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년 전 지구온난화로 온대림 증가… 냉·온지역 서식지 연결
112만년 전엔 북대서양 냉각화로 서식지 면적 감소 현상도 발생

현대 인류뿐만 아니라 인류의 조상들 역시 과거 기후변화에 종의 번성 및 쇠퇴를 거듭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현대 인류뿐만 아니라 인류의 조상들 역시 과거 기후변화에 종의 번성 및 쇠퇴를 거듭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지구 온난화는 끝났다. 이제는 ‘지구열대화 시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제 단순히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넘어 펄펄 끓고 있다는 말이다.

이 같은 지구 온난화발 기후변화는 역대급 폭염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로 우리 피부로 직접 와 닿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도 급격한 기후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거 지구 기후의 변덕은 때로는 인류의 번성으로, 때로는 쇠퇴를 가져왔다.

◇ 기후변화, 고대 인류에겐 ‘사랑의 오작교’ 역할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악셀 팀머만(Axel Timmermann) 단장 연구팀은 지난 9일 서울역 공항철도 AREX-10 회의실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기후변화가 초기 인류 종들의 상호 교배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8월 11일자로 게재됐다.

지금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고대 인류종이다. 서식지는 서로 다르지만, 수만 년간 동시대에 살며 상호 유전적 교류가 일어났다. 이런 호모종 간의 교배는 인류가 번성과 진화를 거치도록 만든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 인류에 소량 남아있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다른 두 지역에서 살았던 두 종간 교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9일 서울역 공항철도 AREX-10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악셀 팀머만(Axel Timmermann) 단장./ 박설민 기자
9일 서울역 공항철도 AREX-10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악셀 팀머만(Axel Timmermann) 단장./ 박설민 기자

이 같은 인류 기원의 비밀을 풀기 위해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이탈리아의 기후 및 고생물학 연구팀과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슈퍼컴퓨터 기반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은 툰드라와 냉대림과 같은 추운 환경을, 네안데르탈인은 온대림과 초원지대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쉽게 말해 두 종은 지역 특성상 함께 살기 어려운 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지역의 두 종이 만날 수 있었던 것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이를 밝혀내고자 유라시아 지역의 식생 패턴이 지난 40만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 온화한 간빙기가 겹치던 시기에 북유럽 지역에서 유라시아 중앙부 동쪽까지 온대림이 확장됨을 확인했다. 즉, 과거의 지구온난화는 추운 지역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의 주요 서식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준 셈이다.

악셀 팀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서식지를 공유했을 때 두 집단 간 상호작용이 많아져, 상호 교배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을 것”이라며 “빙하기-간빙기 변화가 오늘날까지 유전적 흔적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IBS 기후물리 연구단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도출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공유 서식지도./ 기초과학연구원
IBS 기후물리 연구단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도출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공유 서식지도./ 기초과학연구원

◇ 급격한 기후변화, 112만년 유럽 ‘무인지대’로 만들기도

다만 기후변화가 인류 번성에 이 같은 긍정적 영향만을 미친 것은 결코 아니다. IBS연구팀은 몇몇 지역이 오히려 너무 빠른 속도로 기후 조건이 변화하면서 인류가 살지 못하는 곳으로 변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악셀 팀머만 단장 연구팀은 영국 임페리얼컬리지런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약 112만년 전 발생한 북대서양의 냉각화 현상과 그에 따른 기후‧식생‧식량 자원의 변화가 당시의 유럽을 ‘무인 지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유럽의 초기 인류가 경험한 환경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200만년에 걸친 고기후-인간 서식지 모델 시뮬레이션과 포르투갈 해안의 ‘U1395’ 해저 지역에서 습득한 심해 퇴적물 코어 자료를 결합했다. 이를 토대로 인구 감소 현상이 있었을 것올 추정되는 기간 전후의 기후 및 자연 환경을 예측했다. 

특히 해양퇴적물 코어에 저장된 작은 식물 화분(꽃가루)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꽃가루는 강과 바람은 인접한 땅에서 작은 화분을 바다로 옮기고, 이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다. 이렇게 축적된 수천 개의 화분 성분을 분석하면 지역적 식생과 기후의 유추가 가능하다.

데이터의 분석 결과, 연구팀은 약 112만7,000여년 전, 20℃ 정도이던 동부 북대서양 인접 지역의 수온이 7℃까지 낮아졌음을 확인했다. 이 같은 북대서양의 급격한 기온 변화는 남․서유럽의 식생을 초기 인류가 거주하기 부적합한 반사막(사막과 유사하나 강수량이 많은) 환경으로 바꿨다. 또한 한 번 떨어진 기온은 약 4,000년간 지속됐다. 이 같은 기후변화로 유럽지역은 인류 서식적합성이 50%가량 낮아졌고, 고대 인류는 유럽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악셀 팀머만 단장은 “북대서양 온도 변화는 남유럽의 식생과 인간의 식량 자원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연구는 인류 역사가 과거 기후 변화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증거에 한 줄을 덧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남유럽의 인구 감소에 기여한 112.7만 년 전 북대서양 냉각화 현상./ 기초과학연구원
남유럽의 인구 감소에 기여한 112.7만 년 전 북대서양 냉각화 현상./ 기초과학연구원

◇ “인류는 지구 기후의 새로운 운전자”

물론 이번 연구 결과는 급격한 ‘온난화’가 아닌 ‘냉각화’다. 때문에 현재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현상과 직접적 비교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급격하게 기후조건이 변화한 지역엔 인류가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급격히 발생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인류 종속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엑서터대, 중국 난징대,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등 7개국 기후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속될 경우, 인류의 22%가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대학교 연구팀은 매우 더운 날씨에 산모가 노출될 경우, 조산의 위험이 최대 2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악셀 팀머만 단장은 “인간이 만드는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 현상은 과거와 다르게 자연적인 냉각과 순한 과정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 국가의 미래를 좋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지구 기후의 ‘운전자’ 역할을 하게 됐으며, 기온은 반대로 승객 역할이 됐다”며 “과거 인류의 조상이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떠났듯, 우리도 사막화, 산불 등의 영향으로 삶의 터전을 서서히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더 똑똑해져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거나 조상들처럼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많은 국가들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해 경고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Climate Shifts orchestrated hominin interbreeding events across Eurasia
2023. 8. 11 Science
Extreme glacial cooling likely led to hominin depopulation of Europe in the Early Pleistocene
2023. 8. 11 Science
Extreme glacial cooling likely led to hominin depopulation of Europe in the Early Pleistocene
2021. 12. 24 W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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