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투쟁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또 한 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노숙투쟁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해진 안타까운 소식이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고(故) 염호석(34) 양산분회장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17일이다. 고 염호석 씨는 강원도 강릉의 한 공터에 세워둔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져 있었으며, 차량 안에서는 타다 남은 번개탄이 발견됐다.

앞서 고 염호석 씨는 지난 12~14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서울 삼성본관과 수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앞에서 진행한 2박3일 농성에 참석했으며, 이후 지난 15일 동료에게 ‘힘들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고 염호석 씨는 유서에서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 입니다”라며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전했다.

고(故) 염호석 씨가 남긴 유서.

<유서1/ 삼성서비스지회 여러분께>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저를 친동생처럼 걱정해주고 아껴주신 부양지부(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여러분 또 전국의 동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여러분 곁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쁨이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저희 ○○○ 조합원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계십니다.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 마련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승리의 그 날까지 투쟁!

양산분회 분회장.


<유서2/ 아버지, 어머니께>
    
두 분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는 편지라 죄송합니다. 항상 아버지,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평생 속만 썩이고 또 이렇게 두 분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아버지 아들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만 결코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저의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아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선택이 맞다 생각합니다. 아들 전화 한 통 없이 이렇게 글만 남겨 죄송해요.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장례를 치러 주세요. 그리고 저의 유해는 남김없이 해가 뜨는 이곳 정동진에 뿌려주세요.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에게도 미안하다 전해주세요. 편지도 전해주시구요.

두 분을 사랑하는 아들 석이가

▲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투쟁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모습. 이들은 '진짜 사장'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사태 해결을 촉구해오고 있다.
◇ 6개월여 만에 또 다시 비극적인 자살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지난해 6월 불법파견·위장도급 의혹이 불거진 이후 결성돼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원청’ 삼성과 싸워왔다.

지금까지 결성된 삼성 관련 노조 중 가장 큰 규모였지만,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가시밭길을 걸어야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31일 고(故) 최종범 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 형태의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고 최종범 씨는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고 최종범 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저임금과 노조탄압에 시달렸던 사실이 알려졌고, 유가족과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고 최종범 씨의 장례식은 노조와 협력업체의 위임을 받은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각종 현안에 합의하고 나서야 55일 만에 치러졌다.

이처럼 삼성전자서비스 사태는 고 최종범 씨의 죽음으로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근본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경총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으며, 협력업체들은 위장 폐업으로 조합원들의 생계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결국 또 한 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반년 만에 두 명의 노동자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죽음 사이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 지난해 12월 24일, 고(故) 최종범 씨의 장례식이 55일만에 치러졌다.
◇ 노조, 삼성에 강한 의혹 제기

고 염호석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삼성전자서비스 사태의 해결을 바랐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료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바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초 금속노조는 고 염호석 씨의 부모로부터 모든 장례절차를 위임받았다. 그러나 시신을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긴 이후 아버지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고 염호석 씨의 동료 등 노조 측은 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장례절차를 둘러싼 입창 차는 노조와 경찰의 충돌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고 염호석 씨의 아버지가 ‘조합원들이 시신 운구를 막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경찰 250여명이 즉시 투입된 것이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장례식장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노조 측은 시신을 강탈하려한다며 막아섰고, 경찰은 이런 노조에게 최루액까지 뿌렸다. 경찰은 1시간 30분여에 걸친 충돌 끝에 고 염호석 씨의 시신을 운구차에 실어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및 시민사회활동가 25명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이 고 염호석 씨의 부친과 합의에 나섰고,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경찰과 긴밀히 협조했다”고 주장하며 “부친의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300여명에 달하는 경찰이 들어온다는 것은 통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경찰은 부친의 철수 요청도 계속 무시했다”고 밝혔다.

한 노조관계자는 “고 최종범 열사가 사망했을 당시 혼쭐이 났던 삼성이 이번엔 재빨리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서 뿌려달라’는 고 염호석 씨의 바람은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현재 그의 시신은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돼있다.

▲ 지난 18일,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노조 측과 경찰이 고(故) 염호석 씨의 시신을 두고 충돌을 빚었다. 결국 고 염호석 씨의 시신은 부산으로 옮겨졌으며, 이 과정에서 노조 측 2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 끓어오르는 노동계… 삼성, 삼성전자서비스 사태도 해결하고 갈까

한편, 삼성전자서비스 사태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당초 19~21일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일 예정이었던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이곳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아울러 전국 41개 분회는 전면 총파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금속노조 등 노동계 전반과 시민사회계의 연대투쟁도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그동안 ‘진짜 사장’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해왔다.

이런 가운데 삼성은 최근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맞이하면서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만약 삼성의 의도가 이제용 체제 준비에 있다면 삼성전자서비스 사태 역시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자살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 사람이 죽고도 매듭짓지 못한 삼성전자서비스 사태는 결국 또 한 명을 사지로 내몰았다. 또 다시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기 전에 사태의 해결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삼성 본관 앞에 설치한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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