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피가 흐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닮은 점이 무척 많다. 특히 한국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리더로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의 행보는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 닮은꼴 두 사람

이재용 부회장과 정용진 부회장(편의상 이하 부회장 직함 생략)은 1968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다. 이재용이 6월생, 정용진이 9월생이다.

두 동갑내기 사촌형제는 서로 동창이기도 하다. 나란히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다녔다. 심지어 대학도 같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단과대도 같았다. 이재용은 동양사학과, 정용진은 서양사학과에 입학했다. 다만 정용진은 서울대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재용은 서울대에서 학사를 마친 뒤 일본에서 석사,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대학 입학 후 자연스레 따라오는 군대는 둘 다 가지 않았다. 이재용은 허리디스크, 정용진은 과체중으로 군면제를 받았다.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을 받은 뒤 이혼을 경험한 것도 같다. 정용진은 1995년 당대 톱스타 고현정과 결혼했고, 이재용은 대상그룹 장녀 임세령과 1998년 결혼했다. 하지만 정용진은 2003년, 이재용은 2009년 이혼했다. 현재 이재용은 재혼을 하지 않고 있고, 정용진은 2011년 재혼했다.

재계 데뷔 역시 둘 다 화려했다. 이재용은 23살이던 1991년, 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정용진은 이보다 4년 늦은 1995년 신세계에 입사했지만, 27살에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 직함을 달았다.

승진은 정용진이 빨랐다. 1997년 상무, 2000년 부사장을 거쳐 2006년 부회장이 됐다. 입사 후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한 이재용은 2001년 상무보,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다.

◇ 이재용은 나락, 정용진은 비상

이처럼 마치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살아온 두 사람. 하지만 각자 이끌고 있는 그룹의 규모와 자산 규모는 현격하게 차이난다.

이재용 부회장은 고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내려오는 ‘적통’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형제들 중 가장 돋보인 아버지 이건희 회장 덕이 컸다. 삼성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용진의 신세계도 국내에서는 굴지의 유통대기업으로 꼽히지만, 입지나 위상은 이재용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가 쓰러진 뒤 사실상의 리더가 된 이재용은 우여곡절 끝에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2015년엔 메르스 사태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고, 지난해엔 야심차게 내놓은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폭발 결함으로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말 불거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것은 결정타였다. 삼성과 이재용은 원만한 승계를 위해 최순실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용은 국회 청문회에서 진땀을 흘렸고,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받은 뒤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간신히 구속신세는 면했지만, 특검의 수사에 따라 구속영장이 재청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소는 확정적인 상태다. 국민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하다. 아울러 삼성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놓여있다.

반면 정용진은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자신을 향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본인이 진두지휘한 이마트 노브랜드나 피코크 등은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이마트의 매출 성장을 이끄는 중이다. 또한 골목 상권 침해 논란에 부딪히자 교외 초대형 복합쇼핑몰로 눈을 돌려 그룹의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정용진은 젊은 경영인으로서 SNS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덕분에 정용진 본인은 물론 이마트의 이미지도 한층 젊고 친숙하게 바뀌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위상은 날로 발전 중이다. 올해 초에는 10대 그룹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이재용이 자신으로 인해 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면, 정용진은 자신의 능력으로 신세계의 도약을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너무나 닮은 동갑내기 사촌형제의 발걸음이 이제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