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시사위크>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등대’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등대는 어두운 망망대해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아니다. 늦은 밤까지 형광등 불빛이 꺼지지 않는 게임사의 씁쓸한 단면을 꼬집는 업계 용어다. 오늘도 일상적인 야근에 잠 못 이루는 개발자들의 고단한 하루가 등대 속에서 저물어 간다.

국내 게임업계 종사자 비중은 매년 1조원 가량 늘어나는 게임시장 매출과 거꾸로 가고 있다. 종사자수가 매년 10% 가량 감소세를 보이는 것이다. 최근 모바일 게임시장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한국 게임산업의 위기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가운데 개발자의 처우 개선을 꾸준히 외쳐온 게임개발자연대의 어깨가 무겁다. 개발자들이 모여 2013년 발족한 게임개발자연대는 노조가 없는 게임업계에 거의 유일한 대변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시사위크>는 27일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을 만나 게임산업 종사자의 실태와 생생한 면면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환민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게임개발자연대의 성격과 활동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2013년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당시 게임 개발자 몇 명이 모인 소규모 법인으로 시작했다. 개발은 좋은데 삶의 질은 높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였다고 보면 된다. 활동은 두 가지 분야로 크게 나뉜다. 개발자 처우 개선 등 내부적 문제, 그리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산업발전정책 등 외부적 문제다.”

-게임업계 종사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일한 창구인 것 같은데.
“우선 게임업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국내 게임사 어디를 둘러봐도 설립된 노조 수는 ‘제로’다. 그런데 우리 연대에 가입하시는 분들을 보면 현업에 계신 분들이 많이 들어오신다. 명부는 비공개지만, 업계 내부적으로도 문제의식을 가진 분이 많다는 반증이다.”

-개발자연대라면 프로그램 개발자만 가입할 수 있나.
“아니다. 개발자의 정의는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데 관련된 모든 종사자를 말한다. 인사 등 사업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계 종사자를 개발자로 인정한다. 운영·개발·관리직군 모두 포함이다. 우리 취지에 공감하는 일반인까지 가입 가능하다. 후원금은 꾸준히 들어오지만, 아직은 빠듯한 상황이다.(웃음)”

▲ 김환민 사무국장은 "구조적 문제를 타파하지 않는 이상 가혹한 노동환경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시사위크>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를 알고 계신가.
“안다.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가혹한 업무환경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포괄임금제다. 대부분의 게임회사가 도입한 포괄임금제는 임금에 야근수당까지 포함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종사자에게 떳떳이 야근을 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추가 근로시간 1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포괄임금제로 계약했으니 추가 수당 지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임금계약에 불만이 있으면 다른 회사를 찾아가면 되지 않나.
“현재 한국의 게임사업은 ‘허리’가 없다. 갈만한 중소업체를 찾기 힘들다. 중소업체 수가 크게 줄었고, 창업을 해도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게임시장은 소위 대형 게임사라는 ‘머리’만 커진 독과점 체제다.

이 상황에서 종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내가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떻게든 실적을 내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과잉경쟁이 나오고, 모회사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더라도 굳이 통제하지 않는다.”

-상위 게임사의 모럴해저드 문제가 보이는데.
“게임 퍼블리셔는 돈을 쥐고 있다. 중소 게임개발사에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위치다. 개발사보다 배급사의 힘이 세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매출을 내기 위해 개발자를 소위 ‘갈아가면서’ 게임의 조속한 출시를 독촉한다. 제보를 받으면 신입사원은 남자는 6개월, 여자는 3개월을 버틴다는 푸념이 들린다.”

-게임업계의 양극화가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작은 정부의 무조건적인 규제였다. 2012년 7월 시행된 ‘셧다운제’가 발단이 됐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이 이걸 못 만든다는 것이다. 자체개발력과 자금이 부족한데 정부는 셧다운제를 도입하라고 하니, 결국 게임이 못나오게 됐다. 셧다운제 이후로 대한민국 중소게임 개발사와 종사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셧다운제가 그렇게 도입하기 어려운 시스템인가.
“정부도, 당시 옹호했던 분들도 전부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쉽게 이야기하시더라. 근데 도안을 만들고 하이퍼링크를 걸고 시스템을 짜는 이 일련의 개발과정은 훨씬 복잡하고, 이는 온전히 업체의 몫으로 떨어졌다. ‘게임=규제’라는 기성 정치권의 일차원적 사고에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찾아볼 수 없는 법이 나와 버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모바일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 중소업체 입장에서 당연히 규제망을 피해 모바일로 진출을 꾀했다. 그런데 모바일시장도 대기업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역시 대기업의 자금력과 배급망 없이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최근 모바일 대작게임의 경우 TV광고에도 진출하는 등 마케팅 비용이 100억원을 넘나들고 있다. 성장이 아닌 부담이 늘어났다.

유저들도 광고가 없는 게임은 찾지 않는다. 유저들은 사용자경험(UX)에 따라 움직인다. 과거에는 스토어에 접속해서 스스로 게임을 찾아 다운받았다면, 지금은 내 귀에 들리는 게임만 골라서 하는 식이다. 대형 퍼블리셔를 거치지 않으면 콘텐츠 힘만으로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우리는 모바일을 ‘중소업체의 늪’이라 부른다.”

▲ 김환민 사무국장은 "게임산업 전반의 선순환적 구조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시사위크>
-임금과 야근도 문제지만, 고용불안도 꾸준히 도마에 오르고 있다.
“IMF 이후 2003년부터 정부가 게임산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인력 양성소 등 센터를 차리고 인력을 쭉쭉 뽑아내기 시작하자 게임 실무만 2~3년을 배운 전문인력이 넘쳤다. 사람이 넘치는 것이다. 결국 취업은 절실해졌고, 더 나쁜 조건에서도 일을 하게 됐다. 나중엔 그게 당연시됐고 문제의식은 더 옅어졌다. 실무적인 감각은 충만하지만, 타 업종으로의 전환이나 노동법 등에 대한 인식은 낮은 그런 정말 ‘전문인력’ 말이다.”

-전문인력의 양산이 고용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업계 현실을 보고 ‘모던타임즈’라는 평을 자주 한다. 단지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듯 이 사람을 이 직무에만 쓰자는 식이다. 교육이 특수한 목적을 향해서만 사람을 키워내면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회사가 실무교육에 인색하고 노동법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회사는 이들을 키워서 더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배치하기보다 단순업무를 맡긴다.”

-게임업계의 진정한 성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금의 독과점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중소업체 수가 많고, 창의적 아이템이 나와 이들이 대기업 반열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이직을 통해 마찰적 실업이 일어나면 실업급여나 재취업 알선 등을 통해 노동 인력이 자리와 활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종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지금의 게임업계는 중국식 과금시스템과 비슷하다. 돈 많이 주면 엄청난 무기가 나오고 나홀로 독식이 가능하다. 자본력으로 후려치면 그냥 이기는 게임. 지금 우리나라 게임업계의 현주소다. 아쉬운 건 연구비가 없어 정황적 분석은 가능한데, 정책과 노동실태 등의 상관관계를 실제로 조사하지 못하는 점이다. 연구와 검증을 통해 마침표를 찍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