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연말이 되면 ‘올해의 10대 뉴스’처럼 한해를 총 정리하는 뉴스가 꼭 등장한다. 그리고 올해 그 리스트에는 반드시 이 사람의 이름이 들어갈 것이다. 바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비행기는 되돌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후폭풍은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그 후폭풍이 조현아 전 부사장 개인과 그 가족을 넘어 대한항공 전체를 덮치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관계기관의 유착관계도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는 양상을 보여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파문이 칼피아 근절을 촉구하는 목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재벌 3세가 회사와 세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권 의식’에 젖어 ‘사람’을 잊고 말았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비난과 조롱의 화살이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쏟아졌다. 이어 조현아 전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형제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지탄을 받았다. 이들 오너일가의 과거 행적이 이번 사건과 맥이 닿아있었기 때문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양호 회장은 등 떠밀리듯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후에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이 보여준 행동과 ‘쪽지사과’, 그리고 조양호 회장의 사과문에서 포착된 ‘각주’ 등은 이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오너일가의 크고 작은 언행들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단순히 여론 악화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제 아무리 오너일가이고, 항공사 임원이라 하더라도 조현아 전 부사장의 행동은 엄연히 ‘범법행위’였다. 결국 수사당국은 지난 24일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강요죄, 업무방해죄 등의 혐의로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부사장.
◇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수상한 움직임

이번 사건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오너일가 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어두운 단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한항공은 사건 초기부터 꾸준히 오너일가를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부에 조사를 받으러 나왔을 때는 화장실 청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대한항공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 및 국토부와의 유착관계다.

대한항공은 사건 발생 직후 수차례에 걸쳐 비행기에서 쫓겨난 박창진 사무장을 회유·협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창진 사무장은 “집으로 찾아온 회사 관계자들이 ‘어차피 국토부 조사관이 모두 대한항공 출신’이라며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내린 것이라고 진술하도록 회유했다”고 폭로했다.

검찰 수사결과 박창진 사무장의 폭로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한항공의 여러 은폐 정황은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로 국토부는 박창진 사무장을 조사할 당시 대한항공 주요 임원을 배석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건을 조사했던 국토부 조사관은 과거 대한항공에서 15년간 근무했으며, 이번 사건 대한항공 임원과 수십 차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내부에서 ‘은폐’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여모 대한항공 상무와 해당 국토부 조사관에 대해서도 영장을 청구했으며, 26일 국토부 조사관에 대한 영장이 발부됐다.

여기에 참여연대는 26일 “국토부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 시 대한항공으로부터 좌석 업그레이드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의뢰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 개인의 일탈이 그동안 감춰져있었던 ‘마피아’ 같은 조직적 유착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다.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수상한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조현아 전 부사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한항공 여모 상무(왼쪽)와 국토부 조사관.
◇ 세월호 참사 빚은 ‘해피아’… 이번엔 칼피아?

이처럼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수상한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해피아’의 조직적 비리와 유착이 수백 명의 희생으로 이어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월 대한민국을 울린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그 중에서도 청해진해운과 해운조합, 해경, 해수부 등의 ‘어두운 결탁’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또한 끔찍한 참사 이후에는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나고 있는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관리·감독을 해야 할 기관과 관리·감독을 받아야 할 항공사가 수상한 관계로 얽혀있고, 서로 무언가 주고받은 정황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이제 검찰과 감사원이 시중에 떠도는 ‘칼피아’의 실체와 불법 유착 의혹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와 조사에 착수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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