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마을운동 고위급 행사에 나란히 참석해 웃음짓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1년에 두 번 있는 민족의 대명절 추석과 설은 정치인들이 가장 여론전에 민감한 시기다. 가족 친지들이 오랜만에 모여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치로 옮겨가고, 밥상머리에서 형성된 여론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크게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중간에 끼는 바람에 이번 추석을 전후해 국회의원들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지역일정을 살뜰히 챙기며 여론전에 나섰다. 실제 지난 23일 전반기 국정감사가 마무리 되자마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한산할 정도로 의원들은 지역구로 내려가기 바빴다. 총선뿐만 아니라 공천까지도 지역여론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더욱 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의 추석행보 ‘극명한 대비’

그럼에도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여론은 곱지 않았다. 역대 최악이라는 경기침체에 추석민심도 팍팍한데,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석연휴 직전까지도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 변경문제로, 새정치연합은 ‘혁신안’ 의결로 끊임없이 정쟁에 매몰돼 있었다.

추석연휴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회의에서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은 “정치판은 왜 매번 싸우기만 하느냐는 민심이 많았다. 정쟁을 그만하고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새정치연합 주승용 최고위원도 “더 이상 공천 같은 권력갈등에 매몰돼 국민의 먹고살기를 외면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지지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았다”고 각자 파악한 민심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기반성에도 불구, 정치권은 정쟁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추석연휴기간 회동을 갖고 큰 틀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를 했지만, 내부의 반발기류가 거세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나서서 양당대표의 합의사항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비토를 놓고 있고, 박지원 의원 등 야당 비주류 사이에서도 혁신안에 대한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자영업의 위기, 역대 최악의 실업률 등 내수침체 속에서도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국민들의 여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추석연휴 회동을 통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큰 틀에서 합의를 했으나, 이를 둘러싼 내전이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반면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 70차 정상회의에 참석해 세계 160여개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개발도상국들의 농촌개발에는 ‘새마을운동’이라는 비전을 제시했고, 북한의 도발억제와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역설했다. 아울러 뉴욕문화원 등을 방문해 한류문화 전파에 앞장서기도 했다.

◇ 추석 여론전, ‘반기문 대망론’으로 수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옆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의 뉴욕 첫 일정부터 대부분의 중요일정에는 반기문 총장이 동참했고, 최소 7차례 이상 공식 비공식 접촉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전후 70년을 맞아 더욱 뜻깊은 70차 유엔총회에서 반 총장은 지속가능개발목표(SDG)를 제시했다. SDG는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를 대체해 2030년까지 이어질 유엔의 원대한 개발의제로 빈곤과 기아해소, 보건 증진을 포함해 글로벌 평화와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내 정치권이 밥그릇 싸움으로 내전으로 치닫는 동안,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국가안보와 홍보, 세계평화와 번영에 힘쓰고 있다는 그림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내용이 추석연휴 내내 방송과 신문 등에 오르내렸고 국민여론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석 여론전의 승리자는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 같은 장면은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예견했던 바다. 박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에서 반 총장과 수차례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동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꺼리면서도, 비공식 회동까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방미는 윤상현 정무특보의 발언으로 시작한 ‘친박계 김무성 대항마 만들기’가 반 총장으로 수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추석연휴를 변곡점으로 ‘반기문 대망론’은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인 반 총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각종 차기대권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정치권이 정쟁에 매몰될수록 국민들은 정치권 밖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의 독주를 견제할 카드로 반 총장 카드를 꺼내든 모양새여서, '반기문 대망론'은 앞으로도 꾸준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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