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창수 전경련 회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여러 가지 일들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이 2017년 신년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사과를 전했다.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주도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데 대한 첫 공식 사과다. 허창수 회장은 이와 함께 “내년 2월 사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여론이 싸늘하다. ‘사후약방문’. 너무 늦은 사과에 진정성은 이미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태’의 핵심선상에 있다. 대기업 회원사들은 팔이 비틀려 미르재단 등에 기부금을 냈다는 항변이지만, 사실상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경련 해체 여론이 거세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도 증인으로 참석한 재계 총수들을 향해 “전경련을 탈퇴하라”는 의원들의 노골적인 요구가 쏟아지기도 했다.

전경련은 그러나 뜨거운 논란에도 ‘침묵’을 유지해왔다. 회원사인 기업들이 “우리도 피해자”라며 코너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전경련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전경련을 이끌고 있는 수장, 허창수 회장은 지난 10월 전경련 공식행사에 참석했다가 몰려든 기자들을 피해 ‘뒷문’을 이용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허창수 회장은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국을 뒤흔든 태풍 속에서 자신이 수장을 맡고 있는 단체 존립이 걸린 시점에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 늦은 시점에, 그것도 새해 신년사에 슬쩍 한 줄 얹은 사과 메시지는 그래서 더 진정성을 잃었다. 회원사들에 ‘내년 2월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차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부터 허창수 회장은 이전에도 임기인 내년 2월을 끝으로 더는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허창수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국민의 엄중한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전경련은, 국민적인 여망을 반영한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께 사랑 받는 단체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도 잊지 않았다. 해체론을 일축한 셈이다.

그러나 LG그룹에 이어 KT가 전경련을 탈퇴하고 삼성도 올해부터 회비를 내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등 전경련이 사실상 와해될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국민적 여망을 반영한 개선방안 마련’이 가능한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차라리 전경련을 향한 사회적 지탄이 논란이 한창일 때 잘못을 인정하고 단체의 정체성 및 조직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강단있는 행보를 보였더라면 적어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회원사들의 지적이다.

허창수 회장은 신년사 말미에 “사랑받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경련 허창수호(號)가 보여준 행보를 고려하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너무 늦어버린 허창수 회장의 사과에 전경련을 향한 시선만 더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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