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으로 관객 앞에 선 조진웅. / 콘텐츠웨이브
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으로 관객 앞에 선 조진웅. / 콘텐츠웨이브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조진웅이 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으로 관객 앞에 섰다.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 ‘데드맨’이 된 남자 이만재를 연기한 그는 “그저 그 상황 속에 던져져 날 것 같은 반응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지난 7일 개봉한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가 1,000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 연출작 ‘괴물’ 공동 각본을 쓴 하준원 감독의 데뷔작으로, 조진웅‧김희애‧이수경 등이 출연했다. 

조진웅이 연기한 이만재는 인생 벼랑 끝, 살기 위해 이름까지 팔며 바지사장 세계에 발을 들인 인물로, 바지사장계 에이스에서 하루아침에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만재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인물의 모든 상황 속 스스로를 던지는 과정을 거듭했다는 조진웅은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강렬한 열연을 펼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조진웅은 ‘데드맨’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신예 하준원 감독과의 작업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배우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과 연기적인 고민 등 솔직한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데드맨’에서 이만재를 연기한 조진웅 스틸. / 콘텐츠웨이브,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데드맨’에서 이만재를 연기한 조진웅 스틸. / 콘텐츠웨이브,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신선한 소재였다. 처음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땠나. 

“그런 게 실제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소재를 다룬 르포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관심을 갖고 보진 않았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니 섬뜩하더라. 한순간에 나락으로 그렇게 가버리니까 잘 살아야겠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싶더라. 발을 들여놓은 순간 끝나버리는 거니까 이 사람을 구제할 방법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만재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판타지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였다. 고민은 없었나.  

“오히려 그런 시나리오를 받으면 쉽게 풀어내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아무리 어렵게 써도 내가 감정으로 풀어낼 수 있어 하는 마음. 그중 하나가 ‘블랙머디’였다. 경제용어 어렵잖나. ‘데드맨’도 소재도 그렇고 거래를 하고 그런 과정들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의 관점을 정확하게 쳐다보게 되면 이해가 된다. 어려운 용어나 주가가 어떻게 되고 이런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인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게 있을 거다. 물론 많은 상황이 존재하다 보니 쉽진 않았다. 그냥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물의 감정을 풀어내 보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캐릭터 구축 과정은. 

“이만재가 돼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느껴보면 날 것 같은 리액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만재는 본인이 원했고 본인이 승낙한 거다. 사설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곳은 법적 처벌을 받기 위해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몰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인생의 마지막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런 상황에 부딪혀서 나오는 리액션을 기대해 봐야겠는 생각을 했다. 그런 리액션은 준비를 할 수 없다. 그냥 그 상황에 던져져야 한다.”

조진웅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콘텐츠웨이브
조진웅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콘텐츠웨이브

-이만재의 선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남자, 아빠, 남편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 목표를 희생하지만 이만재는 잘못된 방법을 이용한다. 자신이 능력이 없다 보니 유지하고자 발버둥 친 거다. 어떻게 보면 측은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선택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악의는 아니나 선의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 범법자를 응원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별로 없다. 인간이 가진 감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무조건 응원하라고 할 수 없는 거잖나. 그 지점이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올바르게 정직하게 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응원하게 만드는 건 억지라고. 하지만 이 인간의 군상을 보면서 뭘 느껴야 하는지 메시지 정도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에 더 처절해야 할 것이며 혹독해야 할 거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과 의견이 대치된 부분은 없었나. 

“시나리오 자체가 잘 짜여있기 때문에 거기에 내가 가진 노하우를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눈 거다. 배우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큼 설득하는 데 좋은 게 없다. 관념적으로 이야기를 해봤자 그건 이야기일 뿐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매 장면을 두고 함께 만들어나가는데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분석한다. 내가 나오지 않는 장면까지 분석을 마쳐야 캐릭터가 내 DNA에 들어오고 톤 앤 매너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술 한 잔도 하고 산책도 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또 이야기하고 그렇게 시간을 오래 가졌다. 그 과정이 없으면 작품에 들어갈 수 없다.”

-신인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여느 감독보다 더 유능하고 마찬가지로 논리적이었다. 배우가 놀 수 있는 장을 충분히 열어줬다. 데뷔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는 움츠림이 있을 것 같으나 내가 생각할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김희애 선배도 너무나 베테랑이고 축적된 여러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협업을 하면서 시너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준원 감독이 입봉이긴 하지만 현장 경험이 많다. 오히려 ‘신인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니 되게 좋아하는 것 같더라.(웃음) 워낙 많은 작업들을 해왔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인 것 같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조진웅. / 콘텐츠웨이브,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조진웅. / 콘텐츠웨이브,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관 속에 갇힌 이만재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땠나. 

“사설감옥으로 끌려간 신인데 이만재를 사지로 몰기 위해서는 적합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사설감옥이라는 것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많이 봤던 거더라.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님의 ‘올드보이’도 사설감옥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거다. 정말 가기 싫은 곳이더라. 내가 아무리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더라도 저기는 보내고 싶지 않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잘 구현돼 있어서 리얼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공간에 들어가면 배우는 연기할 때 상당히 신명이 난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름값’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을 것 같은데.  

“맞다. 흔히 ‘이름값 하고 살자’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름값을 하고 사는 것인가 생각하게 했다. 이름값을 하면서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살면서 그것을 일순위로 두진 않잖나. 생각해 보면 순위에도 없었다. 그런데 분명 생각해 봄직하다. 나는 아버지 함자를 사용해서 활동하고 있어서 영화에 담긴 의미가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 이름값을 하고 사느냐고 한다면 아직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겠다기보다 진득한 진정성을 더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만재처럼 나락에 빠진 순간이 있다면. 

“아직도 삶의 최고 지점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걸 위해서 가고 있지도 않고.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자체가 최악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지. 그러면서 본질의 가치들은 계속 잊히는 것 같지 않나? 그래서 같이 일하는 팀, 작업하는 동료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진다. 현장에서 3번을 웃겨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장을 유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있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이 돼버린다. 열정을 느끼면서 해야 하는데 이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 지쳐 있는 분들이 있다. 지친 스태프들을 볼 때 어떻게 해서든 웃음을 주려고 한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보다 웃음을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조진웅이 현장에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공개했다. / 콘텐츠웨이브
조진웅이 현장에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공개했다. / 콘텐츠웨이브

-원칙을 세우게 된 계기가 있나.

“계기는 박중훈 선배다. ‘강적’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박중훈 선배가 술을 한 잔 마시면서 ‘현장에서 배우가 할 일이 뭔지 아느냐, 연기하는 것은 직업이니 당연한 것이고 스태프들을 세 번은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너무 와닿았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현장의 배우로서 선배가 준 그 가르침은 꼭 지키려고 하는 덕목 중 하나다.”

-앞서 삶의 최고 지점을 찾지 못했고 그것을 향해 가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향성을 두고 나아가고 있나.  

“모르겠다. 내가 지금 배우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이 분야를 떠나기에는 해온 게 도둑질이라 이 일밖에 없는 것 같다. 시나리오 개발이라든지 제작이라든지 여러 도전을 해보고 있긴 하지만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최악의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항상 최악인 것도 같다. 연기도 못하고.” 

-조진웅의 입에서 ‘연기를 못한다’는 표현을 들으니 당혹스럽다. 배우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울의 봄’을 보면 전두광을 잡아, 풀어줘, 일단 복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배우가 있는데 유성주 선배다. 학교 직속 선배이기도 하다. 지금 드라마도 같이 촬영하고 있는데 형사팀 팀장으로 나온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다. 어느 날 현장에서 만났는데 보자마자 ‘왜 그랬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거다. 당신이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 참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무대 인사를 할 때 관객들이 훌륭하고 빛이 났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더라. 그런 연기가 좋은 연기가 아닐까.” 

-흥행에 대한 부담감, 두려움도 있나. 

“100% 관객이 만드는 거다. 나는 내 새끼니까 안 예쁠 수 없다. 가치 없다고 느낄 수 없다.  1,000만 관객이 들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평가의 잣대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흥행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영화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10명이든 100만명이든 1,000만명이든 모든 아이들이 다 귀하고 가치 있다. 작업한 모든 사람들의 열정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감사하다. ‘데드맨’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얼마나 들든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 나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1단계는 된 거다. 개봉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고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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