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일본풍 주점에 대해 “매국노”라고 비하 발언을 한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가 지난 19일 밤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안씨가 쓴 사과문에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등의 표현들이 포함돼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사실 사과문에 정석이란 것은 없다. 하지만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내용과, 최대한 지양해야 하는 표현의 기준은 존재한다. 공적 문서는 아니지만, 사과문이라는 것이 사과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그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준들이 어느 정도 반영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과가 아닌 변명이나 해명 등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사과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히면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피해 보상책을 제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내용도 포함된다면 좋다. 전문가들도 사과문에는 Care&Concern(관심과 걱정), Action(행동 조치), Prevention(예방 또는 방지) 3가지(C.A.P)가 필수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안씨의 사과문에서는 이러한 것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의 사과문은 “최근 저의 언행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스페샬나잇트 대표님, 점주분들, 관련 외식업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지난 16일 무심코 올린 게시물이 이렇게 큰 실망과 피해를 드리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업체 대표님을 직접 찾아뵙고 사과드리고자 했지만, 일정상 대표님을 대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도 어떻게든 먼저 연락을 드리고 사과의 마음을 표현해 보고자 업체 대표님께 연락을 했다. 이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표님께 직접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안씨의 사과문에는 본인의 어떤 언행이 문제가 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누락됐다. ‘본인의 언행’, ‘무심코 올린 게시물’이라고만 뭉뚱그려 표현할 뿐이다. ‘무심코 올린 게시물’이라는 표현도 불편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공인인 본인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고려치 못했다는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아울러 안씨는 사과문을 통해 “직접 찾아뵙고 사과를 하려 했으나 본인의 일정상 어려움이 있어서 직접 찾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업체 대표님께 연락을 했다”고 썼다. 그러나 안씨가 스페샬나잇트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사과를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스페샬나잇트 대표가 SNS에 올린 글을 보면 “대한양궁협회 측과 안씨의 매니지먼트 측에서 직접 만나 사과를 하고 싶다고 몇 차례 연락이 왔다”고 말할 뿐 안씨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기자 역시 스페샬나잇트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안씨가 스페샬나잇트 대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전화를 해 사과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해 듣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안씨 사과문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 이번 “매국노” 막말 파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사과문에 포함시킨 것도 오해를 낳는 대목이다. 안씨는 사과문을 통해 “17세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자부심이 있었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당시 매순간 긴장을 하며 지냈다”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리고자 하며 노력해 왔던 지난 국가대표 활동” 등과 같이 언급했다. 사실상 “매국노” 막말 파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논점을 흐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듯한 말로, 사과문에 적절치 않은 내용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 이후 공인으로서의 긴장감을 놓치게 됐고, 특정 매장이나 개인을 비하하고자 할 의도는 아니었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의 언행으로 생업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페샬나잇트의 대표님, 점주님들, 그리고 관련 외식업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받으셨을 피해와 마음의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이 점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사과문에 포함돼서는 안 되는 문구’가 존재하는 점이다. “본의 아니게”, “그럴 의도는 없었으나(아니었으나)”, “경중을 떠나”, “사실 여부를 떠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등의 표현은 자신이 끼친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사과를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사과문을 올린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거만한 사과는 모욕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과를 하고도 욕을 먹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안씨의 “매국노” 발언은 거센 파장을 낳고 있다. 안씨의 “매국노” 발언 이후 스페샬나잇트 등 일본풍 주점에는 최근 별점테러와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옳다 그르다는 식의 갑론을박이 거세다. 공인의 경솔한 글 하나로 인해 불필요한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씨는 이러한 논란을 촉발한 트리거다. 본인이 사과문을 통해 밝힌 대로 그는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이자 “공인”이다. 그런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필요하다. 안씨가 별점테러 등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혐오를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기 위해 다시 한 번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 공인이자 성숙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보다 책임감 있게 성장하겠다는 제대로 된 의지의 표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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