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관의 모습이다. 북한은 각국의 정상들이 보낸 각종 선물과 의례적인 기념품까지 전시, 마치 세계의 지도자들이 조공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북한이 선전포고에 준하는 수위 높은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아예 특정 시점을 박아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시태세로 전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북제제 해제’, ‘인도적 지원확대’ 등 거창하거나 원대한 요구도 아니다. 최근 우리 군이 시작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 요구의 전부다.

물론 우리의 대북 심리전에 북한이 예민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비무장지대를 넘어 민통선 이남에 포격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급박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우리 장병 2명이 희생당했는데 고작 확성기 방송이 ‘단호한 대응’이냐는 빈축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우상화와 철권통치, 북한체제 두 축

그런데 이와 관련,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재미있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이희호 여사와 문재인 대표의 대화에서다. 민간교류차원에서 진행된 이번 방북에서 이 여사는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 여사는 “그렇게 긴 거리에 다른 나라의 정상들이 가져온 선물들을 다 진열하고 있는데 희한하다”고 관람 소감을 표현했다.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 세계 각국의 문화를 모두 접했을 그가 ‘희한하다’고 할 정도면, 아마도 굉장히 특이한 광경이었으리라.

묘향산에 위치한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 첨병역할을 하는 일종의 박물관이다. 그 안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보내온 각종 선물과 김일성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선물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외교 사절이라면 의례적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기념품 수준이다. 그런데 그것을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마치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조공을 바친 것 마냥 표현하면서, ‘위대한 수령’이라는 선전물로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지역별로 돌아가며 성지순례 하듯이 전람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의 실무협상을 위해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한 미국대학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2004년 당시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관과 김정일관으로 나눠져 있었다. 고궁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건축물과 대문, 목재를 사용하지 않은 내부는 오직 대리석 등의 석재와 유리로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북한체제의 허구를 잘 알고 있는 자신조차 그 웅장함과 경건함, 엄숙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여기에 카터, 스탈린, 등소평 등 냉전시대를 장식한 지도자들이 했다는 선물을 보자니 정말 김일성이 위대한 사람이었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물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환희와 자부심에 가득찬 여직원의 광기어린 눈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철권통치하에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도 시민들로부터의 ‘역성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 국제친선전람관 김정일관의 모습. 아버지인 김일성관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다. 이곳을 관람했던 한 교수에 따르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던 것은 럼스펠트가 보낸 '농구공'이다. 강대국인 미국 조차 김정일에게 조공을 보냈다고 광고하기에는 어딘가 조악하다.
◇ 우상화 작업 미진한 김정은의 불안, 확성기가 치명타

김일성관에 이어 김정일관을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초라하다’였다고 한다. 일단 건물 규모부터 별궁 수준인 김정일관은 상대적으로 집권기간이 짧았는지 전시물도 당시에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던 것이 럼스펠트가 보낸 농구공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최강대국인 미국의 국방부 장관도 김정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을 보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참 조악하다.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상화 작업이 덜 된 김정일의 조급했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자신의 북한 여행기를 설명하던 이 교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북한은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와 군에 의한 철권통치 두 축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다.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북한은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그는 “김정일 사후는 중국과 같은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주체사상 등 북한의 성립에 공헌이 있는 김정일 조차 ‘주석’이라는 자리에 앉지 못할 정도로 우상화 작업은 쉽지 않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후계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는데 걸린 시간만 10여년”이라며 “아직 윤곽도 잡히지 않은 후계자가 정권을 승계할 경우 내부로부터의 분열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록 그의 예상은 틀렸지만,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 취임 후 북한체제는 과도한 숙청이 이어지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을 연상시키기 위해 살을 찌우는 방법까지 사용했지만, 복수의 탈북주민들에 따르면 김정은에 대해 신뢰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깃국에 쌀밥’은 커녕 굶주림 속 대북 확성기 방송만 11년 만에 재개돼 민심이 더욱 흔들릴 수 있다. 북한체제의 허구를 밝히는 확성기 방송이 우상화가 덜 진행된 김정은 체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불안한 지도자의 조급함이 되돌릴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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