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와 펌프 제조사로 유명한 한일전기의 핵심 계열사인 신한일전기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실적과는 반대로 고배당 정책을 이어가고 있어 회사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신한일전기의 최대주주인 한일전기는 지분 구성을 베일에 두고 있어 그룹의 지배 구조와 배당금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은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에 위치한 신한일전기 본사 전경. <네이버 거리뷰>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자동펌프와 선풍기로 유명한 가전제품 제조 기업 한일전기. 계절가전 분야에서만큼은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50년 장수기업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일전기가 고배당 논란에 휩싸였다. 값싼 중국 업체들의 공세 탓에 회사가 적자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에서도, 10년 넘게 고배당 정책을 유지하며 기업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 한해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돈이 잉여금에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인데, 한일전기는 지분 구조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이 같은 돈의 흐름이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일전기가 김상호 창업주가 재일동포이며, 일본 자본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는 근거에서 국부 유출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 적자에도 고배당 고집하는 계절가전 명가

‘선풍기 명가’ 한일전기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10년 가까이 주요 실적 지표가 흑자와 적자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신한일전기는 고배당 정책을 지속하면서, 회사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고 하고 있었다. 신한일전기는 한일전기그룹을 지탱하는 핵심 계열사로, 한일전기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는 생산 법인이다. 통상 소비자들이 부르는 한일전기라는 명칭에는 신한일전기까지 포함 된 것이라 보면 된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한일전기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324억원에 그쳤다. 이는 신한일전기의 첫 회계년도인 2000년 후 지난 17년간 평균 매출(865억)의 3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이다.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겸비한 중국산 펌프와 생활가전의 범람에도 매출에서만큼은 밀려나는 기미를 보이지 않던 신한일전기의 매출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영업이익(3억)과 당기순이익(7억)은 간신히 흑자에 턱걸이 했다. 4년 만에 다시 양 부문 모두에서 적자 탈출에 성공했다. 57억원의 영업적자와 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던 2013년에 비해 괄목할 만한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하지만 축포를 일찍 터트린 것일까. 신한일전기는 지난해 순이익의 126배(배당성향 1,266%)에 이르는 9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출했다.

지난해 사정은 더 심각했다. 2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가운데서도 30억원의 연차배당을 실시했다. 2014년 한 차례 배당을 건너 뛴 한일전기는 57억원의 영업적자와 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던 2013년에도 5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이렇게 신한일전기는 금감원에 감사보고서 공시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총 197억원을 배당금 지출에 사용했다. 그렇다고 이 기간 신한일전기의 배당 정책 모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수준의 적절한 규모의 배당도 몇 차례 이뤄졌다. 다만 이는 2000년 초반 때의 일들로,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신한일전기는 수익 대비 ‘과감한’ 배당을 실시했다.

◇ 10년치 배당금 197억… 오너일가‧일본 나눠가졌나

문제는 신한일전기의 배당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한일전기의 최대주주(100%)인 한일전기가 지분 구성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일전기를 포함한 한일전기 그룹 전체 계열사가 비상장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분은 ‘한일 2세’ 김영우 회장을 위시한 특수관계인들이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토대로 보면 배당금 역시 김 회장과 가족 혹은 주변 친인척들에게 흘러갔을 것으로 보인다.

배당금 일부는 일본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일전기가 일본기업인 호남정공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는 사실이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호남정공은 재일동포인 김상호 창업주가 설립한 회사로, 한일전기의 일부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일전기 그룹 관계자는 “회사 지분 구성을 공시하지 않은 건 내부 방침에 따른 결정으로 생각되며, 배당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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