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리차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의장을 비롯한 대표단과 접견을 갖고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설명했다. 그 밖에 정치·경제·외교 등 다양한 방면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3일 박근혜 대통령과 리차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의장이 만났다. 리차드 하스 의장은 CFR 지도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4일까지 1박 2일간 한국에서의 일정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접견,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 등 단순 싱크탱크의 지도자 프로그램으로 보기엔 다소 의미심장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CFR의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워싱턴 정가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중앙정부에서 외교와 국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외정책들이 CFR을 비롯한 싱크탱크들에 의해 좌우된다. 실제 미국이 세운 대 아프가니스탄 전략도 이번에 방한한 리차드 하스 의장에서 비롯됐다.

◇ 미국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CFR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들 중에서도 CFR은 특수 위치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석유왕이자 3대 재벌인 록펠러 가문이 출자해 만든 CFR은 중요 인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미국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대표적으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CFR 회원이고 최근 거짓말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른 브라이언 윌리암스 NBC 앵커도 CFR 소속이다.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짐 마스는 저서 ‘다크플랜(2001)’에서 이 같은 막강한 영향력에 CFR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CFR이 한국과 가깝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지난 1월 초 미국 정가에서 한·일의 역사인식 문제로 싱크탱크들 사이 의견이 갈려 대립 중인 가운데, CFR은 한국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한국의 ‘중국 경도론’을 해명하기 위해 참석한 간담회도 CFR이 주최한 자리였다.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겁니까”라고 말해 화제가 됐던 바로 그 간담회다. 그 밖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워싱턴 유학시절 이들과 교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리차드 하스 CFR의장은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수립한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CFR을 비롯해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세계각국의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창구역할을 한다.
이처럼 CFR 등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통해 중요한 소통의 창구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회원들을 내각에 입각시키면서 직접적인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보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국회 외통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싱크탱크 소속 회원이나 전직 관료들을 이용해 각국의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소통의 창구로 이용한다”며 “이른바 0.5트랙이라고 해서 공식라인을 이용한 활동으로 의중을 묻기 어려운 중대한 현안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을 이용해 의중을 묻고 의회에 반영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북한과의 협상이 대표적 예”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리차드 하스 CFR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에게 중대한 외교적 선택이 시점의 다가왔다는 게 정치권의 일관된 시각이다.

◇ 시험대에 오른 한국의 전략적 선택

올해 한국 외교의 핵심 키워드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그리고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세 가지다. 단순히 보면 전혀 겹치거나 대립하지 않는 세 가지 사안은 중국과 미국의 미묘한 관계, 남과 북의 대치상황, 일본과의 역사 감정이 맞물리면서 복잡하게 얽혔다.

이에 우리정부는 TPP 참여를 최대한 뒤로 미뤄온 경향이 있다. 미국와 일본이 주도하는 TPP 가입을 중국이 달가워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 축인 미국과 일본의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한국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다가왔다. 반대로 중국은 한국의 AIIB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관련기사 : 한국의 TPP참여 급물살, AIIB가입과 중국과의 관계 ‘주목’>

외통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힘의 논리에 끌려온 것은 사실이다. 외교적으로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긍정적으로 보면 미국이나 중국도 한국을 빼고는 동아시아 외교나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한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고, 전략적 선택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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