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부터 시동을 건 국회 예산결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홍문표의원과 이춘석의원이 악수를 하고 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미국의 군사작전을 보면 항상 신기하다.” 보급부대 장교로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한 군인의 말이다. 미국의 군사작전은 항상 보급과 지원이 가능한지를 따져본 후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보급이 되지 않으면 작전을 꾸준히 이어가는 동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의 군사작전은 일단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보급을 이에 맞추는 식이다. 보급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던 기자도 항상 느끼던 바다. 지휘부는 보급문제는 제외한 채 ‘대단한 작전’을 입안한다. 산속에 탄약과 식량, 차량 수송을 따져야 하는 보급부대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작전계획을 따르다가 보급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작전계획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된다. 성과위주의 일단 지르기식 작전 입안이 문제다.

그런데 비슷한 문제가 정치권에서도 나온다. 바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문제를 비롯한 ‘복지작전’이다. 여기에 각종 사회간접자원(SOC)사업도 제외는 아니다. 정치적 성과를 위해 정치인들은 보급계획없이 무리한 작전을 입안했고, 점점 작전을 이어갈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재원마련이라는 ‘보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재원고민 없는 복지공약으로 ‘복지디폴트’ 위기

무상급식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결과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었다. 야권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이 촉발시킨 무상급식은 선거판 전체를 흔드는 매머드급 사안으로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당시 지방선거를 모멘텀으로 국내 정치에서는 ‘복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심성 복지공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초연금부터 4대 중증질환 지원, 공공임대주택 공급, 누리과정예산 편성 등 복지지출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교육청과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서로 돈이 없다며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증가하는 복지지출에 지방정부 재정은 빠듯한 상황이다. 현재 기초연금, 무상급식 등의 복지예산은 지방정부 예산에서 지출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이후 국세와 지방세비가 8대 2로 굳어진 상태에서 지출은 꾸준히 늘어 지방재정은 갈수록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법에 따라 중앙정부가 ‘교부금’으로 보조를 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줄어드는 상태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복지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중앙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이유다.

 
◇ SOC사업 등 국회의원의 선심성 지역구 사업에 중앙정부도 예산부족

그러나 중앙정부도 상황이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불황으로 예상보다 적은 세수가 걷혔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복지 재원마련을 위해 “SOC사업 비중을 줄여 복지예산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예산심사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들도 지역구 ‘작전’계획이 있기 때문에 지역구 예산도 줄이기가 쉽지 않다.

올해도 국회 상임위별로 예산심사를 마친 결과, 기존의 정부안보다 약 10조 가까운 예산이 추가로 편성됐다. 이중 SOC사업에만 2조3,000억을 추가됐다. 상임위 1차 심사를 마친 예산안은 예산결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재조정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사업 예산을 지키기 위해 소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청탁을 넣는다. 이른바 ‘쪽지예산’ 이다.

문제는 SOC사업을 비롯해 지방사업의 효용에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00억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50억의 효용만 있어도 지역구 관리차원에서 사업을 강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매칭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국가 이익의 총량이라는 측면에서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동감했다.

예산 매칭이란 지방정부의 사업에 중앙정부도 이득이 있기 때문에 일정비율로 사업비를 나누는 것이다. 부분별로 문화시설 확충 40%, 체육진흥시설 지원 30% 청소년 관련 사업 70% 등 중앙정부가 일정비율로 지방예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게 된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사업의 효용성에 비해 사업비가 많이 들어도 일정부분 중앙정부 보조금이 있기 때문에 지역구 관리차원에서 선심성 사업을 벌인다는 지적이다. 실제 연도별 매칭사업의 건수는 2010년 1,076건으로 최대점을 찍고 지난해 956건으로 다소 주춤했지만 매년 지출되는 매칭예산은 올해만 61조로 꾸준히 늘었다.

이 같은 SOC사업을 포함한 예산 매칭사업이 늘어나면서 중앙정부의 예산지출도 늘었다. 복지공약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남발이 예산부족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재원마련 방법이 선행되고 정책이 따르는 시점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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