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전현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4명과 차관 1명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사진은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이 고발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전현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4명과 차관 1명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사진은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이 고발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시사위크=조윤찬 기자  5G 속도 과장광고에 정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장광고라는 것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광고 문제로 통신3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가운데 과기정통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소비자주권, 과기정통부 책임 회피 비판… “직무유기, 직권남용”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소비자주권)는 2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전현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4명과 차관 1명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직 장관은 유영민, 최기영, 임혜숙 등이다. 현직으로는 이종호 장관과 박윤규 차관이 고발장에 명시됐다.

소비자주권은 공수처가 위치한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과기정통부 말만 믿고 비싼 5G요금제에 가입한 고객이 3,000만명을 넘었다”며 “전현직 장관들은 5G 이론속도인 20Gbps를 실제 5G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고 비판했다.

1Gbps는 LTE의 이론상 최고 속도다.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5G를 도입한 통신3사(SKT, KT, LGU+)와 과기정통부는 각종 홍보자료를 통해 5G 속도가 LTE보다 20배가 빠르다고 강조했다.

특정 조건의 환경에서 20Gbps 속도가 나오려면 28GHz(기가헤르츠)의 주파수가 필요하다. 28GHz 주파수는 전파 도달 범위가 짧아 다른 주파수 대비 많은 기지국을 설치해야 이용 가능하다. 통신3사는 경제성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기지국 설치를 주저했고, 결국 할당된 28GHz 주파수를 정부에 반납하게 됐다. 28GHz를 이용하는 단말기가 출시되지 않은 점도 기지국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다.

대신 통신3사는 전파 도달 범위가 넓은 5G 3.5GHz 주파수로 전국망을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은 “3.5GHz 주파수의 통신속도는 LTE 대비 5배 수준에 불과하다”며 “전현직 과기정통부 장관들은 이러한 사실을 통신소비자들에게 명확하게 고지해야 함에도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5G 과장광고 문제로 통신3사에게 336억원(잠정) 과징금 처분을 내린 것도 고발의 근거가 됐다. 공정위가 처음 조사에 착수한 것은 소비자주권의 신고 때문이었다.

소비자주권은 과기정통부가 대형 행사, 보도자료 배포, 웹툰 등으로 잘못된 5G 속도를 알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했다며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실현될 수 없는 5G속도라는 것을 알고도 적절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점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 “박윤규 차관, 5G 주도적 계획”

박순장 소비자주권 사무처장은 박윤규 과기정통부 차관이 5G 도입을 계획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과장광고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순장 소비자주권 사무처장은 박윤규 과기정통부 차관이 5G 도입을 계획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과장광고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과기정통부가 5G 과장광고를 도왔다는 점은 행정지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2016년에 통신3사를 대상으로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2016년 가이드라인을 보면 통신 상품명, 최대 속도를 언급하고 필요시에 이론상 최대 속도이며 이용 지역, 이용자 수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음 등과 같이 커버리지 정보의 제약 사항을 함께 표기하라고 돼 있다”고 말했다. 통신업계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광고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5G 이론상 최고 속도 광고기간은 2017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다.

현직 장관이 고발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 박순장 소비자주권 사무처장은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정위에서 잘못된 과장광고라고 판단을 했으면 정부가 확실히 나서야 하는데 쉬쉬하고 넘어가려는 분위기다. 현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박윤규 차관을 고발한 이유에 대해선 “유영민 장관(2017~2019) 시절 박 차관은 정보통신정책실장이었다. 박 차관이 5G 도입을 주도적으로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통사가 보장하겠다고 한 속도를 실제 이행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이를 통신품질 평가에 포함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무부처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박순장 사무처장은 “과기정통부는 그동안 5G로는 3.5GHz만 통신 품질 평가를 했다. 과기정통부 내부에서도 28GHz는 포기한 상태였다. 이 문제에 박 차관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5G 이용자들이 모여 통신3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에 시작한 소송에는 현재 1,000명이 넘는 5G 이용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3사가 과징금을 부과 받은 것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소송이 힘을 받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공정위 판단에 대해 통신사 측은 처분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행정소송이 진행되면 처분이 달라질 수 있어 공정위의 잠정 처분이 재판에 사용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주권은 공수처 고발 배경으로 공정위의 조사결과를 사용했다. 통신3사의 행정소송에 따라 영향 받을 가능성이 있어 공수처 수사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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