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조합과의 공사비 괴리 등으로 정비사업 수주 신중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이 두 차례 유찰된 끝에 지난해 12월 대우건설이 단독 시공사로 선정됐다. / 뉴시스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이 두 차례 유찰된 끝에 지난해 12월 대우건설이 단독 시공사로 선정됐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최근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장 가운데 시공사 선정 입찰이 유찰되면서 사업기간이 늘어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정비사업 알짜배기 지역에 속한 서울‧수도권 등에서도 시공사 선정 입찰 과정에서 건설사 한 곳만 단독 입찰하거나 아예 응찰하지 않아 유찰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현상이 현재 건설‧부동산 경기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원자재가격 급등 및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서 조합과 시공사간 공사비에 대한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업체간 출혈 경쟁에 나서기보다는 사업성‧수익성 등을 따져본 뒤 과감하게 시공사 선정 입찰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시공사 선정 유찰

지난해 일부 정비사업장에서 벌어진 시공사 선정 유찰 사례는 올해에도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현대6차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은 3차례 유찰 끝에 작년 11월말 현대엔지니어링을 시공사로 맞이했다. 가락현대6차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기존 10층, 161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25층, 191세대 아파트로 신규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규모는 1,017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해당 사업장은 지난해 7월 중순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감한 결과 참여건설사 미달로 유찰됐다. 이어 같은 해 8월 재입찰을 실시했으나 역시 참여 건설사가 적어 시공사 선정을 완료하지 못했다. 결국 11월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열고 현대엔지니어링을 단독 시공사로 선정했다.

여의도 재건축 1호인 공작아파트 재건축사업도 두 차례 유찰 끝에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작년 9월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사업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감했으나 대우건설이 단독 입찰하면서 유찰됐다. 당초 업계는 1차 입찰에서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간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포스코이앤씨가 입찰에 응하지 않으면서 대우건설 홀로 입찰하게 됐다.

이후 조합은 두 달 뒤인 11월에 재입찰을 진행했으나 이때에도 대우건설만 입찰에 참여함에 따라 시공사 선정은 또 다시 무산됐다. 결국 작년 12월 열린 여의도 공작아파트 소유자 전체회의에서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서울 노량진1구역 재개발사업, 인천 석남동 473번지 가로주택정비사업, 경기 성남동 일원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전국 곳곳 여러 정비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 입찰이 유찰됐다.

올해에도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정비사업장이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이른바 ‘한강변 아파트’에 속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7차 아파트 재건축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으나 건설사들의 무응찰로 유찰됐다.

신반포27차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기존 156세대의 단지가 지상 28층, 2개동 210세대로 변경될 예정이다.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조합은 공사비 984억원(3.3㎡당 약 907만원)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6일 열렸던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SK에코플랜트·현대엔지니어링 등 주요 건설사 8곳이 참여한 바 있다.

건설사들이 과거와 다르게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뉴시스
건설사들이 과거와 다르게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뉴시스

◇ 건설업계, 경기 침체로 정비사업 수주 보수적으로 접근

업계 내에서는 현행 건설사들의 신중한 수주 참여 행보가 PF발 리스크, 공사비 고공 행진 등 지금의 경제 상황 탓이 크다는 분위기다.

건설사 A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입지 여건 등이 좋아 사업성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시공사 선정 입찰 관련 현장설명회에 참여했다가도 조합 측이 내건 공사비를 접한 순간 기대감이 사그라든다”며 “조합이 고물가 등 최근 경기 상황을 반영해 공사비를 산정했다고는 하나 건설사 입장에서 면밀히 따져보면 아직도 괴리감이 심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를 감당할 수 있거나, 조합과 공사비 차이를 메 수 있는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려 할 텐데 수익성·입지 여건 등이 웬만큼 월등한 곳이 아닌 한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입찰에 목매려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부동산 PF발 리스크 확산 분위기가 정비사업 수주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건설사 B사 관계자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이후에도 여전히 PF부실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에 대해 기존 대비 더욱 보수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며 “이는 PF리스크 현실화로 사업장 중 한 곳에서만 유동성 위기가 터진다해도 이는 곧 줄줄이 다른 사업장으로 위기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수주 과정에서 부동산 호황기 때와는 다르게 신중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기존의 수주 경쟁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건설사 C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여건으로 인해 과거와 다르게 경쟁사와의 무리한 출혈 경쟁은 피하려는 추세”라며 “여기에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건설사 면면을 살펴보면 이미 어느 건설사가 수주에 힘을 쏟을지 대략 파악된다”고 전했다.

또 “특히 시평 상위권에 속한 건설사간 2파전이나 단독 입찰이 예상된다면 굳이 입찰에 참여해 들러리 역할을 하려 하진 않는다”며 “이전에는 어느 정도 경쟁해볼 만하다면 바로 입찰에 응했으나 지금은 경쟁사 대비 훨씬 우월한 입지에 서지 않는 한 과감히 입찰을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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