 있어야만 입주자모집 공고를 내고 분양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HUG가 국내 주택사업자에게 분양보증한 규모는 총 68조6,955억원으로 집계됐다. 

 

※ 최종 결론 : 거짓

해외 여러나라에서도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선분양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베트남 등 국내 선분양 시스템을 도입하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근거자료 및 출처
해외 선분양 사례 및 전문가의견 조사를 통한 효과적인 후분양 활성화방안 연구
2020. 12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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