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등 의료계 중심으로 치매 조기 진단 위한 AI 개발 활발
국내선 한국뇌연구원, LG AI연구원 등 산·학·연 중심 연구 진행

‘치매(癡呆)’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치매 치료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때 인공지능(AI) 기술이 치매 조기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치매(癡呆)’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치매 치료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때 인공지능(AI) 기술이 치매 조기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한 과학자는 상어의 뇌 조직을 비대하게 키우는 실험을 한다. 이로 인해 인간보다 똑똑해진 상어는 연구소를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연구원들과 민간인이 희생된다.

영화 ‘딥블루씨’의 줄거리다. 영화 속 주인공인 과학자가 상어의 뇌를 키운 이유는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치매로 고통 받던 것이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방법은 잘못됐지만 치매라는 질병을 생각해보면 심정은 이해할만 하다.

실제로 ‘치매(癡呆)’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 불린다. 뇌기능 손상으로 기억과 지능을 점차 퇴화되면서 환자는 스스로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치매 치료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발병 원인이 너무 방대해서다. 노화에 따른 신경퇴행부터 혈관 문제, 이외 여러 가지 원인으로 치매가 발생한다. 원인을 밝혀 조기 예방이 필수인 치매 치료에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때 치매 치료를 연구하는 전 세계 의료·과학계가 주목하는 기술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로 여러 생체 신호를 포착,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의 강력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향후 치매 진단 및 치료 연구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화 ‘딥블루씨’의 과학자는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위험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치매로 고통 받던 주인공 과학자의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워너 브라더스
영화 ‘딥블루씨’의 과학자는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위험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치매로 고통 받던 주인공 과학자의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워너 브라더스

◇ ‘알츠하이머’ 조기에 찾는 AI… 美·英연구진 정확도 90% 이상 확보

AI를 활용한 치매 조기 진단 및 치료법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곳은 ‘알츠하이머(Alzheimer’s)’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의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발생하는 뇌질환이다. 치매 발병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전체 치매의 50~60%가 알츠하이머에 의한 것이다.

알츠하이머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몸속 변화 지표인 ‘바이오마커’ 변화가 미세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의 바이오마커를 찾기 위해선 체내 단백질 비율, DNA, RNA, 호르몬 대사 변화 등 여러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인간 과학자의 힘만으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때 AI가 가진 강력한 데이터 분석 및 연산 능력은 알츠하이머의 바이오마커 변화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주도하는 곳 중 하나는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이다.

2019년 USC정보과학연구소(ISI)의 그렉 버 스티그 조교수는 머신러닝 기반 AI로 혈관성 알츠하이머의 조기 진단에 성공했다. 그렉 조교수 연구팀은 829명의 고령 환자로부터 수집한 알츠하이머 신경 영상 데이터를 1년간 AI에 학습시켰다. 데이터에는 뇌 영상, 유전학, 혈장 및 인구통계 정보에서 수집된 400개 이상의 바이오마커가 포함돼 있었다. 그 다음 인지 저하 및 뇌 위축의 예측 변수 식별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이들 단백질이 심혈관 건강, 호르몬 수준, 신진대사 및 면역체계 반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도 AI로 증명해냈다. 조기 진단 정확도는 약 90% 정도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에서는 AI로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에서는 AI로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

USC는 2020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NIH)이 실시하는 알츠하이머 AI연구 프로젝트의 지원도 받고 있다. ‘AI4AD’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첨단 AI기술을 활용, 알츠하이머의 바이오마커를 조기 발견하는 연구다. NIH는 오는 2025년까지 1,780만달러(약 235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USC는 11개 연구 센터의 40명의 공동 연구자들이 팀을 이뤄 AI를 활용한 알츠하이머 정밀 진단, 예후 및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진행한다.

미국과 더불어 영국도 AI를 활용한 알츠하이머 진단 연구를 진행하는 주요국 중 하나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 중 눈에 띄는 것은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Liverpool John Moores University) 컴퓨터과학 및 수학과 연구팀의 성과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이 연구결과는 머신러닝 AI모델을 활용, 알츠하이머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연구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국립알츠하이머조정센터(National Alzheimer's Coordinating Center)’에서 얻은 16만9,408개의 음성파일과 1,024개로 구성된 의료 데이터 세트를 AI에 학습시켰다. AI모델은 ‘지원벡터머신(SVM)’이라는 알고리즘으로 제작됐다. 이는 두 개의 데이터 그룹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AI를 가르치는 지도 학습 모델이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98.9%의 정확도로 단순 건망증 고령 환자와 알츠하이머 초기환자를 분류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혈관성 치매, 우울증 치매, 파킨슨 치매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다중 클래스 분류에도 90.7%의 우수한 정확도를 기록했다.

국내서 AI를 이용한 치매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한국뇌연구원(KBRI)’이다. 14일 한국뇌연구원 퇴행성뇌질환 연구그룹의 윤종혁 책임연구원팀은 ‘오믹스-AI’ 통합 연구를 통해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용 바이오마커 발굴에 성공했다.  (좌측부터)사진은 연구를 주도한 이슬아 박사후 연수연구원, 윤종혁 책임연구원, 이찬희 선임연구원./ 한국뇌연구원
국내서 AI를 이용한 치매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한국뇌연구원(KBRI)’이다. 14일 한국뇌연구원 퇴행성뇌질환 연구그룹의 윤종혁 책임연구원팀은 ‘오믹스-AI’ 통합 연구를 통해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용 바이오마커 발굴에 성공했다.  (좌측부터)사진은 연구를 주도한 이슬아 박사후 연수연구원, 윤종혁 책임연구원, 이찬희 선임연구원./ 한국뇌연구원

◇ 국내선 한국뇌연구원·LG 등 산·학·연 중심 연구 활발

국내 연구진들 역시 AI를 활용한 알츠하이머 및 치매 조기 진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한 곳인 ‘한국뇌연구원(KBRI)’이다. 14일 한국뇌연구원 퇴행성뇌질환 연구그룹의 윤종혁 책임연구원팀은 ‘오믹스-AI’ 통합 연구를 통해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용 바이오마커 발굴에 성공했다.

오믹스란 유전체, 단백체 등 생체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통합적으로 밝혀내는 연구다. 윤종혁 책임연구원팀은 뇌 연구에 특화된 단백체 분석기술을 이용, 알츠하이머병에 관련된 다중단백체 정보를 확보했다. 그 다음 AI기술로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신호모듈 발굴과 조기진단을 위한 조합 바이오마커를 개발했다.

먼저 연구팀은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병리기전을 알아내기 위해 독자 구축한 타겟 발굴 데이터마이닝 플랫폼 기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3개월과 6개월 된 알츠하이머 모델 생쥐의 해마, 대뇌 피질, 혈장 세포 밖 소포체의 단백체 정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가 악화될수록 생쥐의 해마와 대뇌피질에서 포스파티딜이노시톨 3-키나제 등 특정 단백질 정보가 변화함을 확인했다.

또한 다중단백체 정보에서 잠재적 바이오마커 후보군도 발굴했다. 치매선별검사(MMSE)를 통해 60세 이상 정상-초기-만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125명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들의 혈장세포밖 소포체에 대해 잠재적 바이오마커 후보군을 검증했다. 그 결과 12개의 바이오마커가 치매 진단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찾아낸 다중단백체 정보와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인지과학 연구그룹의 이찬희 선임연구원팀은 치매 진단 AI모델을 개발했다. 사용된 알고리즘은 SVM으로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연구팀이 사용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제작된 AI를 테스트한 결과 뇌연구원이 찾아낸 조합 바이오마커는 정상군과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군을 78%의 높은 정확도로 구분하는데 성공했다.

LG AI연구원은 12일 세계적인 유전체 비영리 연구기관 ‘잭슨랩(The Jackson Laboratory, JAX)’과 알츠하이머 및 암 등 난치성 질환 연구 AI개발을 위해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LG
LG AI연구원은 12일 세계적인 유전체 비영리 연구기관 ‘잭슨랩(The Jackson Laboratory, JAX)’과 알츠하이머 및 암 등 난치성 질환 연구 AI개발을 위해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LG

글로벌 IT기업들 역시 AI기반 치매 진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의료바이오 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BCC Research)’에 따르면 현재 AI기반 알츠하이머 진단 서비스 시장 규모는 1억8,200만달러(약 2,399억원) 규모다. 연평균 성장률은 21.8%로 오는 2030년엔 5억9,423만달러(약 7.832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선 ‘LG그룹’이 한발 앞서가는 모양새다. 12일 LG AI연구원은 세계적인 유전체 비영리 연구기관 ‘잭슨랩(The Jackson Laboratory, JAX)’과 알츠하이머 및 암 등 난치성 질환 연구 AI개발을 위해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파트너십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 본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될 AI는 ‘엑사원(EXAONE)’이다. LG AI연구원이 개발한 초거대 AI모델인 엑사원은 언어와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멀티모달(multi-modality)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7월 공개한 엑사원 2.0의 경우 논문·특허 등 약 4,500만건의 문헌 데이터와 3억5,000만 장의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했다. 이를 통해 학습 및 데이터 이해 능력을 극대화 시켰다. 이 엑사원에 잭슨랩이 보유한 알츠하이머의 유전적 특성과 생애주기별 연구 자료를 학습시켜 질병 원인을 분석하고 치료 효율성일 예정이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LG AI연구원은 AI를 다양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이어오고 있다”며 “LG의 미래성장동력인 바이오 분야에서도 AI 기술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이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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