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증액‧미분양 우려 외 대형건설사 대비 어려운 자금 조달 등 복합 작용

중견건설사들의 지방 도시정비사업 시공권 포기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과거 공사비 증액으로 논란이 된 둔촌주공재건축아파트 / 뉴시스
중견건설사들의 지방 도시정비사업 시공권 포기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과거 공사비 증액으로 논란이 된 둔촌주공재건축아파트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서울과 지방간 청약시장 양극화 현상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높은 경쟁률을 기록 중인 반면 지방은 미달 사태를 맞는 등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 최근 ‘직방’이 발표한 ‘올해 7월 청약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1순위 청약경쟁률은 101.1대 1로 집계됐다. 하지만 지방의 경우 부산은 0.3대 1, 인천 0.6대 1, 대전 0.8대 1 등 저조한 경쟁률을 보였다.

청약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시정비사업도 서울과 지방간 온도차가 커져만 가고 있다. 서울 내 주요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은 건설사간 경쟁이 치열한 것에 비해 지방 도시정비사업에서는 일부 건설사가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온 것이다.

실제 한 중견건설사는 최근 경기도 공공기관 부지에 50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으려다 사업 주체와의 협상 불발 등으로 시공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서울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대형건설사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사실상 중견건설사의 진출이 어려운 편이다. 이에 따라 중견건설사 대부분이 지방 도시정비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중견건설사들이 지방 도시정비사업을 포기하는 배경에는 현재 건설업계 내 가장 큰 이슈인 공사비 증액 문제 뿐만아니라 미분양 우려 등 여러 요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시사위크>는 일부 중견건설사들로부터 지방 도시정비사업 포기 원인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다.

◇ 중견건설사 시공권 포기 이유 1위 ‘공사비 증액’ 

대형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중견건설사 역시 공사비 증액 이슈가 도시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중견업체인 A건설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원자재가격 인상에 따른 건설자재 가격 급등으로 공사비가 크게 늘면서 조합과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며 “대형건설사의 경우 브랜드 파워, 자본력 등을 기반으로 조합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 장기전으로 갈 수 있으나 중견건설사는 이마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중견건설사 입장에서 공사비 증액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조합측은 분담금이 늘어난다며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며 “결국 협상이 길어지면서 공사기간까지 늘면 중견건설사 입장에서 손실을 덜기 위해 시공권을 포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B건설사 관계자는 “3.3㎡당 신규 공사비 계약단가 기존 500~600만원대에서 현재 860만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공사비 증액 문제를 풀지 않고선 공사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일부 조합의 경우 ‘대형건설사에 비해 인지도도 없으면서 추가 공사비를 왜 더 달라냐’고 반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기 침체 상황에서 추가 분담금 발생을 우려하는 조합측 입장도 이해하나 대형건설사 보다 경쟁력이 약한 중견건설사 입장에선 공사비 증액 문제가 풀려야만 공사 진행이 가능하다”며 “기존 추진 중인 도시정비사업은 어쩔 수 없이 조합과 어떻게든 마무리하려 하나 신규 도시정비사업은 아예 추진하지 않으려 한다”고 부연했다.

미분양 우려 및 공사자금 조달 어려움 등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해 시공권을 포기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C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과 함께 미분양 우려도 시공권 포기의 한 요인”이라며 “대구 등의 지역을 살펴봐도 지방은 서울에 비해 공사가 완료된다 하더라도 미분양에 대한 우려가 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만약 공사를 모두 마친 뒤 미분양이 발생한다면 중견건설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며 “현금보유량이 큰 대형건설사는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중견건설사는 심할 경우 회사 존립 자체도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업 진행 중 미분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시공권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D건설사 관계자는 “중견건설사는 자금 조달 과정에서 대형건설사 보다 자본력‧신용등급‧부채비율 등 재무건전성이 약하기에 PF 대출 등을 실행할 때 더 높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다”며 “이렇게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추가 공사비 증액 이슈,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미분양 가능성 증가, 금리인상 등의 악재가 발생한다면 시공권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여기에 수익성이 높은 서울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자금 조달을 위한 대출이 잘나오는 편이나 지방 도시정비사업은 그렇지 못하다”며 “때문에 많은 중견건설사들이 신규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시장 상황을 관망하는 추세”라고 부연했다.

서울시청이 지난달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을 시행했다. /뉴시스
서울시청이 지난달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을 시행했다. /뉴시스

◇ 서울-지방간 정비사업 양극화 가속 전망

지방 도시정비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도시정비사업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서울시는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을 시행하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를 기존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크게 앞당겼다.

이로 인해 건설업계는 도시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종전보다 적어도 1∼2년 가량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시공사가 좀더 일찍 정비사업에 참여해 신용을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자금조달이 용이해지고 원활한 사업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시중은행 소속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구 압구정동, 개포동, 서초구 등 수익성이 보장된 서울 알짜배기 재건축지역의 시공사 선정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 지역을 둘러싼 대형건설사간 수주전이 그 어느때 보다 치열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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