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나문희가 영화 ‘소풍’으로 관객 앞에 섰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나문희가 영화 ‘소풍’으로 관객 앞에 섰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은 배우 나문희가 60년이 넘는 연기 인생 동안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반하게 한 작품이다. 오롯이 그 인물로 서서 온전히 살아 숨 쉬던 얼굴, 자신조차 보지 못했던 낯선 표정과 몸짓, 말하지 않아도 절절히 느껴지던 눈빛까지. 또 하나의 인생작을 완성한 그는 “처참하게 정말 열심히 했다”고 했다. 

나문희가 열연한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문희와 김영옥, 박근형 등 관록의 노배우들이 함께한 작품으로, 앞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얻었고 지난 7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극 중 은심을 연기한 나문희는 친근하고 푸근한 모습 외에도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 강인함이 돋보이는 다층적인 연기로 깊은 연기 내공을 입증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나문희는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촬영 과정 등을 전하며 ‘소풍’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봤다. 특히 “내가 나에게 반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애정을 갖고 참여했다고. 어떤 부분이 마음을 울렸나. 

“처음에는 그렇게 애정을 갖고 보진 않았다. 오랜 매니저의 아내가 시나리오를 썼다. 매니저도 힘을 많이 합쳤을 거다. 그게 느껴지니까 ‘내가 꼭 잘해줘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또 다시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다음 김용균 감독을 만나 각색을 했다. 감독의 전작 ‘와니와 준하’를 봤는데 감수성도 좋고 우리 정서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을 합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 싶더라. 그래서 이 영화에 한 번 묻혀보자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촬영은 어땠나.  

“남해에 가서 찍었는데 예산은 많지 않았지만 장소 헌팅도 잘 되고 영화에 협조적이라 참 편하게 잘했다. 그 자리에 눌러앉아서 연기하고 그러다 보니 내면에 묻혀있던 것도 표현할 수 있고 그랬다. 내 나이에 맞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내 나이면서 연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이걸 할 거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갖고 했다.”

-엔딩이 다소 파격적이었다. 어떻게 다가왔나. 

“내 나이가 돼봐야 안다. 살고 죽는 게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다. 살 때까지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사정이 오면 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시도하진 않겠다.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 거다. 우리 영감님이 아파 봤잖나. 내가 그 사람 속으로 대신 들어갈 순 없지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저 사람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몸을 편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면으로는 해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자식들이 있고. 혼자 살더라도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 행동할 순 없다. 하지만 그렇게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소풍’으로 호흡을 맞춘 나문희(왼쪽)와 김영옥.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풍’으로 호흡을 맞춘 나문희(왼쪽)와 김영옥. /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소 절친한 사이인 김영옥과 친구로 호흡을 맞추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어땠나. 

“배우의 호흡이라는 게 참… 우는 장면을 찍을 때 어렵지 않냐고 하는데 우리는 우는 게 너무 쉽다. 슬프면 그냥 울음이 나온다. 물론 카메라를 대고 있을 때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 그런데 김영옥도 나도 그런 건 훈련이 잘돼있고 궁합도 잘 맞았다. 그동안 쭉 했던 작품을 보면 친구를 한 건 거의 없다. 시어머니의 며느리, 이상한 관계였는데 연기가 너무 잘 되는 거다. 이렇게 쉽게 잘 되는구나 싶더라. ‘디어 마이 프렌즈’도 같이 했고. 이번에 친구로 나오니 얼마나 좋나. 우리가 이걸 하나 남겨놓고 죽어도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연기하면서 감정 이입이 너무 많이 돼서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매 장면 거의 그랬다. 그냥 나였다. 거기에 나를 갖다 놨다. 내가 거기서 한 발짝만 더 못 걸으면 그 인물과 같은 거다. 연기라기보다 카메라 대주고 우리는 그냥 우리의 삶을 대사를 통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나를 보고 내가 나에게 반한 신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사실적인 연기는 여기까지 하는구나 싶었다. 난 아직까지도 철없이 내가 언제까지나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도 많이 보고 그러는데 내가 나한테 반한 것은 이번 ‘소풍’이 처음이었다. 내 생각이 아니면서 움직일 때 시선이라든지 커튼 뒤에서 하는 모습이라든지, 통 속에서 목욕할 때나 방에서 둘이 씨름할 때도 그렇고 처참하게 정말 열심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 인물이라고만 생각하고 했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소재임에도 유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처음부터 영화의 템포가 느린 건 싫었다. 나도 김영옥도 말이 빠르고 대사를 외워서 하는 거니까 또 얼마든지 빨리할 수 있잖나. 그런데 또 너무 빠르면 이해를 못하고 지나갈 때가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빠르고 지루하지 않게 하고자 했다. 원래 내가 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감독이 편집에서 다 잘랐다. 처음에는 내가 막 뭐라고 했다. 차 타고 가면서 전화로.(웃음)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잘 한 것 같더라. 관객에게 넘겨도 다 알고 따라오시는 것 같다.” 

은심을 연기한 나문희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은심을 연기한 나문희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가 삽입돼 화제를 모았다. 직접 콘서트도 찾았다고. 

“김영옥이 임영웅의 ‘찐팬’이잖나. 속으로 난 ‘뭘 또 그렇게까지’ 하면서 잘난 체했는데 누가 콘서트 표를 사서 줘서 영화에 나오기도 하니까 가보자 하고 갔는데 그 세계는 또 다르더라. 거기에 가면 아마 다 그렇게 될 거다. 내 친구가 교장도 있고 회사 사모님도 있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인데 거기에 미쳐있더라. 내가 가보니 나도 미치는 거다. 하하. 정말 잘하고 나한테 해주는 노래 같았다. 그래서 아주 흠뻑 빠져 있다가 왔다. ‘호박고구마’ 흉내도 내줘서 반가웠다. 다음에 하면 내 돈으로 사서 가봐야지 그러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 속 ‘호박고구마’ 대사가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배우의 연기 인생에는 어떤 영향을 줬나. 

“언젠가부터 나한테 요술봉이 있는 것 같다. 그걸 흔들면 ‘호박고구마~’ 하고 나온다.(웃음) 어려서는 배가 많이 고팠다. 내가 돈 벌어서 우리 엄마 배부르게 먹여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 그때도 중학교에서 오락부장도 하고 그랬는데 연기를 하면 그렇게 재밌는 거다. 여성극단이 오면 조카를 업고 가서 보고 그랬다. 그때도 조금은 (연기에) 미쳐있었다. 그러다 방송국 시험을 봐서 성우 일을 시작했다. 목소리로는 상당히 주인공을 많이 했다. 그때는 나하고 김영옥이 무조건 큰 역할을 맡았다. 그때 수업이 많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 40세가 넘어서부터 연극과 TV 연기를 했다.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요술봉이 있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나문희가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문희가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전성기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다.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치? 아직까지?(웃음) 원동력은 마음인 것 같고 비결은 한없이 운동하고 기도하는 거다. 집에서 자전거도 타고 요가도 하는데 다 기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몸 운동, 뇌 운동, 눈 운동도 열심히 한다. 배우는 눈이 살아있어야 하니까. 눈과 다리는 멀쩡해야 연기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으면 연기 못한다. 그렇다고 연기를 위해서만 그러는 것은 아니고 내가 살려고 하는 거다.”

-은심, 금순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식에게 한없이 퍼주는데 그건 절대 하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기준을 세우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 처음에는 좋지만 습관이 되면 어떻게 할 수 없다. 영화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도 많을 텐데 거기까지 가기 전에 부지런히 운동하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어느 나이가 되면 그냥 집에만 있는데 집에서 나와서 문화생활도 하고 그렇게 다 건강했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위하는 삶, 그냥 나를 위해 살았으면 한다.”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닿았으면 하나. 

“‘소풍’을 보고 절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천천히 타도 기다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타러 나왔으면 어느 정도 탈 수 있거든.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또 할 일이 있으면 일을 시켰으면 좋겠다. 돈을 적게 주더라도. 노인들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드라마와 영화니까 앞장서서 그 양반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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