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병세를 둘러싼 의문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 인지 기능이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이 오는 13일 계열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이건희 회장의 현재 상태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미국·일본 등에서 머물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4월 17일 귀국하는 모습. 이후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현재까지 병상에 누워있다.
◇ 건강 양호하다는 이건희 회장, 직접 본 사람 누구?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현재까지 병상에 누워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에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이후 한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상태를 둘러싼 루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보름만인 5월 25일 의식을 되찾았지만 이건희 회장의 병세에 대한 의혹은 현재까지도 거둬지지 않고 있다. ‘상당히 회복된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서다.

사실 이건희 회장의 ‘병세’는 삼성그룹의 ‘입’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있다. 현재까지 언론에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상태는 모두 삼성그룹 측에서 ‘발표’한 내용이거나, 이건희 회장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그룹 고위관계자와의 인터뷰에 따른 것이다. 삼성 측은 삼성서울병원의 의학적 소견을 토대로 발표하고 있다지만, 실제 이건희 회장을 직접 접촉한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룹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미래전략실(커뮤니케이션팀) 측도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태나 회복 정도에 대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답변이 전부다. 이마저도 직접 확인한 게 아니다. 이건희 회장을 병문안 하고 온 고위 관계자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다.

‘하루 15∼19시간 깨어있다’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수준이다’ ‘재활치료 중이다’ 등 최근 이건희 회장에 대해 알려진 내용 또한 직접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모두 삼성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어 전해진 내용이다. 현재까지 이건희 회장의 상태를 직접 본 기자는 없다.

급기야 지난해 5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이승엽의 홈런 소식에 눈을 번쩍 떴다”는 삼성 측 이야기를 받아쓰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미디어비평 매체는 “삼성 사보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기자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받아썼다”고 꼬집기도 했다.

<아시아엔>에선 ‘이건희 사망’ 보도까지 나왔다. 사실과 다른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오던 삼성은 해당 보도에 대해 정정 요구만 했다. 해당 매체는 “오보로 확인되지 않은 이상 기사를 정정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의혹은 더 커졌다. 사실 아니냐는 의심과 더불어 각종 루머가 쏟아졌던 이유다.

▲ 사진은 지난해 5월 11일 오후 삼성서울병원에 로비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 “팩트만 쓰라”는 삼성… 이건희는 예외?

물론 삼성 측 입장에선 이건희 회장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줘야 할 의무는 없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에선 다르게 말한다. 이건희 회장은 분명 한 그룹의 오너이자 경영자다. 주주들에게 오너에 대한 정보는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 그것은 주주들에 대한 신뢰와도 무관치 않다. 각 기업 전문경영인이나 오너들이 직접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회사의 비전을 밝히는 등 대외행보를 하는 것도 주주들에 대한 일종의 정보제공, 그리고 신뢰 구축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축이다. 이건희 회장의 회복 여부는 삼성그룹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건희 회장이 갖는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면 삼성의 반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결국 이건희 사망설을 비롯한 각종 루머는 삼성이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오는 13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주총회와 맞물리면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주요 상장사 중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제일모직의 지분을 직접 갖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의 경우, 지분 20.76%를 보유하고 있는 단일 최대주주다. 주변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인지·판단 기능이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지면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지난해처럼 대리인을 통해 위임장을 보낼 가능성이 높지만 현 상태에서 어떻게 위임장을 작성할 지 미지수다.

삼성은 그동안 많은 언론사들에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써달라는 요구를 자주 해왔다. 하지만 정작 삼성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사실확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 본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쓰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것도 이건희 회장을 직접 본 사람이 아닌, 보고 왔다고 말하는 사람의 얘기를 말이다. ‘이건희 사망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을 둘러싼 루머가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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