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07년 ‘무죄’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에 대한 판단마저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10일 MBC라디오 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박 후보는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에서도 “유신에 대해 당시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해 퇴행적 역사인식에 변화가 없음을 드러냈다.
 
인혁당 사건은 1975년 유신정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8인에게 대법원이 사형 선고한 데 이어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돼 유신정권의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지적된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밝혀졌으며,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했으며, 대법원은 2011년 247억 원의 배상액을 최종 결정했다.
 
박 후보가 말한 ‘대법원의 두 가지 판결’은 헌정절차가 무력화된 유신정권 당시 판결과 민주화이후 사법부가 무죄로 재심한 판결을 말한다. 2007년 인혁당 사건 무죄판결 당시에도 박 후보는 “법원에서 정 반대의 두 가지 판결을 내렸다”며 “역사적 진실은 한 가지밖에 없으니 역사가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으로 박 후보가 유신 시절과 민주화 이후의 판결에 동등한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독립유공자들의 명예회복도 섣부른 판단이냐”면서 “판결이 두 개니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형식논리”라고 지적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1975년 사형 판결에 대해 2007년 재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종수 연세대 법학 교수도 “유신독재 권력의 통제 아래 있었던 재판부의 잘못된 판결과 민주적 정통성이 확보된 재판부의 재심 판결을 어떻게 동일하게 비교할 수 있냐”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은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의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그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 폐해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사의 문제”라면서 “박 후보가,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회피 또는 부인하는 것은 그의 헌법의식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이자, 역사관을 의심할 만 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선후보로서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음에도, 방송3사는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
 
방송3사는 대선을 앞둔 여야의 ‘정치 공방’을 주요하게 전했지만 안철수 불출마 협박 논란에 초점을 실었을 뿐, 박 후보와 관련된 논란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선후보에 대한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검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 후보의 ‘역사인식’이다.
 
더구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태도는 대통령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 후보의 “두 가지 판결” 발언은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과거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나아가 법적 판결까지 뒤집고 보는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 등 박 후보의 미흡한 점을 보여준 사례다.
 
그럼에도 방송3사는 관련 보도를 내지 않음으로써 국민들이 박 후보를 검증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으며,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더구나 방송3사는 박 후보의 ‘대통합행보’와 정책을 연일 주요하게 전달하면서도 박 후보에게 제기된 문제들을 소극 보도하는 행태를 보여 여러 차례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대선을 100일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편파적 보도행태를 보여 방송3사 대선보도의 신뢰성에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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