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에미상을 수상한 이성진 감독(왼쪽)과 스티븐 연. / AP Invision for the Television Academy, © Television Academy
‘성난 사람들’ 에미상을 수상한 이성진 감독(왼쪽)과 스티븐 연. / AP Invision for the Television Academy, © Television Academy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국계 작가 겸 감독 이성진이 연출과 제작, 극본을 맡고 스티븐 연을 비롯한 한국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 분)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 분) 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며 그들의 일상마저 위태로워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해 4월 공개 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마음에 담고 사는 현대인의 삶을 재치 있게 풍자하며 ‘웰메이드 시리즈’라는 찬사를 받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었다. 특히 제81회 골든글로브 3관왕에 이어,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비롯, 감독상·작가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등 무려 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에미상에서 한국계 혹은 한국인이 감독상 및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22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이정재 이후 두 번째다. 드라마 ‘워킹 데드’부터 넷플릭스 영화 ‘옥자’, 영화 ‘버닝’ ‘미나리’ ‘놉’ 등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로 크리틱스 초이스부터 골든글로브, 에미상까지 남우주연상을 석권하며 또 한 번 존재감을 입증했다.  

​전 세계를 매료한 ‘성난 사람들’. / 넷플릭스   ​
​전 세계를 매료한 ‘성난 사람들’. / 넷플릭스 ​

‘성난 사람들’ 주역이자, 에미상 영광의 얼굴 이성진 감독과 스티븐 연은 2일 화상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취재진과 만나 특별했던 여정을 되돌아봤다. 특히 큰 성과를 이룬 것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지만 작품을 향한 자신감이 있었다”며 “진실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 이야기에 반응해 줘 감사한 마음”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성진 감독 “이야기에 드러나는 캐릭터 안에서 각자 자신의 일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티븐 연과 초기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굉장히 솔직하고 어두움 속에 감춰진 걸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다른 이에게서 내가 가진 어두움을 볼 때 많은 분들의 마음에 와닿은 게 아닌가 싶다.”

-글로벌 신드롬 주역이 된 소감과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티븐 연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각 나라들이 유대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기분이 좋다.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한다면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라고 말하고 싶다.  

이성진 감독 “나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다.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게 되면 눈앞에 닥친 일이 많다 보니 그 과정을 즐기는 법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가까운 친구들과 일할 수 있었다. 스티븐이나 앨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함께 일한 분들이 내가 즐기지 못하더라도 땅에 발을 딛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줬다.”

-에미상 8관왕 예상했나.

이성진 감독 “온라인상에 예술을 설명하는 벤다이어그램이 있다. 한쪽에는 나를 괴롭히는 자기 의심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을 그리는데 교집합이 예술이다. 나는 그 양쪽을 오가는 것 같다. ‘나의 예술은 아무도 관심 없어’라고 하다가도 ‘나의 예술을 어떻게 봐줄까?’ 싶다. ‘우리 작품에 관심이 있을까’ 하다가도 어느 날은 ‘우리가 모든 상을 다 탈거야’라는 기분이 든다. 중간 어디쯤 도달한 것 같다.”

스티븐 연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일어나길 희망할 뿐이다.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함께 한 모두가 깊이 관여하고 서로 무슨 생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 푹 빠져있었다. 처음 이 작품 공개됐을 때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가에 대한 것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더 많은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 전달하고 싶었던 의도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을 때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진실이라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또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이성진 감독. /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이성진 감독. / 넷플릭스​

-에미상 수상 이후 달라진 게 있나.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나. 

이성진 감독 “물론 너무 좋다. 내가 속한 공동체, 동료들, 존경하고 높게 산 예술가들에게 인정받는 건 기쁜 일이다.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어땠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최대한 감사한 분들에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그들이 알든, 알지 못하든 나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줬는지 생각하면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이 가장 많이 든다.”

-남우주연상을 연이어 수상했는데 수상 소감이 매번 다르다. 미리 준비한 것인가.

스티븐 연 “준비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샅샅이 뒤지려고 노력한다.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감사하게 생각하는 순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다. 생각을 많이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날이 되면 다 잊어버리는데 그러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소감인 것 같다. 그 순간에 서게 됐을 때 그 순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최대한 깊이 이해하려고 한다.”

-실제 난폭운전 경험이 이 시리즈를 기획할 영감을 줬다고.  

이성진 감독 “그 사람은 흰색 SUV를 타고 있었다. 극 중에서는 벤츠로 나온다. 아마도 그 사람이 하루 일진이 안 좋았을 거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 그 사람이 그날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성난 사람들’이란 작품도 없고 이 자리에 앉아 대화할 일도 없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참 희한하다. 삶이라는 건 그런 방식으로 너무나 아름답고도 희한한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바로 우리가 하는 작품인 거다.”

-디테일한 한국 문화가 담겨있는데 그 과정도 궁금하다.  

이성진 감독 “영상 매체를 제작한다는 건 협력을 요하는 형태다. 작가진도 꾸리고 있고 스티븐과 앨리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물이다. 스티븐과 전화통화를 하며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인교회의 찬양팀에서 일했던 경험도 이야기하면서 시리즈에 넣자는 대화도 했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작가진의 경험,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가 한데 모였다. 많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모인 경험들이 그 누구도 정확히 경험하지 않은 제3의 것으로 변화해서 작품에 녹여졌다. 이런 과정이 창작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집어넣길 결정하지만 그렇게 만든 작품은 자기 스스로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대니를 연기하며 힘들었던 점은. 어떤 어려움을 느꼈나. 

스티븐 연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가진 여러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대니의 특징적인 차별점은 몹시 무력하다는 것이다.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고 무력함을 느끼는데 이 감정을 나 역시 공감한다. 연기자로서 선택권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굉장히 무력한 사람,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을 연기하고 있지만 배우인 나는 통제권이 있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다. 캐릭터는 통제권이 있는데 나는 있어라고 생각하며 접근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대니는 그럴 수 없었다. 배우인 나조차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내버려야 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괜찮을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내려놔야 했다. 앤드류가 ‘절대로 대니를 포기하지마’라고 이야기했는데 대니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사랑받고 수용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성난 사람들’에서 대니를 연기해 유수 영화제 주연상을 휩쓴 스티븐 연. /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에서 대니를 연기해 유수 영화제 주연상을 휩쓴 스티븐 연. / 넷플릭스​

-대니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 구축 과정이 궁금하다.

스티븐 연 “이민자 현실은 내가 직접 겪은 거라 잘 안다. 이성진 감독, 앨리 웡과의 협력도 있었다. 삶 속에서 참고할 만한 다양한 인물이 많았다. 그 이야기를 모아서 서로 대화를 해보면 왜 이렇게 똑같은지 그 자체가 흥미로운 질문 같더라. 구체적 경험을 하나하나 모으든, 충실히 담아내되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든 인간성을 부연해서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다. 다만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반드시 화면에 담아내 소비를 위해 작품에 녹이는 접근은 아니었고 우리 자체의 것으로 소화하고 우리의 것을 만들자는 마음이 더 컸다. 이 일에 관여한 이들의 경험, 진실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 창작 활동이자 표현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 겪고 공유한 경험이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이성진 감독 “어떤 하나의 특정 메시지는 없고 원한 것은 솔직한 캐릭터를 그려보자는 거였다. 난폭 운전으로 시작해 마지막은 서로의 어둠을 의식하고 연대하는 것이었다. 유대와 상호 간의 연결을 느끼는 것. 그렇게 시작과 끝은 확실히 있었지만 과정을 그리는 것에 있어 최대한 진실하게 그리자는 마음이었다. 전달되는 메시지는 보는 사람에 달린 거다. 무언가를 창작해 냈을 때 창작자인 나도 그런 메시지를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멋진 것 같다.”

-미국에서 한국계 이민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무엇이고, 또 그 고민이 창작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성진 감독 “큰 질문이라 간단하게 요약해 답변하기 어렵긴 하다. 그 질문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작품에 담은 것 같다. 정체성,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작품에 전면으로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기적으로 잘 녹아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실제로 사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늘 그런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제 자체가 내 안에 굉장히 깊이, 존재 자체에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은 많은 부분이 작품에 담겨있고 앞으로 만들 작품에도 들어있을 것이고 내가 언젠가 만들 영화에서도 녹여내고 싶은 주제다.”

​‘성난 사람들’로 이민자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성진 감독(왼쪽)과 스티븐 연. /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로 이민자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성진 감독(왼쪽)과 스티븐 연. / 넷플릭스​​

-송강호 버금가는 성과를 낸 젊은 배우라는 평가도 나온다. 젊은 배우, 이민 2세대 배우로서 스스로 이뤄낸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티븐 연 “자기평가라는 말은 너무 끔찍하다. 이성진 감독과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둘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공통 주제가 ‘송강호’다. 말도 안 되는 비교다. 의도는 감사하다.(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돌아보면 멀리 길을 지나왔구나 생각이 든다. 기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 과정을 통해 전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 더 알게 됐고 나 자신을 품어주고 받아줄 수 있게 됐다. 스스로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걸 배우게 됐다. 어떤 순간에는 분노하기도 했고 왜 나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 주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는데 좋은 작품을 하게 되고 겪게 되면서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나온 과정과 만들어낸 이야기가 결국엔 말이 되는구나 싶다. 지금 느끼는 것은 살아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넷플릭스와 함께한 여정 속 기억에 남는 점은 무엇인가. 

이성진 감독 “운이 좋았다. 넷플릭스에 한국계 미국인분이 계셨는데 처음부터 이 작품을 많이 신뢰하고 밀어줬다. 이전에 다른 일을 했던 경험을 돌아보면 과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인교회를 이해시키기 위해 과하게 설명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많았다. 심지어 자제할 필요 없다며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했다. 다른 곳과 작업했다면 이 작품이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 싶다.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넷플릭스와 함께하게 되길 기대한다.

-한국 시청자들에게 끝인사를 전하자면. 

이성진 감독 “수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내줘 기쁘게 생각한다. 지난해 8월, 한국에 가 많은 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다양한 피드백을 줘서 기뻤다. 그런 대화를 통해 우리가 만든 작품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한국계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이뤘구나 생각이 들었다. 특별했다. 시청자, 성원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조만간 다른 작품으로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티븐 연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 특히 한국과 연결할 수 있어 기쁘다. 굉장히 멋진 일이자 보람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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