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농의 유일한 사외이사는 18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우리 사회는 늘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고 있다. 특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듯, 어떤 문제와 논란은 그 해결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 재벌들이 편법으로 상속세를 회피하자 이를 방지하는 법안이 마련되고, 정치인 등 사회고위층이 자녀들의 병역기피로 논란에 휩싸이자 이제는 앞장서서 군대에 보내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외이사 문제다. 이른바 ‘장수 사외이사’, ‘거수기 사외이사’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이제는 재직기간이 10년을 넘어가는 사외이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농약 생산 기업 ‘경농’은 지난 15일 1분기 분기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일한 사외이사인 허근도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은 18년 11개월, 무려 19년에 육박한다. 우리나라에 사외이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한 1998년부터 경농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허근도 사외이사의 임기는 2019년 3월까지로 여전히 2년이 더 남아있다. 임기를 채울 경우 재직기간은 21년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 기준 경농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0.9년이다. 회사 외부인인 사외이사가 일반 직원들의 근속연수보다 2배 더 오래 회사에 몸담게 되는 셈이다.

허근도 사외이사의 최근 활동은 무척 성실한 것으로 확인된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사회에 불참하지 않았다. 2008년으로 기간을 넓혀도 불참 횟수는 4차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허근도 사외이사는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장수 사외이사’는 물론 ‘거수기 사외이사’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허근도 사외이사가 거둔 수익은 꽤 쏠쏠하다. 허근도 사외이사의 지난해 보수는 5,031만원이었다. 2015년엔 5,504만원을 받았다. 사외이사가 비상근직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 이제는 희귀해진 ‘문제적 사외이사’

경농의 이러한 실태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것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1990년대 후반 처음 도입됐다. 당시 IMF는 우리 경제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로 기업들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운영을 지적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제안했다. IMF를 통한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은 사회가 발전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외이사의 존재감은 무색해져갔다. 최대주주가 경영까지 맡고 있는 대다수의 기업들은 사외이사 자리에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혔다. 지인에게 사외이사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독립성은 물론 견제 의사조차 없는 무의미한 사외이사였고,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장기간 재직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최근 몇 년 새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민연금은 재직기간 10년 이상 사외이사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결권 지침을 만들었고, 기업 전반에 사외이사 개선 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이제는 재직기간이 10년을 넘는 사외이사는 극히 드문 상황이다.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평가하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역시 사외이사의 장기재직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길어질 경우 경영진, 최대주주 등과 유착관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