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인체 부품도 교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공상 과학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다./그래픽=박설민 기자
만약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인체 부품도 교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공상 과학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다./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000만개의 세포와 206개의 뼈, 78개의 장기와 6,000km 길이의 혈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인체 부품이다. 이 수많은 부품들의 조화로운 구동으로 우리는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계 장치를 오래 사용하면 부품이 닳아 망가지는 것처럼 인체 부품들 역시 언젠가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이 무릎 통증을 느끼고 나이가 들수록 눈이 침침해지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인체 부품도 교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공상 과학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다.

◇ 사람 장기 모방한 ‘오가노이드’, 생명과학의 ‘블루칩’으로 성장

오가노이드란 사람의 장기 구조와 유사한 생체 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든 ‘장기유사체’다. 이름도 ‘장기(臟器)’를 뜻하는 ‘Organ’과 ‘유사하다’를 뜻하는 접미사 ‘oid’를 합쳐 만들어졌다. 2009년 네덜란드의 후브레히트 연구소의 유전학자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박사팀이 주도한 연구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때 한스 클레버스 박사는 생쥐 내장의 줄기세포로 최초의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오가노이드의 제작 방법은 크게 ‘줄기세포 활용’와 ‘3D구현기술 활용’ 두 가지로 나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현재 오가노이드 연구에 사용되는 기술이며 장·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줄기세포 활용 방법은 줄기세포의 생성 및 재생능력으로 오가노이드를 제작하는 하는 방법이다. 이는 실제 인체 장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실제 장기처럼 미세하고 복잡한 조직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통한 형성 과정이 밝혀진 장기에 한해 모방이 가능하다. 즉, 연구 진행이 느린 장기의 경우 오가노이드로 모방이 어렵다는 뜻이다.

두 번째 3D구현기술 활용법은 3D프린터나 조직공학기술을 이용해 인공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이다. 연구 데이터가 적은 장기라도 연구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제작할 수 있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주형이나 설계도를 이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실제 장기의 복잡한 구조와 성능을 완전히 모방하는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오가노이드는 첨단 생명과학 및 의료과학연구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연구자재다. 인체 장기와 유사한 특성을 통한 질병 발생 및 전파 메커니즘 연구, 신규 약물 테스트, 환경 독성 시험 등에 사용 가능하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식의약 R&D 이슈보고서(2023)’에서 “오가노이드 기술은 차세대 생명공학을 주도하는 유망한 시스템”이라며 “유사장기를 통해 질환 모델링, 질병 메커니즘 연구,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존 2차원 모델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조직 내 세포 간 상호작용, 세포 이동, 약물 분포 등 복합적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며 “향후 심화 기술 개발을 통한 장기 크기 확대가 이뤄지면 장기 이식 및 세포 치료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 ‘장기 오가노이드’ 연구 활발… 코로나19 감염 경로 밝혀내기도

생명공학 및 의료·제약 산업에서 응용도가 높아 관련 산업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시장조사기업 ‘인사이트파트너스(The Insight Partners)’에 따르면 생명과학분야에의 오가노이드 시장 규모는 2030년 122억달러(16조3,236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2022년 기준 25억달러(3조3,450억원)보다 약 400% 가까이 커지는 셈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1.9%에 이른다.

이때 오가노이드 시장은 위, 장, 간, 췌장, 뇌, 신장 등 장기별로 분류될 수 있다. 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대장 및 소장에 해당하는 ‘장’이다. 크론병(CD) 및 궤양성 대장염, 대장암 등 질병의 발병률이 타 질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서다.

인사이트파트너스는 “크론병 및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흔한 질병”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생명과학 및 의학계에선 장 상피 조직을 연구하는데 장기 오가노이드 배양 및 개발,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기 오가노이드 배양과 과학적 시너지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유전자 조작 도구, 시험관 내 질병 모델링 접근법, 신규 배양 시스템, 바이러스·박테리아 감염 모델 등 다양한 실험기술이 개발됐다”며 “이 같은 요소들이 장기 오가노이드가 오가노이드 시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장기 오가노이드는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는 추세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EPFL) 소속 생명공학자 마티아스 뤼톨프 (Matthias Lütolf) 연구원팀은 지난 2020년 3D 공학기술을 이용해 장기 오가노이드의 대형화 및 균질화에 성공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게재됐다.

또한 최근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병 모델링 연구를 오가노이드로 진행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 해부학과 연구팀은 2023년 3월 코로나19 바이러스인 ‘SARS-CoV-2’, 델타 및 오미크론 변종에 대한 감염 연구에 기도(氣道) 오가노이드를 사용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기도 오가노이드(AO)는 줄기세포 활용 방법으로 제작됐다. 제작에는 20명의 실험 대상자의 세포를 이용했다. 이를 통해 실험을 진행한 결과, 연구팀은 ‘테트라스파닌-8(TSPAN8)’이라는 단백질이 코로나19 감염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테트라스파닌은 인체 단백질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암세포 및 바이러스 확산을 촉신시킬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기도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SARS-CoV-2 델타, 오미크론의 테트라스파닌-8 단백질이 감염 촉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테트라스파닌-8 차단 항체를 사용하면 코로나19 치료 및 예방에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서 오가노이드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미세먼지가 염증성 장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는 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내서 오가노이드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미세먼지가 염증성 장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는 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 생명연·표준연 등 국내 연구기관도 우수 성과 다수 배출

국내 과학계에서도 오가노이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오가노이드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국가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순이다. 우리나라는 총 123편으로 7위를 차지했다.

이때 국내서 오가노이드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이 대표적이다. 주요 연구 성과는 손미영 줄기세포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의 ‘인체 소장 오가노이드’ 개발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18년 손미영 책임연구원팀은 인간 전분화능 줄기세포에 3차원 분화기술을 적용, 장기 오가노이드의 체외 성숙화를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또한 손미영 책임연구원팀은 지난해 3월 장기 오가노이드를 활용, 미세먼지가 염증성 장(腸)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이 연구에는 인간 전분화능줄기세포 유래 2차원 장 상피세포와 3차원 오가노이드 원천기술이 사용됐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미세먼지에 염증성 장 질환 오가노이드 모델이 노출되면 칼슘의 신호전달 체계 교란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칼슘은 세포 내 중요 신호 전달 물질이다. 칼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염증 등 질환 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장기 내 단백질 분해와 흡수 기능 저하도 관찰에 성공했다.

생명연과 함께 가장 최근 오가노이드 연구 성과를 보여준 곳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이다. 20일 표준연은 나노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배양법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나노바이오측정그룹의 백아름 나노안전팀 선임연구원의 주도하에 진행됐다.

연구팀이 개발한 오가노이드는 배양액 자체에 세포외기질을 섞어 부유 배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오가노이드를 비교적 균일한 크기로 만들어낼 수 있고 동일 개수 분할도 쉬워 실용화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실제 연구 및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2차원 세포모델과 동일한 수준의 나노물질 투과도도 갖췄다.

표준연 연구팀은 새롭게 고안한 배양 방식으로 간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배양 기간은 3일이 걸렸다. 간 오가노이드 배양에는 세포외기질을 5% 농도로 섞은 배양액이 사용됐다. 나노물질 독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간 독성물질인 산화아연 나노입자(ZnO NPs)와 독성이 없는 금나노입자(AuNPs)를 섞었다.

실험 결과, 기존 배양법으로 만든 오가노이드는 두 가지 나노물질 모두 세포 독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표준연 연구팀이 고안한 배양법으로 만든 오가노이드는 독성물질인 산화아연 나노입자에 반응했다. 나노물질 독성 평가를 위한 오가노이드 제작엔 기존 배양법보다 신규 배양법이 적합하다는 뜻이다.

백아름 선임연구원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나노물질 및 나노의약품 안전성 표준 평가절차를 확립해 국내 나노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원들이 나노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배양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원들이 나노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배양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 “오가노이드 연구 후발주자 한국, 연구인프라 및 정부 지원 뒷받침돼야”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는 뛰어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 연구 인프라 구축 등이 좀 더 뒷받침돼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 역시 국내 연구 상황에 맞춰 투자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26일 개최된 제2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서 오가노이드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했다. 바이오 기술 분야에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데 적용되는 동물세포 배양·정제 기술과 고품질 오가노이드 재생치료제를 개발·제조하는 데 적용되는 오가노이드 분화·배양 기술 2가지가 전략기술로 포함됐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상반기 정부는 ‘국가 바이오특화단지’도 지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 경제 2.0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공모 가능한 바이오 기술은 오가노이드 분화·배양 기술 등이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연구진들은 ‘BioN Pro-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가노이드 기술 현황 ’ 보고서를 통해 “생명연을 포함해 오가노이드 연구 기관들이 최근 우수한 성과를 발표하며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으나 아직 대부분의 기술이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며 “오가노이드 연구 분야의 우수 성과를 기반으로 한 경쟁력 강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오가노이드 분야는 앞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인프라 및 전문가 양성에 국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원천기술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기초연구기관과 기업 간의 협약 및 공동 연구 지원, 인프라 구축 및 전문가 양성을 통해 오가노이드 관련 분야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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