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

▲ 장승포항의 여명이 걷히기 전 남루한 여객선이 출항했고 동행한 낚시꾼들만이 들떠 있었다.
[시사위크] 지심도로 떠나는 배는 초라했다. 장승포항의 여명이 걷히기 전 남루한 여객선이 출항했고 동행한 낚시꾼들만이 들떠 있었다.

파도까지 말썽을 부렸다. 속을 휘젓는 뱃길 30분. 섬 초입에 들어서니 봄소식 대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들판에 펼쳐진 동백을 기대했건만 어둑한 원시림 터널이 꼬리를 물었다.

터널을 걷다 보니 구멍 난 숲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빛의 윤곽을 따라 숨었던 동백꽃이 그 속에서 핏빛 자태를 슬며시 뽐냈다.

전국 최대의 동백 군락지중 한 곳인 거제 지심도. 아름드리 나무에서 피어낸 꽃들은 섬을 잇는 산책로를 붉게 물들였다. 동백의 붉은 기운 뒤에서 청록색 장승포 봄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섬마을 초입 민박집 주인은 “이 섬에서는 200∼300년은 돼야 동백나무 축에 들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걷는 길따라 500년짜리 노목도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배에 동승했던 낚시꾼은 “여수 오동도 동백은 지심도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며 거들었다. “전국에 몇 안 되는 흰 동백도 지심도에 핀다”며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흰 동백을 볼수 있다“고 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추게 된다. 2월말~3월 중순이 꽃구경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음 심(心)’ 자를 닮아 지심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승포 앞바다 남쪽 깊숙이 위치해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의 군사요지로도 이용됐다.

▲ 동백의 붉은 기운 뒤에서 청록색 장승포 봄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동백군락 너머 오솔길에 숨겨진 커다란 시멘트 구덩이가 낯설었다. 대포기지로 이용된 구덩이만 네 곳. 덩굴을 헤치니 견고한 탄약고도 드러났다. 산책로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식 나무집들. 이곳 주민들은 해방 이후 하나둘씩 몰려와 터전을 마련했다.

지심도에는 제주도의 해녀들이 이곳까지 해물을 캐기 위해 건너오기도 했다. 70년대만 해도 지심도에는 20명의 해녀들이 미역 홍합 전복 등을 건져 올리며 정착해 살았다. 바다 건너 거제도의 돈벌이가 제법 쏠쏠해지면서 대부분의 해녀들은 섬을 떠나게 됐다.

지심도는 거제 해금강과 외도의 인기에 밀려 있었다. 이채로운 꽃이 즐비한 외도의 화려함에 눌려 장승포 건너 외딴 동백섬으로만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은 한때 자가 발전기를 돌려 하루에 절반만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학생 몇 명이 명맥을 이어오던 지심도 분교도 문을 닫았다. 학교터에는 철봉과 그네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건설된 지 50년 된 천주교 공소는 지심도의 이색 정경을 연출했는데 섬주민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떠나고 노인들만 섬을 지켰다.

그래도 지심도는 낚시꾼들에게는 숨겨진 보물이었다. “10여년 전 놀러왔다 아예 눌러 앉았다”는 한 주민은 “봄이면 학꽁치, 여름에는 자리돔, 가을이면 고등어가 잡힌다”고 신명을 냈다.

주민들은 이른 봄이면 뜰망 낚시를 즐겼다. 10m 대나무 세 가닥에 그물을 엮어 학꽁치를 수십마리 거둬 올렸다. “세꼬시로 먹어야 제 맛”이라며 근처 낚시꾼들에게 즉석에서 인심을 썼다. 지심도 주변 3.7㎞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형제·용·사랑바위가 모두 낚시 포인트였고, 섬은 해변의 기암괴석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지녔다. 볼락 농어 숭어 방어 등이 사시사철 낚시꾼들의 발길을 유혹했다.

지심도의 낭떠러지와 푸른 소나무는 해금강의 절경에 뒤지지 않았다. 지심도 정상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었고 남쪽 멀리 대마도도 희끗희끗 보였다. 3월, 외딴 섬의 동백향연이 끝나면 4월은 유자향이 향긋하게 섬을 채우곤 했다.

▲ 지심도는 낚시꾼들에게 숨겨진 보물이다.

                                                   여 행 메 모

가는길=서울에서 거제도 장승포까지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대전∼진주 고속도로를 거쳐 거제에 닿는다. 거제도에 진입하면 14번 해안국도를 따라 질주. ‘은행나무 침대’의 배경이 됐던 여차해수욕장과 해금강을 먼저 들러볼 것. 지심도로 떠나는 배는 장승포에서 출발한다. 날씨에 따라 운행편수가 달라진다.

기타정보=지심도에서는 민박을 할 수 있다. 민박집에서 식사도 제공된다. 거제도 옥포에는 애드미럴 호텔을 비롯해 장급여관이 많다. 지심도 선착장에서는 즉석 학꽁치잡이를 즐길 수 있는데 장승포항의 포구식당에서 학꽁치 회를 맛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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