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많이 억울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줄줄이 쏘아올리고, ‘남조선 괴뢰’까지 최근 위성 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는데 북한만 유독 못 갖게 하니 말이다. 지난달 31일 발사에 실패한 북한 정찰위성 얘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항변은 절절하다. 1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으로 낸 담화에서 “우리의 위성발사가 굳이 규탄을 받아야 한다면 미국부터 시작하여 이미 수천 개의 위성을 쏘아올린 나라들이 모두 규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향해 “자가당착의 궤변”이라 외치는 김여정 부부장의 호소는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다. ‘왜 북한에만 유독…’이란 기류가 일부 지식인과 여론 사이에서도 제법 힘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위성을 고무풍선에 매달아 우주궤도에 올려도 불법이고 위협이라 떠들 강도집단“이라 미국을 비난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김여정 부부장의 이런 주장은 그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평양 로열패밀리의 공주에 불과하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오빠인 정철‧정은을 따라 스위스에 조기유학하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만나 교분하며 외부세계에 눈떴을 법도 하지만 건성건성이었던 모양이다.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북한의 최고지도부, 그리고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미국통 하나 없는 평양 외교라인의 현주소가 안타깝다.

세상은 볼멘소리나 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편이 아니다. 힘이 지배하고 냉혹한 현실이 판을 친다. 국가 이익을 최우선 하는 국제 정치외교 무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컨대 김여정 부부장이 아직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해 세상을 향해 먹히지도 않을 투정이나 부리고 있는 듯 하다는 얘기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지구상의 몇 안되는 강제력 높은 규범이다. 냉전시기 근육질을 자랑하며 국가의 힘을 과시하던 미국과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은 핵 보유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겠다는 데 의기투합해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출범시켰다.

북한은 여기에 뒤늦은 도전을 벌였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진 김씨 패밀리 3대 세습 독재체제는 집요한 핵 보유 야망의 실현을 가능케 했다. 그 과정은 기만과 은폐로 가득했다. 국제사회를 속여 가며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했고, 여기저기 숨겨가면서 핵을 손에 거머쥐었다. 1990년대 NPT 탈퇴 선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관 추방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핵 개발 의혹 제기에 원자력 발전을 의미하는 ‘평화적 행동력 공업’이라 우기던 북한은 경수로 발전소를 챙겼고 발전용 중유도 지원받았다. 그런데도 비핵화 합의와 파기‧위반을 되풀이 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결국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망을 촘촘하게 좁혀왔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9월 핵 독트린(Doctrine)이라 할 ‘핵 무력 법령화’를 내놓은 북한은 올 들어 전술 핵탄두까지 공개했고, 잇단 ICBM 시험발사로 핵과 미사일 체계를 거의 완성단계까지 이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의 핵 보유국에 진입한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그런 북한이 추가로 꺼내든 카드가 이른바 ‘군사정찰위성’이다. 2012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8일 딸 김주애를 데리고 국가우주개발국(NADA)를 찾았다. 그는 위성발사가 절박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5월 16일에는 위성발사준비위를 방문해 탑재 완료된 위성을 곧 쏘아 올릴 것임을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뜻밖의 돌출변수가 나타났다. 위성발사위를 방문한 직후인 같은 달 25일 한국이 자체기술로 누리호를 쏘아 올렸고, 실용위성을 550km 고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문제 제기 등으로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한국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는 모양새가 되자 김정은 위원장은 발사를 서둘렀다. 이번 실패가 김정은 위원장이 누리호를 의식해 지나치게 조급해 한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은 재발사를 공언한다.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궤도에 정확히 진입하여 임무수행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패는 일시적일 뿐 결국 북한이 위성발사에 성공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한미의 전문가 그룹 사이에서도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의 정찰위성은 그 목적이나 효능 면에서 재고해야 할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북제재와 고립으로 해외에서의 위성 점검이나 원격 운용이 어려운 북한에게 정찰위성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 상태로는 위성을 궤도에 올린다 해도 하루 10분 정도 ‘정찰’이 가능할 뿐이다. 해상도 등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완전 대실패로 일단락된 위성발사에 절치부심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핵과 미사일, 인공위성을 향해 달려온 시간을 반추해보길 김여정 부부장에게 권한다. 그리고 위성 사용설명서를 찬찬히 읽어봤으면 한다.

한참 사용하던 자동차나 가전제품, 소소한 일상제품도 어느 날 설명서를 차분히 살피다보면 뜻밖의 아이디어나 발상이 떠오를 수 있다. 또 오랜 시간 익숙해져버린 관행이나 잘못된 관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왜 나만 안되냐‘고 항변하기 보다는 ’왜 나만 안될까‘를 고민해보는 모습도 필요해 보인다. 복잡한 국제정세나 정치외교 현안도 사람 사는 세상에 접목시키거나 일상 속의 일로 치환해보면 쉽게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러 차례 만류에도 사제총을 만들어 쏘아대며 난동을 부리고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는 불량한 이웃은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가족들을 굶기고 가정폭력을 가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반성이나 자제를 하기 보다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사냥총을 얻은 이들을 겨냥해 “저 사람들은 왜 그냥 두고 나만 제약을 가하느냐”고 항변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그 주장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탄도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 대상에 여러 차례 올랐다. 탄도미사일과 위성 발사 로켓은 기술적인 면에서 사실상 차이가 없다. 머리에 핵탄두를 얹으면 핵미사일이 되고 위성체를 탑재하면 위성로켓이 된다. 대북결의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금지시키면서 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는 위성발사 기술을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잠깐! 왜 인공위성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기껏해야 차관급에 불과한 노동당 부부장에게 조언하는지를 의아해 할 수 있다. 김여정 부부장이 눈치를 채지 못한다면 이렇게 귀띔해주고 싶다.

“북녘 땅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하나 뿐인 여동생인 당신이니까. 평양에서 모든 길은 여정동지로 통한다는 말이 돈다고 고위 탈북인사가 말해주던데…”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