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오는 22일 열리는 임시총회에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회장에 류진 풍산 회장을 추대할 계획이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신임 회장으로 추대된다. 이로써 허창수 전 회장 사퇴 후 6개월간 회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됐던 전경련이 정식 선장을 맞게 됐다. 산적한 과제를 감안하면 지휘봉을 잡게 된 류 회장의 어깨는 가볍지 않을 전망이다. 

◇ 정식 선장 맞는 전경련

전경련은 오는 22일 개최하는 임시총회에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회장에 류진 풍산 회장을 추대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전경련은 지난 5월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하고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꾼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한경협은 지난 1961년 전경련이 설립 당시 사용했던 명칭이다. 전경련은 196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한 지 55년 만에 출범 당시 명칭으로 기관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전경련은 이달 임시총회에서 기관명 변경, 한경연 흡수 통합, 차기 회장 선임 안건을 상정해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이로써 전경련은 허창수 전 회장(GS그룹 명예회장) 사퇴 후 7개월여 만에 정식 회장을 맞게 됐다. 전경련은 올초 허 전 회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수장공백 사태를 맞았다. 이후 새 회장 후보 물색에 나섰지만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했다. 

당시 차기 회장 후보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등 여러 재계 인사들이 거론됐던 바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회장직 수락을 고사하면서 인선에 난항을 빚었다. 결국 전경련은 지난 2월부터 6개월 간 ‘회장 권한대행 체제’를 가동시켰다. 전경련은 회장 직무대행으로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낙점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비경제인 출신인 김 회장 직무대행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현 정권과 인연이 깊은 인사다.

그를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으로 낙점한 것을 놓고 코드인사라는 뒷말이 적지 않았지만 전경련 측은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가 선행돼야 할 시점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경련을 진단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낼 구원투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지난 6개월 간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 아래, 내부 혁신과 후임 회장 물색 작업을 진행해왔다. 

차기 회장으론 최근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던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최종 낙점됐다. 풍산그룹은 금속·방산사업을 핵심으로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다. 

1958년생인 류 회장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창업주 2세인 그는 부친이 별세한 이듬해인 2000년 풍산그룹 회장에 올라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아울러 지난 2001년부터 전경련 부회장단에 합류해 활동을 이어왔다. 

◇ ‘미국통’ 등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 주목 

그가 전경련 회장에 낙점된 것을 놓고 재계에선 우려와 기대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풍산그룹은 핵심 산업이 방산사업인 특성상 일반들에겐 친숙한 기업이 아니지만 재계에선 오랜 활동을 이어온 기업이다. 다만 풍산그룹이 재계 순위 70위권 기업집단인 만큼 류 회장이 재계 대표 단체 수장을 맡기엔 다소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그간 전경련 회장직은 주요 그룹 총수가 도맡아왔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초대 회장을 맡은 데 이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허창수 GS 명예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가 전경련 수장직을 수행했던 바 있다. 

그러나 류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을 고려하면 향후 역할이 기대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류 회장은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영어와 일어도 능통하다고 알려졌다. 

특히 그는 미국 정·재계 인맥이 넓어 재계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위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총수인 만큼 미국 정·재계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들어 한미 협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만큼 그의 네트워크 역량에 대한 기대도 높은 분위기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미국 정·재계 인맥이 넓어 재계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미국 정·재계 인맥이 넓어 재계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 역시 차기 회장으로 류 회장을 낙점한 배경에 대해 네트워크 역량을 강조했다. 전경련 측은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한 분으로 새롭게 태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 기관 신뢰 회복· 4대그룹 재가입 난제 풀까 

그러나 전경련 지휘봉을 잡게 된 류 회장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 않을 전망이다. 전경련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기관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당시 사태의 후폭풍으로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그룹 주요 회원사들이 줄줄이 탈퇴하면서 경제계 대표 단체로서 위상도 크게 위축된 상태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 600곳이 넘던 전경련 회원사는 현재 420여개로 쪼그라든 상황이다. 

여기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재계 단체로서 위상을 넓히면서 전경련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몇년간 최태원 회장의 지휘 아래 재계 소통 창구로서 입지를 강화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휘봉을 넘겨받는 류 회장의 어깨는 무겁다. 그는 전경련의 위상 및 신뢰 회복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로 ‘정경유착 창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후 오명을 벗기 위해 쇄신을 외쳐왔다. 그러나 국민적 신뢰 회복은 아직까지 갈 길이 먼 분위기다.

4대그룹 재가입 문제도 류 회장의 주요 난제다. 전경련이 재계 단체 맏형으로서 상징성과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그룹의 회원 재가입이 절실하다.

전경련 측은 지난달 19일 4대그룹에 가입 요청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4대그룹이 제의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각 기업별 상황을 살펴보면 당장 전경련 재가입을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특시 삼성은 전경련에 재가입하려면 이사회를 거쳐 준법위위원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조만간 류진 회장 체제로 새롭게 출발하는 전경련이 과거의 불명예를 벗고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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