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2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새 회장에 류진 회장을 추대했다. 이날 류진 회장은 오후 1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각오 및 계획을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했다. 새 회장으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선임됐다.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류진 신임 회장의 취임 각오가 진정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전경련서 한경협으로 새 출발… 류진 회장 공식 추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2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새 회장에 류진 회장을 추대했다. 또 이날 정관을 개정을 통해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로 변경하고 목적사업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사업 △ESG 등 지속가능성장 사업을 추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경협 명칭은 주무 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후 공식 사용될 예정이다. 이에 당분간은 전경련 명칭 사용이 유지된다. 

한경협은 지난 1961년 전경련이 설립 당시 최초 사용했던 명칭이다.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하면서 기관명을 한경협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전경련 측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경련은 국내 경제단체의 대표하는 기관이었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에 연루되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돼 위상이 크게 추락한 단체다. 당시 국정농단 사태의 후폭풍으로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그룹 주요 회원사들이 줄줄이 탈퇴한 바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 600곳이 넘던 전경련 회원사가 420여개로 줄기도 했다. 

지난 5월 전경련은 과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관명 변경을 포함한 대대적인 혁신안을 발표하고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날 차기 회장 체제 출범까지 마치면서 공식적인 새 출발을 알렸다. 전경련은 올해 초 허창수 전 회장 사퇴 후 지난 2월부터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다 이번에 공식적인 회장을 맞게 됐다. 

류진 신임 회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초심을 돌아갈 것을 강조하면서 신뢰 회복을 최대 과제로 제시했다. 

류 회장은 “우리의 최상위 과제는 국민의 신뢰회복”이라며 “국가와 국민 없이는 기업도 시장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우리를 지켜보는 따가운 시선들이 있다”며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과감하게 변화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류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초심을 돌아갈 것을 강조하면서 신뢰 회복을 최대 과제로 제시했다.  / 이미정 기자

또한 류 회장은 △‘한국경제 글로벌 도약’의 길을 열고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는 한편 △신뢰받는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 류 회장은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국민의 준엄한 뜻에 따라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그 첫걸음으로 윤리위원회 신설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내부통제시스템인 윤리위원회 설치해 정경유착 등의 문제를 사전에 철저하겠다는 각오다. 또한 전경련은 사무국과 회원사가 지켜야 할 ‘윤리헌장’도 이날 총회에서 채택했다. 윤리헌장엔 ‘외부의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을 배격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 등의 9개 항목이 담겼다. 

◇ 국민 신뢰 회복 최대 과제로… 4대그룹 복귀에 숨통 

윤리위원회 위원 선정 등 윤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사항 등 시행세칙 마련은 추후 마련할 방침이다. 류 회장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모시겠다”며 “단순한 준법감시의 차원을 넘어 높아진 우리의 국격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경련은 한경연의 조직, 인력, 자산, 회원 등을 승계하는 내용의 ‘전경련과 통합 합의문’을 채택했다. 전경련은 이번 통합의 결과 4대그룹(삼성·SK·현대차·LG)도 새 단체인 한경협의 회원이 된다고 밝혔다. 

4대그룹은 전경련을 탈퇴한 후에도 한경연의 회원 지위를 유지해왔다. 이번 총회에서 한경연이 전경련에 흡수통합되면서 새 단체인 한경협 회원 명단에 자동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일각에선 전경련이 한경협 흡수통합 결정을 놓고 4대그룹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전경련은 그간 위상 회복을 위해 4대그룹의 재가입을 요청해왔지만 4대그룹은 난색을 표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다만 최근 전경련이 강력한 쇄신 의지를 밝히며 복귀 명분을 마련하자 4대그룹은 장고 끝에 전향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한경연 회원사 자격을 유지하던 그룹 내 계열사 일부가 재합류를 결정한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총 4개 계열사가 새 단체인 한경협에 회원사로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삼성그룹 내 또 다른 한경연 회원사인 삼성증권은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은 이날 오후 1시께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등 4대그룹 계열사의 재가입 여부에 대해 “각자 회사에서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전경련과 한경연이 통합하면서 기업들이 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증권 외에 나머지 회사가 회원사로 합류한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 윤리위 신설로 정경유착 차단 각오

4대그룹이 복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제가 20년간 전경련 부회장을 맡아왔다”며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장치를 잘 만들 수 있다. 4대 그룹도 저에 대한 신임이 있어서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측면에서 큰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윤리위원회도 잘 구성하려 한다”고 전했다. 

류 회장은 윤리위원회 구성원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아낀 채 “위원장을 이미 뽑긴 했지만 지금 소개하긴 어렵다. 위원이 모두 정해지면 발표하려고 한다”며 “사명 변경 허가가 나오는 9월 첫째 주나 둘째 주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정 규모 이상 기금은 무조건 윤리위를 거쳐야 한다”며 “(정부 요청이 있더라도) 윤리위에서 반대하면 안 되는 구조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은 윤리위원회 구성원에 대해 “위원이 모두 정해지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존 회원사 외에 가입 의사를 표하는 신규 기업이 있다면 환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만 그는 “회원사가 들어올 때 윤리문제 등이 없는지 엄격히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지난 2월부터 6개월 임시 회장직을 맡았던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이날 임기가 종료됐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이날 임시총회에 참석해 “기업인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족한 사람인데 중한 임무를 맡겨주셔서 감사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등을 지냈던 인물로 정치권 인사로 통한다.

그는 지난 6개월 간 전경련 혁신 과제를 발굴해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향후 전경련 상임고문에 선임되며 자문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한동안 뒷말이 불가피할 모양새다. 비경제인 출신의 정치권 인사가 전경련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정경유착 이미지를 벗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류 회장 측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류 회장은 “과거 정치 이력이 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전경련을 이끌면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며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기보다 사람을 봐야 한다고 본다. 충분히 배울만하고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사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편 1958년생인 류진 회장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창업주 2세인 그는 부친이 별세한 이듬해인 2000년 풍산그룹 회장에 올라 그룹을 이끌어왔다. 풍산그룹은 금속·방산사업을 핵심으로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다. 아울러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전경련 부회장단에 합류해 전경련 내 활동을 이어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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