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가 의료시스템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도한 의사들의 업무 완화, 필수·지역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선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가 의료시스템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도한 의사들의 업무 완화, 필수·지역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선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치킨게임’이 심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체 전공의의 74.4%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번 문제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대 증원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확실히 국내 의사 숫자는 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 30개 OECD 국가 중 꼴찌다.

하지만 의대 증원만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다. 의료계 측 주장처럼 의사 숫자만 덜컥 늘리면 오히려 미용, 성형 등 ‘편하고 쉬운’ 쪽에 의사들이 몰릴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기피 필수의료과목인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의 전공의 이탈률은 각각 14.1%, 13.1%, 13%였다. 반면 인기 과목인 피부과와 성형외과의 이탈률은 각각 1.3%와 6.9%였다.

결국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고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선 전공의들의 업무 강도 완화, 지방 병원에 대한 의료 인프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의 도입을 기반으로 한 의료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영상·데이터 분석에 모니터링까지… 지친 의사의 만능 조수 ‘AI’ 

의료계 현장의 AI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 강도 완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의사 숫자 자체는 OECD 국가 중 가장 적지만 업무 부담은 최상위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연간 외래 진료환자 수는 7,080명이다. OECD 국가 평균이 2,181명인 것과 비교하면 약 3.3배 많다.

이때 AI의 강력한 연산 능력은 병원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복잡한 의료 데이터 분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약한 감기, 가려움 등 경증 질환의 경우 AI를 이용한 간편 처방은 의사의 업무 시간 감축에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AI가 적용될 수 있는 의료 분야는 무엇일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2022년 발표한 ‘AI 의료 및 헬스케어‘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적·기능적 관점에서의 의료 AI기술은 크게 △의료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도출 △영상 의료·병리 데이터 분석 및 판독 △연속적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한 질병 예방 및 예측 3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의료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도출’은 AI로 진료 기록 등 데이터를 자연어 처리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환자의 유전체 데이터 분석, 돌연변이 유전자 감지 등을 통해 질병 발생확률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의사는 사전에 환자 상태를 예측·분석할 수 있어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두 번째 ‘영상 의료·병리 데이터 분석 및 판독’은 내시경, 피부, 안구 사진 등 의료 영상 기록을 AI로 빠른 시간 내에 대량 처리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환자 치료 결정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일이 의사들이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없어 업무량 감축에도 효과적이다.

‘연속적 데이터의 모니터링을 통한 질병 예방 및 예측’은 병원들이 보유한 방대한 환자 의료데이터를 AI로 분석한 후 환자에게 맞춤형 권고를 제공하는 것이다. AI는 혈압, 혈당, 심전도 등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의 지속적 모니터링한다. 그 다음 필요 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진에게 알려 치료 골든타임을 확보한다.

보고서의 저자인 허요섭 부산울산경남지원 연구원은 “최근 고령화 추세로 의료비는 늘고 의료 수요에 비해 인력과 환자 간 수급 불균형 문제가 항시 리스크로 남아 있다”며 “의료 서비스의 양적,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의료 산업에서의 AI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AI의료는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에게 더 높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해줄 것”이라며 “이에 따라 공공의료 차원에서 국가적인 자원과 노력이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의료계 현장의 AI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 강도 완화’다. 전공의 업무중단 3일차인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가 분주한 모습./ 뉴시스
 의료계 현장의 AI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 강도 완화’다. 전공의 업무중단 3일차인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가 분주한 모습./ 뉴시스

◇ AI 도입 빨라지는 해외 의료계… 국내 환경과 유사한 중국 ‘주목’

해외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AI기술 도입이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AI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 규모는 오는 2027년 674억달러(약 89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가장 큰 시장을 갖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양국의 AI의료산업 규모는 2027년 각각 232억500만달러(약 31조원), 65억6,900만달러(약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가는 중국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지방 의료 불균형, 인프라 부족 등 문제가 산적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AI 활용 진단 및 치료 보조서비스 도입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중국 의료계의 방향이다. 즉, 중국을 보고 우리 의료계에 AI 도입 시 미칠 영향을 사전에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중국 내 전국 의료위생기관은 약 103만3,000여개다. 이 중 병원은 3만7,000여개로 전체 의료위생기관의 3.5 %에 불과하다. 반면 의료위생기관 중 병원을 방문하는 건수는 33억2,000만건으로 전체 42.9%에 달한다. 지방 병원 대신 수도권 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와 유사한 모양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국 의료계는 현재 AI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주요 도입 분야는 ‘의료 영상 분야’와 ‘약물 개발 분야’다. 특히 의료 영상 분야는 중국 의료계가 AI기술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다. 의학영상장비와 이미지분석 AI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영상 식별시스템’은 중국 의사들에겐 없어선 안 될 조수 역할을 하고 있다.

‘보조 진단 분야’도 주요 AI적용 분야다. 의사가 AI를 사용해 치료 및 진단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시스템인 ‘중의학대뇌(中医大脑)’가 있다. 이는 중국 의사들이 보유한 진료 경험, 치료 및 병상 사례 등 수천만건에 이르는 데이터를 학습시킨 AI시스템이다. 이 AI시스템은 의사에게 8,000개 이상의 처방을 지원해 3,000가지 이상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해 8월 발간한 ‘중국 의료산업 인공지능(AI) 활용 트렌드’ 보고서에서 “중국의 기초의료위생기관은 총 약 98만 개로 전국 총 의료기관 수의 약 95%를 차지하고 있지만 수 대비 방문건수 등 의료서비스 제공 비중은 부족하다”며 “주요 의료 자원은 주로 선진 도시에, 3급 병원과 고급 의료인력은 1, 2선 도시와 동부 연해 지역에 집중돼 있어 중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의료 자원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정부는 AI 활용 진단 및 치료 보조 서비스를 도입해 기초 의료 기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며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의료 서비스 접근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현장의 AI기술 도입성을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계는 전면적 도입에 대해선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력 부족, 규제 및 법률의 미완성 문제 등 때문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의료 현장의 AI기술 도입성을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계는 전면적 도입에 대해선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력 부족, 규제 및 법률의 미완성 문제 등 때문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기술·규제 부족, 부정적 의료계 인식은 개선해야 할 문제

다만 아직까지 AI는 엄연히 의사의 ‘보조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또한 보조 기능조차 의료계에선 전면적 도입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복잡한 의료 분야에 당장 적용되기엔 AI기술력도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는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기업 ‘IBM’의 ‘왓슨 헬스’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15년 출범한 왓슨 헬스는 AI기반 암, 심장질환 등 중증 질환 진단 시스템의 실제 의료 현장 도입 사업을 추진했다. 가천대 길병원, 부산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등 국내 주요 대학병원들도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기술력이 발목을 잡았다. AI의 진단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대학병원 의료진들이 내놓은 진단과 왓슨 헬스 AI의 의견 일치율은 50% 정도에 그쳤다. 정확한 진단이 생명인 의료 현장에선 이 정도 저조한 성능을 보이는 AI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왓슨 헬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는 병원들이 국내외서 쏟아졌다. 결국 수익성 악화에 2022년 IMB은 왓슨 헬스를 미국계 사모펀드 프란시스코파트너스에 매각했다.

AI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및 부작용에 대한 위험 책임도 의사들에겐 부담이다. 또한 대해 제대로 된 대응책 마련도 아직 부족하다. 이는 법률 전문가들 역시 지적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11월 김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인공지능과 민사상 책임’ 논문에서 “의료 AI의 경우 의학적 판단과 처치는 최종적으로 의료전문가인 의사에게 맡겨져 있다”며 “AI의 능력을 신뢰해 일정한 처치를 했다 하더라도 최종 판단자인 의사 책임이 면책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속 발전하고 있는 의료 AI를 기존 민사상 책임 원리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현재 가능한 대안은 ‘제조물책임법’으로 AI제조자에게 제조물(AI)에 대한 관찰 및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 연구 분야 내 AI에 대한 인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직 다소 낮은 편이다. 국제 저명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서 운영하는 의학저널 ‘네이처메디신(Nature Medicine)’에서는 2020년 9월 AI의 의료 연구 분야 개입을 위한 통합 보고 기준 ‘CONSORT-AI’을 공표했다. 

CONSORT-AI는 의료 연구 논문을 작성할 시 AI사용, 데이터 수집, 인간 개입 여부 등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야 한다는 네이처의 권고다. 예를 들어 AI로 의학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논문은 어떤 AI모델을 사용했는지, 이때 사용된 AI신경망은 무엇인지 등을 명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22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따르면 몇몇 논문을 제외하면 AI사용 보고가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브라이튼 서식스 의과대학,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의과대학, 옥스퍼드대 공동연구팀은 CONSORT-AI 발표 후 논문 내 AI보고 무결성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65건의 무작위 대조 시험(RCT)에 AI가 사용됐다. 하지만 이중 AI사용을 CONSORT-AI에 맞춰 명시한 것은 단 10건에 불과했다. RCT는 의료 임상시험의 한 종류다. 시험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을 중재군과 대조군에 무작위로 할당 후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 중 AI RCT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AI 고유 고려사항에 대한 체계적 보고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학술기관과 연구지원자가 의료계 연구자들에게 CONSORT-AI의 사용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참고자료
  • Concordance of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for artificial intelligence interventions with the CONSORT-AI reporting guidelines (Nature, 2024)
  • 의료인공지능과 민사상 책임 (2023,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
  • ASTI MARKET INSIGHT 65: AI 의료 및 헬스케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22)
  • 보건산업정책연구 PERSPECTIVE-의료 인공지능의 윤리와 전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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