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표와 샘표식품은 오랜 세월 함께 한 사외이사에게 여전히 그 자리를 맡기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샘표는 8·15 광복 직후인 1946년 설립됐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기, 좋은 간장을 저렴하게 판매하며 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샘표의 깊은 장맛은 고된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했다.

이후 샘표는 일찌감치 간장 수출에 성공하며 사세를 키웠고,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했다. 어느덧 70살이 넘은 지금은 한결 같이 그 자리를 지켜온 각종 장류 뿐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 및 재료를 선보이고 있는 샘표다.

◇ ‘16년’ 사외이사와 그보다 더한 사외이사

이처럼 오랜 세월 서민과 함께 해온 샘표. 그런데 오랜 세월 함께하고 있는 것이 또 있다. 기업의 경영 전반을 감시하고, 경영진 및 오너일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다.

지난 15일 샘표가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김현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은 16년 4개월에 달한다. 그는 2000년 8월 처음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3년 임기씩 5차례에 걸쳐 재선임 됐으며, 현재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김현 사외이사는 현재 샘표의 유일한 사외이사다. 지난해 샘표식품이 지주회사인 샘표와 사업회사인 샘표식품으로 인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샘표에 남았다. 현재 샘표는 박진선 대표와 김현 사외이사를 비롯해 각각 1명의 사내이사와 감사, 그리고 2명의 직원 등 총 6명이 몸담고 있는 회사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가려진 ‘장수 사외이사’가 있다. 샘표식품의 유일한 사외이사인 이명호 사외이사다. 역시 지난 15일 발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재직기간은 9개월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이명호 사외이사는 인적분할이 이뤄지기 전, 오랜 세월 샘표식품의 사외이사로 재직해왔다. 그의 이름은 1998년 사업보고서에서도 발견된다. 김현 사외이사보다 먼저 샘표식품 사외이사로 활동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재직기간이 9개월에 불과한 이유는 인적분할 이후부터 계산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외이사의 장기재직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됐다. 독립성이 핵심 요건인 사외이사의 장기재직에 대해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샘표는 장독대에 묵혀둔 장처럼 오랜 세월 같은 사외이사를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 샘표식품은 과거 두 차례에 걸쳐 극심한 경영권분쟁을 겪은 바 있다.
◇ 경영권분쟁 속 끝까지 자리 지켜

실제로 이들이 회사와 경영진, 오너일가로부터 독립성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부호가 제기된다. 이들이 겪은 우여곡절 때문이다.

샘표식품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경영권분쟁에 휘말려 몸살을 앓은 바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펀드인 마르스1호가 2006년 9월 샘표식품 지분 24.1%를 취득한 뒤 경영권 확보에 나선 것이다.

마르스1호가 확보한 샘표식품 지분엔 또 다른 사연이 있었다. 샘표식품 창업주는 고(故) 박규회 회장이다.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아들 고(故) 박승복 회장과 고(故) 박승재 사장이다. 이복형제인 두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합심해서 경영을 이어갔지만, 1997년 3세 승계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당시 박승복 회장은 이복동생 박승재 사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아들인 박진선 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겼다. 이후 양측은 지분경쟁과 법적공방을 벌였으나, 박승복 회장과 박진선 사장이 승리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다. 2006년, 박승재 사장은 자신과 어머니가 같은 다른 형제들과 뜻을 모아 24.1%의 지분을 마르스1호에 매각했다. 또 다른 경영권분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마르스1호는 각종 의혹 및 문제 제기와 법적 공방,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을 둘러싼 표대결 등으로 샘표식품과 대립각을 이어갔다.

특히 마르스는 샘표식품 속살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샘표식품이 표대결에서 승리했고, 이명호, 김현 사외이사도 지켜냈다. 결국 승자는 샘표식품이었다. 마르스1호의 거센 공세를 막아낸 샘표식품은 2012년 마르스1호가 보유한 주식을 공개매수하며 6년에 걸친 갈등을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장기간에 걸쳐 회사를 지키고 있는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느냐다. 재직기간 뿐 아니라, 재직기간 중 벌어진 각종 사건들을 보면 유착관계 형성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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