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기말의 사랑’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엔케이컨텐츠
영화‘세기말의 사랑’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엔케이컨텐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데뷔작 ‘69세’(2020)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출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임선애 감독이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세기말의 사랑’으로 돌아왔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내 마음을 흔든다.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이유영 분)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임선우 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웰메이드 데뷔작 ‘69세’로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여성 감독으로 떠오른 임선애 감독의 차기작으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을 통해 첫선을 보인 데 이어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에 초청돼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난 18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세기말의 사랑’은 혼란과 희망의 기운이 공존했던 그때 그 시절을 배경으로,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의 미운 구석마저 기꺼이 끌어안게 되는 두 여성의 성장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웃음과 공감, 용기와 위로를 전했다.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럽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매력이다.

영화는 임선애 감독이 2013년 졸업작품으로 썼던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당초에는 시나리오를 썼던 당시인 2012년에 벌어지는 이야기였으나 ‘세기말’로 시대 배경에 변화를 주면서 ‘세기말의 사랑’이 완성됐다. 

‘세기말의 사랑’으로 돌아온 임선애 감독. / 뉴시스​
‘세기말의 사랑’으로 돌아온 임선애 감독. / 뉴시스​

임선애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이 시나리오를 보니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다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의 영미가 사랑을 고백하려면 ‘세상이 곧 멸망한다’와 같은 큰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또 영미의 별명이 ‘세기말’”이라며 “외모가 비호감이고 그 시절처럼 혼란스럽게 생겼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그런 중의적인 뜻을 갖고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니 재밌더라. 그렇게 ‘세기말’을 시대 배경으로 택했고, 영화의 제목도 ‘세기말의 사랑’이라고 정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 영미와 유진은 ‘결핍’을 지닌 인물이다. 영미는 소위 말해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고, 유진은 스스로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다. 불완전하기만 하던 두 인물은 서로를 만나 자신과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우게 된다.   

임선애 감독은 “처음에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질투하는 이야기’라는 기획으로 출발했다”며 “그래서 영미는 더 못생기고 유진은 더 예쁘게 극단적인 생각을 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 안에서도 각성이 일어났다. 예쁘다거나 예쁘지 않다는 것은 주관적 문제이고 결국 이 이야기는 서로 가지지 못한 결핍을 질투하는 것이고, 영미와 유진이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접근했고, 그 이야기 속 주인공 중 한 사람이 장애인이었을 뿐”이라며 “남들이 봤을 때 못생겼고 누군가는 장애를 가졌지만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서로를 통해 ‘발견’하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한 임선우(왼쪽)와 이유영. / 엔케이컨텐츠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한 임선우(왼쪽)와 이유영. / 엔케이컨텐츠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영미로 분한 이유영은 파격적인 외모 변신과 섬세한 열연으로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유진을 연기한 임선우는 제한된 상황에서도 독보적인 분위기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몰입을 높인다. 

외적 변신을 꾀한 이유영은 “‘세기말’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미는 콤플렉스도 있고 자존감도 낮고 두려움을 안고 숨어 사는 인물이기 때문에 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납득이 될 정도로 비호감 외모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덧니를 끼니 발음도 어눌해지고 해서 더 캐릭터에 녹아들더라”며 “연기적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한 임선우는 “모티프가 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그 만남이 내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던져줬다”며 “내가 배우로서 표현해야 할 것이 유진의 장애인가라는 거다. 그 안에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한 인물의 생명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면서 장애가 아닌 생명력을 가진 유진의 삶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임선애 감독은 “이 영화가 더 오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남는 것은 배우들의 역할이 크다”며 “‘세기말의 사랑’은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발견해 주는 이야기인데, 바람이 있다면 관객이 영화를 통해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 배우들도 새롭게 발견해 주길 바란다. 그게 나의 큰 바람”이라고 전했다. 오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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