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상도동계가 총집결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으로 속속 모여든 이들은 차남 김현철 교수와 함께 장례를 논의하는 한편 업적을 기리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긴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상도동’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상징한다. 지난 1969년 서울 안암동 자택에서 현재의 상도동 자택으로 이사한 YS는 이곳에서 가택연금을 당했고,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측근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이어 대권 쟁취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도 바로 상도동 자택이었다. 무려 46년간의 세월이 담긴 곳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YS와 동고동락한 측근들을 가리켜 ‘상도동계’라 불렀다.

◇ ‘4인방’의 흥망성쇠… 김동영·서석재 ‘별세’, 최형우·김덕룡 ‘쇠락’

1세대는 ‘좌(左) 동영 우(右) 형우’로 불렸던 김동영 전 정무장관과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다. 두 사람에 대한 YS의 애정도 남다르다. YS는 김동영 전 장관이 1991년 암으로 타계하자 “한창 일할 나이(55세)에 유명을 달리해 가슴이 아프다”며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고, 최형우 전 장관이 2005년 고희를 맞았을 당시에는 아내 손명순 여사와 함께 잔칫집을 찾아 축하했다. 특히 YS는 “최형우 전 장관이 건강했다면 참된 민주주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각별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앞서 최형우 전 장관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 사무총장과 내무장관을 역임하며 사실상 ‘2인자’로 군림했다. 이 같은 위세로 199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힘겨루기를 벌였으나,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최형우 전 장관은 힘든 걸음으로 빈소를 찾아 소리 내 울었다. 김동영 전 장관은 문민정부 출범 2년을 앞두고 YS의 곁을 떠났다.

이외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과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1세대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김동영·최형우 전 장관과 함께 ‘4인방’으로 불렸을 정도다. 서석재 전 장관은 YS의 사조직을 이끌었고, 김덕룡 전 원내대표는 PK(부산·경남) 인사가 주축인 상도동계에서 호남의 대표성을 책임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변화를 택했다. 서석재 전 장관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전 총리에 반대해 탈당했다. 이후 이인제 후보가 창당한 국민신당에 입당했다. 그는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김덕룡 전 원내대표의 경우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던 상당수 상도동계 인사들과 달리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YS에 대한 애정은 한결같다. 그는 문민정부 내내 ‘소통령’으로 통했던 차남 김현철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교수와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다.

▲ 상도동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빈소를 지키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스스로 “정치적 아들”이라 불렀고,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정치적 대부”로 표현했다. <사진=뉴시스>
4인방이 사실상 정치 일선에 물러난 가운데, 상당수의 상도동계가 정치 무대에서 멀어졌다. 한보사건에 연루돼 1997년 의원직을 상실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정치활동을 중단했고,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998년 YS의 퇴임 이후 정치와 거리를 뒀다. 김봉조·이종혁·박종웅 전 의원과 심완구 전 울산시장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여기에 황낙주 전 국회의장(2002년),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2009년),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2012년)은 세상과 작별했다.

다만, YS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이후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함께 새누리당 고문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YS의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온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지난 5월 헌정회 이사로 선임됐다.

◇ 막내에서 거물로 자란 YS키즈… ‘상주’ 자처한 김무성의 행보 주목

현역으로 활동 중인 상도동계 인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 힘겨루기에 놓여 있는 두 사람은 사실 정치적 뿌리가 같다. 1984년 YS가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한 이후 김무성 대표는 YS가 창당한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을 거쳐 문민정부에서 대통령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지냈고, 서청원 최고위원은 YS의 총재 시절 비서실장과 문민정부의 정무장관을 맡았다.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두 사람은 각각 YS의 “정치적 아들”과 “정치적 대부”라 불렀다. 특히 김무성 대표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여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외 같은 당 4선의 정병국·이병석 의원, 재선의 이진복 의원도 범상도동계로 분류된다. 문민정부에서 정병국 의원은 대통령 제2부속실장을 지냈고, 이병석 의원과 이진복 의원은 각각 정무비서관과 국장을 맡았다. 이외 정의화 국회의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안상수 창원시장,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YS가 영입한 인물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 또한 YS의 깜짝 발탁으로 알려졌다.

야권에도 YS와 가까운 인사들이 많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서강대 교수로 강단에 섰던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영입한 사람이 바로 YS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YS의 지원 하에 부산 동구에서 당선됐으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발해 갈라섰다. 손학규 전 고문은 YS의 부름을 받은 손학규 전 고문은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선, 이후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대선 후보로 성장했으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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