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이성의 세계사/정찬일 저/양철북/344쪽/1만3,000원/2015년 5월 20일 출간.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아름다운 청년’에서 한국 땅에 발을 들일 수 없는 ‘배신자’가 된 유승준은 정말 그만한 잘못을 한 걸까. 고위공직자들의 병역기피 논란 청문회마다 빠지지 않는 나라에서 말이다.

얼마 전 24년 만에 무죄를 확정 받은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 씨는 왜 국가에 청춘을 빼앗겨야 했을까. 그를 파렴치한 죄인으로 몰고 간 검찰과 법원, 그리고 그 사회는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까.

10여년의 세월을 두고 벌어진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과 내용을 지니고 있지만, ‘마녀사냥’이라는 궤를 같이한다.

물론 유승준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했고, 지금도 꼼수를 부리고 있는 사회지도층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죗값을 치러야했다. 그동안 수많은 고위공직자가 자신 또는 자녀들의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였지만,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 이는 결코 공평한 일이 아니다.

강기훈 씨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당시 강기훈 씨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수상한 점 투성이다. 정상적인 수사나 재판이라기보다는 강기훈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짜맞추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뒤엔 날선 민심의 시선을 강기훈에게 돌리려한 정권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녀사냥.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말은 15~17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꿎은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인 것이다. 그렇게 죽어나간 사람은 수천 명을 훌쩍 넘겼다.

이후 마녀사냥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꾸준히 반복됐다. 심지어 특정인이 아닌 특정 민족을 학살하는 잔혹한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고, 이러한 ‘광기’는 대부분 사회가 극심하게 불안하거나 전쟁 등을 겪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6세기 전 만들어진 마녀사냥이란 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비이성의 세계사>는 이러한 마녀사냥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대표적인 마녀사냥 사례를 소개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다 결국 사약을 받은 소크라테스, 병자호란으로 끌려간 뒤 돌아와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환향녀(화냥년), 지진의 책임을 조선인에게 돌렸던 일본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매카시즘, 그리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종 청소’로 꼽히는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르완다 대학살 등 <비이성의 세계사>는 10개의 역사 속 마녀사냥을 다루고 있다.

<비이성의 세계사>에 소개된 10가지 이야기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이지만, 그 배경과 뼈대는 같다. 자연히 우리 사회에서 왜 마녀사냥이 벌어지는지, 또 언제 어떻게 벌어지는지 마주할 수 있다. 더불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 민낯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10가지 마녀사냥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같은 방식의 마녀사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잔혹한 본능일지도 모를 마녀사냥. <비이성의 세계사>는 그 속살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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